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움직인 생각의 기원들 178가지

[Books] 세계를 바꾼 아이디어
세상을 움직인 생각의 기원들 178가지

‘세계를 바꾼 아이디어’라는 책 제목만 보고는 언뜻 경제적ㆍ실용적인 발명 혹은 발견의 역사라거나, 사회적 운동 혹은 사상의 역사이겠거니 생각하기 쉬울 것 같다. 그만큼 ‘아이디어’라는 말에 대한 지금 우리의 생각은 편협하다고 해도 좋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범주를 뛰어넘는다. 저자는 “마음 속에서 먼저 일어난 역사, 즉 아이디어에 의하여 추진된 역사를 다룬다”고 쓰고 있다. 그는 “대부분의 역사적 변화는 아이디어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어떤 아이디어는 손에 잡히는 결과를 만들어 냄으로써 직접적으로 세계를 변화시키지만, 또 어떤 아이디어는 사람들의 세계관에 영향을 줌으로써 간접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부연한다.

그렇다면 그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아이디어 178가지는 어떤 것들인가. 우선 그가 다루는 시기를 보자. 기원전 3만년에서 서기 2000년까지다. 인류문명사를 포괄하는 기간이라 할 수 있다. “아이디어와 본능을 오인하지 않도록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운을 뗀 저자는 인류 최초의 아이디어로 인간이 같은 종족인 다른 인간을 잡아먹을 수 있다는 ‘식인(食人)이라는 아이디어’를 설명한다. 그가 맨 마지막 아이디어로 꼽은 것은 지구촌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문화가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는 20세기 후반의 ‘문화적 다원주의라는 아이디어’이다.

그 사이에 영적인 세계의 존재, 우주의 질서, 내세, 근친상간 금기, 보편적 도덕, 성차별주의, 국가, 평등주의, 신의 정의, 과학, 삼위일체, 선(禪), 무의식, 논리학, 성전(聖戰), 계급투쟁, 우생학, 상대성 이론, 카오스 이론 등등 인간 역사의 장정에서 생겨난 아이디어들이 스펙트럼처럼 놓여있다.

178가지 아이디어들의 세목에서 보듯 저자는 역사학과 고고학은 물론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최신 성과를 반영하면서 이 아이디어들이 하나의 아이디어로서 등장하게 된 배경, 전개 과정, 그리고 영향을 하나하나 설명한다. 각 아이디어를 설명할 때마다 동원된 사진 회화 조각 영화장면 등 모두 600여 컷의 도판이 간략한 서술과 어우러진다. 각 아이디어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바라는 독자를 위한 추천도서 목록, 책 말미에 따로 마련한 2,000여 개의 색인 항목은 이 책을 하나의 백과사전의 역할도 하게 만든다.

이렇게 보면 이 책은 저자가 서문에서 말했듯 “소위 지식인들이 경멸하는 장르”인 상식의 ‘카탈로그’ 같은 것이 아닐까 염려도 된다. 그러나 저자는 독자의 교양 욕구를 자극하는 유려한 설명과 더불어 서구중심주의에서 탈피한 객관적 시각, 치우침 없는 서술로 그 한계를 뛰어넘는다. 특정 아이디어와 관련된 다른 아이디어들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편집도 이 책이 단지 파편적 지식의 집합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벗어나게 한다.

예를 들면 ‘큰 형제애라는 아이디어’ 항목에서 저자는 “예수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윤리에 보편적인 호소를 추가했다… 어쩌면 이 아이디어의 기원은 중국 전국시대 초기 사상가인 묵자(墨子)의 겸애(兼愛)론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대량 학살’ ‘성차별주의’ ‘과학적 인종주의’ 등은 세계를 폭력과 전쟁, 자멸의 길로 몰고 가는 아이디어라고 저자가 꼽은 것들이다.

저자 펠리페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54)는 ‘밀레니엄’ ‘문명들’ ‘음식’ 등 각국에 번역된 베스트셀러를 낸 스페인계 영국 학자. 현재 런던대 역사ㆍ지리학 교수로 지구환경사를 강의하며 옥스포드대에서 현대사를 연구하고 있다.

하종오 기자


입력시간 : 2004-09-01 18:32


하종오 기자 joh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