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봇짐을 지고 고개를 넘어보라조선시대 영남 선비들이 청운의 뜻을 품고 넘던 고개

[주말이 즐겁다] 문경새재
역사의 봇짐을 지고 고개를 넘어보라
조선시대 영남 선비들이 청운의 뜻을 품고 넘던 고개


한반도의 굳건한 뼈대인 백두대간(白頭大幹). 우리 선조는 이 웅장한 산줄기에 많은 고갯길을 만들며 서로 교류했다. 남한 땅에만 해도 대관령, 새재, 추풍령, 여원재 등 백두대간은 지리적, 역사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큰 고개'를 많이 거느리고 있다.


- 낙동강과 남한강을 이어주던 고갯길

조선시대 백두대간의 가장 큰 고개였던 문경새재는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누구나 한번쯤 걷고 싶어하는 길이다.

이 가운데 새재(642m)는 한반도의 가장 큰 고개로서 명성을 드날렸다. 낙동강과 남한강을 연결하는 주요한 길목인 새재는 조선시대엔 한양에서 부산 동래까지 이어진 '영남대로' 가운데 가장 컸다. 영남에서 거둬들인 세곡이나 대궐에 바칠 진상품은 물론, 청운의 뜻을 품고 과거를 보러 나선 영남의 선비들도 대부분 이 고개를 넘었다.

정겨운 우리 가락인 남도의 '진도아리랑' 한 대목을 들어보자.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 난다" 바닷가 진도에 왜 문경새재인가? 이렇듯 이 고개는 평생 살아가면서도 단 한번 넘을 기회도 없었을 법한 호남의 섬사람들이 부르던 민요에도 등장할 정도로 유명했다.

새재는 여러 뜻을 지니고 있다.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높은 고개'라는 유래가 가장 흔히 알려져 있고, 조령(鳥嶺)은 이를 한자로 표현한 것이다. 또 옛 문헌에 기록된 초점(草岾)에서 '억새풀이 우거진 고개'라고도 해석한다. 그리고 '새'를 '사이'로 풀어 하늘재(麻骨嶺)와 이우리재(伊火峴) 사이의 고개, '새로운'으로 풀어 '새(新)재'로 해석하기도 한다.

대하드라마 촬영 세트장에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재미를 경험할 수 있다.

새재는 조선 태종 때 본격적으로 개척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발굴조사 때 조령관터에서 훨씬 이전의 토기류가 출토되면서 고려시대 전부터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던 고개임이 확인되었다. 조선시대엔 한양과 영남을 잇는 길의 중심 관문으로서 또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감내해야만 했다. 임진왜란 당시엔 왜군이 북진할 때 신립 장군이 천혜의 요새인 이 새재를 지키지 못하고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쳤다가 전멸 당한 통한도 간직하고 있다. 이렇듯 영욕의 세월을 보낸 새재는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추풍령 등에 밀리면서 점차 잊혀진 길이 되어갔다. 그러다가 1970년대 중반 무렵, 그 동안 묻혀있던 새재의 유적지를 복원하자 사람들은 조선시대에 한반도의 대표선수로 명성을 날렸던 문경새재의 실체를 확인하려 찾아들기 시작했다.

문경새재가 옛 명성을 되찾는 데 큰 힘이 된 일등공신은 몇 년 전 텔레비전에 방영되었던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 후삼국 영웅들의 권력 투쟁을 다룬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자 문경새재에 마련한 오픈 세트를 보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이후 문경새재는 국내 최대의 사극 야외촬영장소로 변신했다. 최근엔 무인시대를 촬영하고 있는데, 고려의 병사, 백성, 장사꾼 등의 옛 복장을 한 엑스트라들과 관광객들이 왕궁과 민가를 배경으로 뒤섞인 광경은 색다른 재미가 있다. 문경새재는 드라마 덕에 어느덧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이 되었던 것이다.

관람객들은 보통 세트장에서 되돌아가지만, 문경새재의 참 맛은 뭐니뭐니 해도 고갯길을 걷는 데 있다. 1970년대 중반에 복원할 때 도로를 비포장으로 남겨두었기 때문에 운치가 한껏 넘친다. 제1관문인 주흘관(主屹關), 제2관문인 조곡관(鳥谷關), 제3관문인 조령관(鳥嶺關), 그리고 경상감사가 직인을 주고받았던 교구정터, 객사가 있던 조령원터 등을 살펴보며 걷는 맛은 문경새재에서만 누릴 수 있다. 한글 고어로 '산불됴심'이라 쓰여있는 조선시대 돌비석을 만나는 등 잔재미도 쏠쏠하다.

문경새재 계곡의 용추폭포. 문경새재는 고갯길 주변의 경치도 제법 아름답다.

조령관이 떡 하니 버티고 있는 고갯마루 한쪽엔 시원하고 맛 좋은 조령약수가 샘솟는다. 괴나리봇짐 지고 먼길을 가던 옛 나그네들이 마시던 그 샘물이다. 과거로 돌아가 그들처럼 샘물을 한 모금 마시고 성벽에 올라가 보자. 첩첩이 넘실대는 산물결이 그대를 정겹게 안아줄 것이다.


- '길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문경새재박물관

한편 문경새재를 오르기 전후에 꼭 들러봐야 할 곳이 있다. 바로 문경새재 매표소 앞에 있는 문경새재박물관(054-572-4000 www.mgsj.go.kr). 새재를 끼고 있는 문경은 영남지방과 충청지방의 교류지였고, 영남과 중앙을 잇는 주요 연결로였다는 점에서 역사적, 문화적, 지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고을이다. 박물관엔 이런 역사적 특수성을 살린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최근엔 '옛지도로 보는 문경과 백두대간'이란 주제로 가진 특별기획전이 관람객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관람료는 도립공원입장료(어른 1,900원, 어린이 750원)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따로 내지 않아도 된다.

* 숙식 새재 입구에 숙박시설이 많다. 새재 입구의 소문난식당(054-572-2255)은 청포묵조밥과 도토리묵조밥이 잘 알려져 있다. 이 외에도 새재할매집(054-571-5600) 등 음식을 잘 하는 식당이 많다. 새재를 다녀온 후 칼슘이 함유된 중탄산천인 문경온천에서 온천욕을 하는 것도 괜찮다. 알레르기성 피부염·통풍·심장병·관절염 등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 교통 영동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충주IC→3번 국도→충주→살미→수안보→이화령터널→문경새재. 중부고속도로 증평IC→510번 지방도→증평→34번 국도→괴산→이화령터널→문경새재. 매표소에서 새재 정상까지는 6.5km인데, 왕복 3∼4시간쯤 걸린다.

* 참조 문경새재도립공원 홈페이지(saejae.mg21.go.kr), 관리사무소(054-571-0709).

민병준 여행작가


입력시간 : 2004-08-25 16:23


민병준 여행작가 sanm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