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뒤 호적정리, 윤리적·법적문제로 판결 엇갈리는 상황

[생활법률 Q&A] 인공수정 아들, 남편 친자 아니잖아요
이혼 뒤 호적정리, 윤리적·법적문제로 판결 엇갈리는 상황

[질문] 저는 2003년에 남편과 이혼한 여자입니다.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자식이 없어서 많은 고민 끝에 타인의 정자를 받아 인공수정으로 건강한 아들을 출산했습니다. 그런데 이혼한 현재까지도 이 아들은 전 남편의 호적에 혈연관계가 있는 자식(친생자)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제 아들이 전 남편의 친자가 아니라는 것을 법률적으로 정리할 방법은 없나요.

[답변] 우리나라 부부 10쌍 중 1쌍은 불임이라는 통계가 있고, 이의 해결을 위해 인공수정을 시도하는 부부도 점점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인공수정은 정액 제공자가 남편인 배우자간 인공수정과 불특정 제공자인 비배우자간 인공수정이 있는데 특히 비배우자간 인공수정은 의학적으로는 물론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법적 문제가 의뢰인의 경우와 같은 인공 수정아에 대한 이혼한 남편의 친권(미성년 자식에 대한 신분ㆍ재산상의 권리 의무) 인정 여부입니다. 부모가 이혼했을 경우 다른 사람의 정자를 받아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아이는 법적으로 누구의 아이가 되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1990년대 서울가정법원은 “현행 민법 제844조 제1항은 혼인 중 임신한 자식을 남편의 자식으로 추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혼인 중 남편과 합의를 통해 인공 수정해 낳은 아이는 비록 남의 정자로 임신한 아이라 해도 남편의 친자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원고에게 패소판결을 내렸습니다.

이 판결의 입장은 2000년에도 유지되었지만 2000년도를 넘김과 동시에 이에 대해 엇갈린 판결이 등장하면서 인공수정으로 낳은 아이에 대한 아버지의 친권문제를 법으로 규정하는 등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번 볼까요. 서울가정법원은 이혼을 앞둔 A씨가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제공받아 출산한 아들에 대해 남편은 친권이 없다며 제기한 ‘친생자관계 부존재’확인소송에서 “생식 불능인 피고는 원고와 합의해 다른 남자의 정자를 제공받아 아이를 낳기로 합의했고 이후 아들을 호적에 기재했으므로 아들에 대한 친권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우리 민법 체계상 친생자관계의 존재 여부는 자연적 혈연관계를 기초해 정해지는 만큼 자신의 정자로 낳지 않은 아들에 대한 친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히면서 원고에게 승소판결을 내렸습니다.

남편도 아이가 자신의 호적에 남아있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는 상황과 남의 성(姓)을 계속 써야 하는 아이의 미래 등을 고려해 친자가 아님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원고측의 주장과 남아선호사상을 배경으로 한 피고측의 주장 사이에서 재판부의 고민은 시작됩니다. 원고가 이혼을 한 상태인지 여부만이 두 사건의 차이점이라고 보는 것은 게으른 시각입니다. 가사사건(家事事件)일수록 당사자들이 알고 있는 사실의 일부분만이 법정에서 제시됩니다. 제시된 사실도 진실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듯 열악한 소송 현실 속에서 구체적 타당성을 말한다는 것은 어폐가 있습니다. 하지만 두 사건의 담당 재판부들이 구체적 타당성을 위하여 개별적인 정황들을 숙고하고 고민하여 판결을 내렸다는 점은 충분히 인정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판결이 원용하는 현행 민법의 규정과 체계도 모두 사실입니다. 다만 민법 제844조 제1항은 부인이 혼인 중에 임신한 자식은 당시 남편의 자식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인공수정을 통해 태어난 아이의 친자관계 설정 등에 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게다가 현행 민법은 호주제를 토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원고의 청구가 받아들여질 경우 아이의 아버지는 없게 되는 혼란이 야기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현실상 입법의 미비가 존재하고 아직 대법원의 판례조차 없기 때문에 법관의 견해에 따라 다른 판결이 나올 수 있는 점은 사실이므로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기다려 보는 것이 신중한 자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발본색원의 방법은 인공수정에 대한 법적 규정을 마련해서 인공수정아의 법적 정체성 혼란을 막는 것입니다.

생명공학의 발달과 그에 따른 윤리적ㆍ법적 문제가 이미 일상으로 파고들고 있으므로 법은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법의 긴 침묵은 악법만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입력시간 : 2004-08-18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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