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세계 질서를 바꾼 작은 거인

[Books] 덩샤오핑 평전
21세기 세계 질서를 바꾼 작은 거인

언젠가 외국 손님들이 덩샤오핑(鄧小平ㆍ1904~1997)에게 개혁 정책이 중국과 덩 본인의 정치적 운명에 예기치 않은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덩샤오핑은 한바탕 웃고 나서 이렇게 답했다. “ 보시다시피 나는 키도 작고 몸집도 조그만 사람이오. 만일 정말로 하늘이 무너진다고 해도 저 키 큰 사람들과 달리, 하늘을 떠받치고 있어야 할 책임이 없단 말이오.”

150㎝를 간신히 넘는 단구, 평범하게만 보이는 둥글넓적하고 통통한 얼굴의 덩샤오핑에게서 마오쩌둥(毛澤東)의 당당함이나 저우언라이(周恩來)의 준수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작은 거인은 중국을, 나아가 21세기 세계의 향방을 바꿔 놓았다.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의 말대로 “ 지금 중국의 모든 것은 덩샤오핑이 말한 그대로 바뀌어 가고 있다.”

지난 22일은 덩샤오핑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 오늘날 중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는 마오쩌둥이지만, 가장 고마워하는 지도자는 덩샤오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에서는 그에 대한 기념의 열기가 대단하다. 때맞춰 번역된 ‘ 덩샤오핑 평전’은 1986년 미국 하버드 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중국계 학자 벤저민 양의 저서로 덩샤오핑의 면모를 비교적 정확히,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전기다.

중국 남서부 쓰촨(四川)성의 작은 농촌에서 태어나 1920년 열여섯 나이에 오른 프랑스 유학길, 1차 대전 후 공황기에 학업을 계속하기 어려워 공장 노동자로 일하던 덩샤오핑은 중국공산청년동맹 프랑스 지부에 가입하고 저우언라이, 리리싼(李立三) 등을 만난다. 다시 러시아로 건너가 직업 혁명가로 변신, 1927년 중국에 돌아와 대장정과 항일투쟁을 거치면서 마오쩌둥의 신임을 받게 된다. 저자는 1950년대말의 대약진운동과 1960년대의 문화혁명, 1976년 4인방과의 권력다툼,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와 1997년 아흔세 살의 나이로 사망하기까지 덩샤오핑의 일생을, 그의 ‘ 정치 감각’에 초점을 맞춰 세밀하게 묘사한다.

“ 먹을 것을 가진 자가 결국 모든 것을 가진 셈이다.”(중ㆍ일 전쟁 당시)

“ 검은색이든 흰색이든 무슨 상관인가. 쥐를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다.”(대약진운동 실패 후 1962년)

“ 단호하게 대처하고, 재주껏 이용하라.”(외교 지침)

그의 실용주의 노선을 보여주는 이런 유명한 말들이 전후 상황과 함께 상세하게 소개된다. 톈안먼 사태가 나자 걸려온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통화를 거절했던 덩샤오핑은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한다. “ 그들이 뭐라고 말하든, 어떻게 반응하든 상관 없었다. 어떤 제재를 가한다 해도 겁나지 않았다. 이 상황을 타개하고 여전히 국가를 통제할 수만 있다면, 그들은 내게 돌아오게 마련이니까.”

덩샤오핑의 전기는 딸 덩룽(鄧榕)이 쓴 ‘ 나의 아버지 덩샤오핑’과 대만 정치학자 루안밍이 쓴 ‘ 덩샤오핑 제국’ 등 몇 권이 국내에도 소개됐다. 벤저민 양의 이 평전은 기존 전기들에서 발견되는 명백한 사실의 오류를 바로 잡고, 덩샤오핑의 삶을 객관적으로 조명하려 했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저자 벤저민 양은 덩의 두 아들 덩푸팡(鄧樸方), 덩즈팡(鄧質方)과 베이징대학 동창으로 각각 같은 홍위병 분대, 대학 기숙사 생활도 했다. 그는 “ 덩샤오핑은 내 아버지 세대의 사람, 그래서 내가 공경해야 할 사람”이지만 “ 전기는 전기일뿐, 좋은 것뿐 아니라 나쁜 것도 제시해야 한다”며 집필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종오 기자


입력시간 : 2004-08-26 16:03


하종오 기자 joh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