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기 장애인 방송아카테미, 열정적 사회참여 욕구 충족에 일조

휠체어 타고 희망을 리포팅한다
제1기 장애인 방송아카테미, 열정적 사회참여 욕구 충족에 일조


“희망 실은 ‘행복 여행’. 꽃이 피는 봄이 와도 늘 집에만 있어야 하는 장애인 여러분들, 안녕하십니까. OOO입니다….”

8월28일 서울 여의도 한국스카우트연맹회관. 햇살이 나른하게 내리쬐는 토요일 오후 여의도의 빌딩 숲에 낭랑하게 목소리로 원고를 읽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MCㆍ리포터’ 교육을 받고 있는 장애인 방송 지망생들의 목소리였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회장 주신기ㆍ이하 한국장총)이 장애인들을 위해 지난 7월 3일 문을 연 제 1기 ‘장애인 방송 아카데미’의 마지막 수업 시간이다. 그 동안 배우고 익힌 실력을 뽐내는 발표 시간이 되자, 여느 대학의 강의실 못지않은 진지함과 긴장감이 감돌았다. 무대를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 아가씨도 언어 장애가 있는 뇌성마비 장애인 아저씨도 한눈 팔새 없이 동료 학생들의 발표 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두세 명씩 팀을 이뤄 직접 대본을 쓰고 방송 원고를 읽는 작업에 참여한 학생들은 자신들의 생생한 삶의 모습을 작품에 담아냈다. ‘장애인 올림픽’과 ‘장애인 의복’,‘중도 장애인의 현실’등 이들이 평소 관심을 갖거나 고민해온 주제들을 통해 장애인의 복지를 되짚어본다는 주제다.

“골반 바지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이 입기 힘들다”는 지체 장애인, “교통사고로 중도 장애를 입어 완전히 방치된 삶을 살았다”는 중도 장애인의 호소는 그대로 방송용 멘트가 된다. 전문 방송인 뺨치는 솜씨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멀티미디어 세대인 이들의 자신감과 열기는 기성 방송인 못지 않다.

강의를 진행한 김영준 KBS 제1라디오 부장이 즉석에서 “장애인 의류 문제와 중도장애인 재활 같은 소재는 추후 방송에서 다루도록 시도할 것”이라고 약속할 정도였다.


- 8주 과정 수료 '예비 방송인'

이날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수료증을 받은 84명의 수료생(작가반 33명, MCㆍ리포터반 51명)들은 비록 8주 과정의 짧은 수업 기간이었지만 그래도 세분화된 방송 전공 교육과 방송문화를 배웠다는 자부심으로 벌써부터 ‘예비 방송인’을 자처한다.

10년 전 교통사고로 지체 1급 장애인이 된 유형기씨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 장애인의 현실을 리포팅하고 싶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루프스’로 투병 중이라는 오수미(34)씨는 “방송을 통해 나(장애인)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겼고, 본격적으로 사회에 뛰어들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수료생들 중에는 1,2급 중증장애인이 60명을 넘는다. 이동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충남 서산이나 강원도 홍천 등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서 올라온 사람들도 모두 9명.. 이들의 직업은 연극배우, 대학강사, 자유기고가, 텔레마케터 등으로 다양하다.

이들은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낮 1시까지 3시간동안 방송 저널리즘과 장애인 방송의 현황, 라디오 MC론, 방송 제작과정의 작가 역할, 인터뷰 토론 등을 배웠다. 또 8월17일부터 총 4회에 걸쳐 현대홈쇼핑에서 방송 현장 실습 교육과 대본 작성 연습 등을 병행했다. 방송 전반을 이해해야 하는 전문 교육과정이지만, 대부분이 방송 교육을 처음 접한 장애인들인 만큼 수업은 그리 어렵지 않게 꾸며졌다. 간혹 KBS 김은성 아나운서, 프리랜서 방송인 이금희 씨, MBC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개그우먼 김미화 씨 등의 특강도 마련됐다. 장애인 학생들은 이런 현직 방송인 특강에 대해 “직접 만나기 어려운 분들의 실제 방송 경험담을 들어 좋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오전 10시 “어려움에 정면으로 부딪혀야 기회가 온다”는 내용으로 강의했던 김미화 씨는 예정된 강의시간보다 무려 30분이나 더 열변을 토해내 수강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의료사고로 인해 중3 때 실명했다는 장문정(25)씨는 “시각 장애라 선생님들의 제스처나 방향 지시를 보지 못해 수업에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열정적?강의를 들으며 큰 감명을 받을 수 있었다”면서 “특히 질환 등 핸드캡에도 한치의 허술함을 보이지 않는 선생님들의 프로 정신을 진심으로 본받고 싶다”고 말했다.


- "이젠 카메라에 친근감 느껴요"

이번 교육은 장애인들의 학습 욕구를 충족시킨 것 외에도, 장애인들의 가장 큰 아픔인, ‘꿈’을 가질 권리를 박탈당한 소외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희망을 되살렸다는 평가도 받았다. MC ㆍ리포터반 수강생인 이희영 씨는 한국장총 홈페이지(www.kodaf.or.kr) 게시판에 이렇게 방송 교육에 대한 소감을 올렸다.

“예전에는 카메라 앞에 서는 것에 거부감을 갖고 있었거든요. 잘난 것도 없는데 무슨 인터뷰일까 하면서. 그런데 이제는 제 앞에 다가오는 카메라에 적대감보다 친근감을 느끼는 걸 보면 제가 정말 변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꿈이 한 걸음 가까이 온 것 같아요. 너무 행복했어요.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것으로, 힘들고 지루하기만 일상이 달라보였습니다.”

작가 반의 최수진 씨 역시 “세심히 준비된 교육을 받을 수 있음에 감사해 눈물이 났다. 살기에 바빠 아무 생각 없이 지내왔는데 방송 아카데미 교육은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했다.

이 같은 열기에 주최측도 고무된 반응이다. ‘장애인 방송 인력 인프라 구축’을 위해 이번 교육을 주최한 한국장총의 김동범 사무처장은 “장애인들의 사회 참여 욕구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방송을 배우고자 하는 장애인 학생들의 열정은 기대 이상이었다”며 “내년에는 보다 세분화한 심화교육 과정을 개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장총은 성우, 영상, 편집, PD 과정 등을 추가 마련하는 제 2기 ‘장애인 방송 아카데미’를 내년 5월 열 계획이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4-09-02 13:49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