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사랑 듬뿍 담긴 덩굴식물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사위질빵
장모사랑 듬뿍 담긴 덩굴식물

이즈음 시골 길을 걷다보면, 담장 위나 숲 가장자리에 다른 나무나 풀들을 타고 마치 흰 눈이라도 소복히 내린 듯, 우유빛 꽃들이 탐스럽게 피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간 눈여겨 보지 않았지만 들여다 볼 수록 곱고, 되짚어 보면 그 자리에서 지난 여름부터 지금까지 오래도록 피어있었다면 십중팔구 사위질빵이기 쉽다.

사위질빵은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덩굴성 목본식물이다. 덩굴이라고해서 칡넝쿨이나 등나무 줄기처럼 굵고도 질긴 나무넝쿨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쓰임새로 따지자면 어느 곳 하나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듯한 여린 넝쿨을 가진다. 설사 잘 자라나 굵게 자랐다 치더라도 잘 끊어지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웃해 자라는 덤불이나 담장을 타고 넘으며 풍성한 꽃송이를 한아름 피워내는 모습은 참으로 장하다. 이 가는 덩굴이 결국 사위질빵이리는 아주 독특한 이름을 얻게 하였는데 그 사연인 즉 다음과 같다.

옛날부터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 말도 있듯이 처가집에 가면 사위는 의례껏 극진한 대접과 사랑을 받기 마련이다. 예전 일부 지방에서는 가을이 되어 곡식을 추수할 때가 되면 사위가 처가집에 가서 가을걷이를 돕는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사위에게 일을 시키는 장인과 장모의 마음이 오죽 했으랴. 그래서 다른 일꾼들보다 유난히 짐을 적게 실어 지게질을 하게 하자 함께 일하던 농부들이 반은 불평으로 반은 부러움으로, “약해빠진 이 식물의 줄기로 지게의 질빵을 만들어 져도 끊어지지 않겠다”며 놀렸다고 한다. 그 이후로 이 덩굴식물의 이름은 사위질빵이 되었다는 것이다. 가족들간의 사랑이 진하게 묻어 나는 따뜻한 이야기인 듯 하다.

북한에서는 사위질빵을 두고 질빵풀이라고 부르며 서양에서는 Virgin's Bower, 또는 October Clematis라고 한다. 앞의 말은 ‘처녀의 은신처’란 뜻이 되는 듯 한데 은신처가 되는 덤불치고는 곱고 아름다운 꽃이 피기 때문일까?

사위찔빵은 아직 우리 나라에서는 본격적으로 관상적인 가치를 알아 주고 키우는 이는 없지만 앞으로 좋은 관상수가 될 듯 싶다. 더욱이 차츰 조경 소재가 다양해지고 덩굴성 소재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관상수로서의 전망은 아주 밝다.

이렇듯 조경용으로써의 쓰임새는 아직 미개척 분야이지만 사위질빵은 오래 전부터 약재로 이용되어온 식물이다. 한방에서는 이 나무를 두고 여위(女萎)또는 산목통(山木通)이라고 부르며 주로 줄기를 이용한다. 주로 탈홍, 말라리아 같은 병으로 춥고 열이 날때, 부인들의 부종, 콜레라성 설사 등에 처방한다고 한다.

또한 시골에서는 사위질빵의 잎을 따서 묵나물로 해먹는데 먼저 독한 성분이 있는 식물들을 처리하듯 데쳐서 잘 우려낸 다음, 오래 저장해 두었다가 독성이 약화되면 나물로 먹는다. 혹 독성분이 덜 빠진 것을 그냥 먹으면 입안이 붓고 치아가 빠지며 구토 설사를 일으키기도 하니 아주 주의해야 한다.

사위질빵의 잎은 세 장의 작은 잎이 달린 복엽이 2개씩 한 마디에 마주 보고 달린다. 손가락 두 마디 쯤 되는 작은 잎에는 큰 결각이 나 있다. 이제 계절이 가고, 잎은 차츰 누런 빛이 들기 시작할 것이다. 또 잎자루와 줄기 사이에서 꽃대를 올려 피어 있었던 자리에서는 작은 씨앗이 담긴 암술대에서 씨앗이 맺힐 것이다. 꽃잎과 꽃받침이 구분되지 않은 원시적인 형태의 밝고 아름답던 그 꽃들이 지고 나면. 갈색 털 덕에 바람을 타고 날아가 새로운 후손을 만들 씨앗들이 맺힐 것이다. 그렇게 가을은 오는 것일 터이다.

입력시간 : 2004-09-08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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