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악마성을 끄집어내다한·일·홍콩 옴니버스 공포영화

[씨네마 타운] <쓰리-몬스터>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악마성을 끄집어내다
한·일·홍콩 옴니버스 공포영화 <컷><박스><만두>


한국 일본 홍콩 3개국 감독이 참여한 옴니버스 공포 영화 <쓰리- 몬스터>는 인간의 내면속에 숨어있는 악마성이라는 주제로 세 감독이 나름대로 변주한 단편 모음이다. 이중 첫 작품인 박찬욱 감독의 <컷(Cut)>은 세 작품중 단연 돋보인다. 이제 한껏 물오른듯한 박감독의 연출력은 유장한 양식미와 그의 작품들을 통해 일관되게 흐르는 ‘운명의 덫’에 걸려든 인간의 모습이라는 소재, 그리고 유머러스함을 유려하게 조화시키며 긴장감 넘치는 단편하나를 내놓았다.

- 최악의 상황에 빠진 인간의 나약함

영화감독 유지호(이병헌)은 어느날 자신의 집에서 어처구니 없는 상황과 맞닥뜨리게 된다. 자신의 영화속 엑스트라로 출연했던 사람(류원희) 이 괴한이 되어 집으로 침입, 피아니스트인 아내(강혜정)을 피아노줄로 옴죽달싹하지 못하도록 칭칭 묶어놓고 자신마저 붉은 줄로 허리를 묶인채 아이를 죽이도록 강요받는다. 그렇지 않으면 10분에 하나씩 아내의 손가락이 잘려나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최악의 상황에 놓여진 상태에서 벌이는 주인공과 상대의 극단적인 대결은 <복수는 나의 것>이나 <올드보이>등 박감독의 전작에서 익히 봐왔지만 이번 영화는 그의 압축판이라 할 만하다. 40분짜리 연극을 보는 듯한 이 영화의 화면에서 꽁꽁 묶여 발버둥 쳐봐야 다시 벽으로 내동댕이쳐지는 주인공과, 거미줄에 걸려든 먹이를 형상화한 듯 사방으로 뻗은 피아노줄로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부인,그리고 이 사이를 도끼를 들고 오가며 이들을 위협하는 괴한이 만들어내는 삼각의 구도는 안온한 일상이 한순간 파괴되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 무력한 한 인간이 빠졌을 때 생겨날 수 있는 극도의 공포상황을 관객에게 상기시킨다.

여기에 ‘고어(gore)영화’에 대한 박감독의 취향이 어느때보다 맘껏 발휘돼 공포를 배가한다. 도끼로 손가락을 자른다거나 잘린 손가락을 믹서기에 넣고 간다거나 , 이빨로 목을 물어뜯어 죽인다거나 그때 마신 피를 바닥에 토한다거나 하는 화면전체를 물들이는 선홍색은 ‘팬터지’의 극단을 달린다. 바로크 풍의 실내장식과 커다란 흑백바둑판 모양의 바닥, 피아니스트 역의 강혜정의 얼굴을 뒤덮는 검은 마스카라와 얼룩진 눈물자국까지, 음습한 분위기의 프로덕션 디자인은 장중한 바로크 풍의 음악과 어우러지며 스타일리시한 공포감을 일관성있게 엮어나가고 있다.

이처럼 꽉 짜여진 균형을 깨며 종종 등장하는 것이 능청스런 유머다. 그러나 언뜻 긴장된 분위기를 깰 듯한 그 유머는 '이 영화는 결국 한판의 코미디“라고 하는 감독의 언급되지 않은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역할도 하지만 한편으론 오히려 그 공포감을 배가 시키는 역할도 한다. 괴한은 피칠갑을 만드는 이 긴장된 상황을 깨트리고 느릿느릿 충청도 사투리로 주인공의 약을 올린다. 이죽거리는 그의 표정과 말이 주는 사이코 스릴러 분위기의 불쾌한 긴장감은 ,한껏 상기된 얼굴로 일장연설을 늘어놓은 괴한이었다면 훨씬 덜 했을 것이다.

