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는 가을의 전령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곰취
아낌없이 주는 가을의 전령

사람들이 식물을 기억하는 것은 대부분 꽃의 모습이다. 특히 풀인 경우에 더욱 그러하다. 도라지꽃이나 패랭이꽃처럼 잘 알고 있는 식물인 듯 해도, 꽃이 지고 잎만 남으면 잘 알아보지 못하곤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반대로 꽃은 몰라도 잎은 잘 아는 식물이 있는데 대부분 이름 뒤에 ‘취’라는 글자가 붙어 잎을 나물로 혹은 쌈으로 먹을 수 있는 식물들은 대개 그러하다.

곰취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사람들은 보통 참취를 비롯하여 취 자라는 글자가 뒤에 붙은 유사한 국화과 식물들을 모두 합쳐 그저 취나물이라고 부르며 먹지만 유독 곰취만은 제 이름을 불러주곤 한다. 그만큼 나물로서의 곰취가 맛과 향기 면에서 뛰어나 여느 취나물과는 다른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산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이들은 곰취를 다 안다. 산나물 뜯기가 한참인 5월쯤, 초보자나 프로나 모두 나물 뜯는 이들의 손에는 곰취가 들려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물로의 쓰임새가 워낙 유용하기 때문인지 이 유명한 곰취의 꽃을 알아보는 이는 드물다. 그래서 가을 냄새가 퍼져 오는 늦은 여름, 하나 둘 피어나기 시작하여 어느 순간 산정의 한 비탈을 가득 채울 만큼 진 노란색 꽃잎을 활짝 펼쳐놓은 곰취의 꽃송이들을 만나도 그저 그 아름다움에 감탄할 뿐 잎과 꽃을 연상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단 맑은 초가을 하늘을 배경 삼아 피어난 곰취의 그 노란 꽃송이들을 제대로 감상해본 사람이라면 곰취를 단연 꽃이 보기 좋은 식물의 반열에 올려놓을 것이다.

곰취는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그야말로 한라에서 백두까지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란다. 다 자라면 1m가 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허벅지 높이 정도의 키로 자란다.

심장형의 잎은 아주 크고 특색 있다. 뿌리 주변에 달리는 잎은 50츠 이상 자라기도 한다. 줄기에는 보통 잎이 3장쯤 달리는데 잎의 모양은 역시 심장형이고, 더 위로 올라가서 달리는 잎일수록 잎자루에 날개가 발달하여 줄기를 싸거나 밑부분이 넓어져 마치 귓불 늘어진 모양처럼 발달한다. 꽃은 여름에 피기 시작하여 초가을까지 핀다. 4~5cm정도이며 우리가 꽃잎이라고 흔히 표현하는 설상화는 아주 진하고 선명한 노랑색이다.

하필 ‘곰취’란 이름이 붙었을까? 곰이 나타나는 깊은 산에서 자라기 때문일까? 한자로 웅소(熊蘇)라는 이름이 있는데 어느 이름의 유래가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그 이외에 잎의 모양이 말발굽과 비슷하여 마제엽(馬蹄葉)이라고도 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왕곰취, 곤대슬이(지리산 부근)라고도 하며 영어로는 휘셔 리귤라리아(Fischer ligularia)로 부른다. 곰취류를 통칭하는 속명 리귤라리아(Ligularia)는 특색 있는 설상화의 모습이 혀를 닮아서 라틴어로 그런 뜻을 가진 리귤라(ligula)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곰취의 가장 큰 용도는 아무래도 나물이다. 특히 어린 잎새를 따서 생으로 쌈을 싸 먹으면 쌉쌀하면서도 오래도록 입안에 남는 향기가 일품이어서 사람들은 ‘산나물의 제왕’이라는 거창한 별명도 붙여 놓았다. 잎이 조금 거세지기 시작하면 호박잎처럼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쌈 싸먹거나 초고추장을 찍어 먹기도 한다. 지리산 산골마을에서 억세진 곰취 잎으로 간장 또는 된장 장아찌를 담궈놓은 것을 먹은 일이 있는데 내내 입안에 맴도는 향기며 그 맛이 일품이었다. 초여름 딴 잎을 말려 두었다가 겨우내 묵나물로 해먹어도 된다.

곰취의 뿌리는 호로칠(胡蘆七)이라 하여 약으로 쓴다. 폐를 튼튼히 하고 가래를 삭히므로 기침, 천식 및 감기의 치료제로 이용되고 민간에서는 황달, 고혈압, 관절염, 간염 등에 쓴다. 현대 과학에서도 곰취의 성분 가운데는 항염, 지혈 작용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곰취의 꽃들이 유난히 푸른 하늘을 배경 삼아 화려하게 피기 시작하면 가을이 멀지 않은 것이다.

입력시간 : 2004-09-01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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