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지 못할 사랑 그 아픔과 열정에 대해비정상적 사랑에 상처입은 한 영혼의 이야기

[시네마 타운] 나쁜 교육
이루지 못할 사랑 그 아픔과 열정에 대해
비정상적 사랑에 상처입은 한 영혼의 이야기


새 영화 “나쁜 교육”에서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그만의 감성으로 21세기의 거장으로 자리잡고 있는 그의 지위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성 정체성이나 색채에 대한 키치적인 감수성으로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던 것이 그의 출발점이라면, 그는 이제 그런 감수성을 다층적이며 복합적인 형태의 장르와 이야기구조를 지닌 성숙하고 세련된 대가의 품격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어린시절의 사랑과 아픔을 담고 있는 멜로 드라마에서 출발한 영화는, 그 추억을 재생해내는 영화 속 영화를 잠시 지나, 다시 치명적인 유혹을 지닌 남자의 치명적인 범죄이야기를 담은 느와르에까지 이른다. 영화 속에는 게이와 성전환자, 혹은 어린이를 성추행하는 신부같은, 일반적인 개념으로는 ‘비정상적’인 사랑의 모습들로 가득찼지만 그 속에는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과 사랑이 있고 그 사랑이 무너졌을 때의 아픔과 아물지 않은 상처가 남긴 슬픔이 절절하게 담겨 있다.


- 소년에 대한 신부의 아픈 사랑

게이 영화감독 엔리케는 새로운 영화작업을 위한 소재를 찾고 있다. 그런 그에게 16년 전 12살 때의 학교 친구를 자처하는 이나시오가 새 시나리오를 들고 찾아온다. 시나리오가 전개되면서 어린시절 두 소년이 학교에서 겪었던 우정이상의 감정과 문학수업을 맡았던 신부가 이나시오를 육체적으로 사랑하게 됨으로써 이 사랑이 깨어져 가는 과정 이후 마약중독의 드랙 퀸으로 변해버려 다시 그 신부를 찾아가는 이나시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자신을 앙헬(천사)라는 새 이름으로 불러달라는 이나시오의 청으로 엔리케는 그에게 주인공 역할을 맡긴다. 영화의 촬영이 시작되고 앙헬과 엔리케는 다시 육체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관객은 이 영화 속 이야기가 실제 일어났던 사건에 대한 단순한 회고인지 아니면 허구화된 버전인지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가 없다. 감독인 엔리케 역시 육체적인 교류 외에 정신적인 교감을 얻을 수 없는 앙헬의 정체성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엔리케는 어느날 고향을 찾아가 앙헬이 이미 몇 년 전에 죽은 이나시오가 남긴 유작 시나리오를 가지고 와서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앙헬의 모습에 아름다움을 느낀 엔리케는 쉽게 그에 대한 매혹을 떨치지 못한다.

결국 영화촬영의 마지막 날 문제의 마놀로 신부가 나타나면서 다시 이야기는 어두운 느와르의 세계로 전환한다. 생전의 이나시오의 협박에 시달리던 신부가 그의 집을 찾아가면서 앙헬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이들은 이나시오의 죽음의 공모자가 됐던 것이다. 결국 네 사람간의 얽히고설킨 사랑에 대한 진실은 누가 선이고 악인가를 구분할 수 없는 모습과 ,허구의 이야기와 현실,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모호해진다.

장르적으로 사랑의 이야기이면서 스릴러일 수도 있고, 이야기의 형식에 있어 사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관계에 있어 사랑의 근원적인 순수함과 동시에 욕망으로 인해 파멸되어가는 이야기이기도 한 영화는 도발적인 동시에 아름답다. 특히 신부가 어린 이나시오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단순히 유아성 추행 같은 추잡한 행위로만 그려지지 않고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소년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이끌림으로 표현되고 있다. 신부의 반주에 맞춰 소년이 “문리버”를 부르는 장면이나 신부의 생일파티에 그가 직접 자신의 아픈 사랑의 이야기를 담아 개사한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부르는 청아한 모습은 이 영화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장면으로 신부의 소년에 대한 피할 수 없는 열정과 가슴 아픈 사랑을 절절히 느끼게 해준다. 전작 “그녀에게”에서도 “쿠쿠루 쿠쿠 팔로마”노래의 절묘한 배치로 잊혀지지 않는 장면을 만들어 냈던 감독은 이번에도 그에 못지않은 탁월한 노래 장면으로 영화의 백미를 만들어냈다.


- 변하지 않는 아픈 과거의 기억

실제 어린 시절 영화 속에서와 같은 가톨릭 기숙학교를 다니기도 했던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새 영화가 얼마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감독은 영화 속 영화를 통해 예술가의 추억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영화라는 매체에 담겨지나 하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은 그런 예술적인 표현으로 치유의 과정을 거친 뒤에도 아픈 기억의 과거는 변하지 않은 채 남아 있다는 점이다.

그의 전작 “그녀에게”에서 처럼 관객의 가슴을 둔중하게 때리는 힘이나 “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서의 마법과도 같은 감정적인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지는 않지만 “나쁜 교육”은 순수하면서도 관능적이고, 희극이면서도 비극일 수 있는 복잡 미묘한 톤을 가진 독특함이 있는 영화다.

■ 시네마 단신
   
- <즐거운 우리집> 스페인 판타스틱영화제 초청

단편 '즐거운 우리집'(감독 엄혜정)이 10월 30일부터 11월 6일까지 스페인에서 열리는 산세바스티안 판타스틱영화제의 단편경쟁부문에 초청됐다. '즐거운…'은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섬뜩하면서도 독특한 시각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감독 엄혜정 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에서 촬영을 공부하는 학생이다. 이 영화는 그 동안 부천판타스틱영화제와 브뤼셀판타스틱영화제에서 호평받은 바 있으며 미국에서 열리고 있는 팜스프링스국제단편영화제에서 상영 중이다.


- <태극기 휘날리며> 미국 6개 도시서 개봉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9월 3일 미국 뉴욕 LA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시애틀 호놀룰루 등 6개 도시 35개 스크린에서 일제히 개봉된다. 이는 한국 영화 사상 최다 개봉관. 상영 성적이 좋으면 스크린을 점차 늘려나가는 미국 영화계의 관행에 비추어 '태극기 휘날리며' 역시 수익에 따라 상영관이 늘어날 전망이다.

이윤정 영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4-09-08 13:45


이윤정 영화평론가 filmpoo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