결국 갈때까지 간 상황에서 순하기만 해 보이던 이병헌의 성격은 분열되고 분열된 틈 속에서 숨어있던 악마성이 모습을 드러내며 영화는 예상치 못했던 파국으로 달려간다. 숨쉴틈 없이 몰아친 40분의 영화는 공포의 팬터지의 쾌감을 관객에게 던지며 마감된다. 취향에 따라선 그건 팬터지의 쾌감이 아니라 속 거북한 울렁임을 유발하는 불쾌함의 연타가 될 수도 있겠지만.


- 죽음 부른 쌍둥이 자매의 질투심

두 번째 영화인 미이케 다카시의 <박스(Box)>는 박감독의 영화와는 대조적으로 서늘하고 정적인 분위기의 공포를 의도하고 있다. 설원위에 자리한 서커스 단의 쌍둥이 자매 교코와 쇼코가 의붓아버지의 사랑을 놓고 서로 질투하게 된다. 결국 자신이 덜 사랑받는다고 느낀 교코의 질투심은 쇼코의 죽음을 불러오고 성년이 된 교코는 악몽에 시달리다 결국 그것이 현실로 펼쳐지는 장면을 맞게 된다. 흔히 ‘일본적’인 분위기라고 할때 연상되는 조용하고 우아한 화면속에 꿈과 현실을 오가는 몽환적인 분위기로 연출된 이 영화는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전작들에서는 엿볼 수 없는 색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그러나 이야기의 전개가 다소 모호하고 그 때문에 긴장감이 일관되게 지속되지 않는 다는 것이 약점이다.


- 젊음에 대한 비뚤어진 집착

세 번째 영화인 프루트 챈감독의 <만두(Dumpling)>은 젊어지고 싶다는 욕망에 불타는 한 중년여인이 태아를 재료로 한 만두를 먹게 되면서 생기게 되는 괴물같은 집착을 그리고 있다. 이른바 ‘인육 만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가지고 있는 중국적인 배경을 가진 공포물인데, 사실 이 영화에서 태아를 재료로 도마위에 놓고 칼로 다지는 장면이나 그것을 입에 넣고 ‘오도독’ 소리를 내면서 먹는 장면 같은 것들은 온몸에 소름이 돋게는 하지만 내러티브의 진행을 볼때 이 영화는 장르 영화로서의 공포 또는 호러 영화와는 좀 거리가 멀어보인다. 대신 젊음에 집착하는 주인공 여인과, 그에게 태아 만두를 제공하면서 불법 낙태수술을 행하는 만두집 주인같은 캐릭터등이 흥미롭게 구성됐고 색채감있는 화면등은 돋보인다고 할 수 있다.

■ 시네마 단신
   

* 존 포드 감독 회고전

서울시네마테크는 6일부터 15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존 포드 감독 회고전’을 개최한다. 그의 대표작 ‘역마차’를 비롯해 아카데미상 수상작 ‘밀고자’ ‘분노의 포도’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황야의 결투’ ‘아파치 요새’ ‘수색자’ ‘리버티 발란스를 쏜 사나이’ 등 14편을 상영한다. 11일 오후 5시에는 특별강좌도 연다. www.cinematheque.org 02)3272-8707

* 장애인 영화제 사전제작 지원작 공모

제5회 장애인영화제(10월22~26일)의 사무국은 9월18일까지 사전제작 지원작을 공모한다. 장애인을 소재로 하거나 장애인이 스태프로 참여하는 작품이면 장르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다. 신청서·제작계획서·장애인 등록증 사본 등을 e메일(, )이나 방문 혹은 우편(서울 관악구 봉천11동 1659-2 청동빌딩 201호)으로 접수하면 된다. www.pdff.or.kr (02)871-4405

이윤정 영화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4-08-11 15:58


이윤정 영화칼럼니스트 filmpoo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