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의 땅에 익는 가을을 보라민초들의 함성이 들리는듯, 곳곳이 110년전 농민군의 흔적

[주말이 즐겁다] 정읍 황토현
동학의 땅에 익는 가을을 보라
민초들의 함성이 들리는듯, 곳곳이 110년전 농민군의 흔적


어느새 가을이 성큼 가까이 다가왔다. 벼가 익어가면서 하루가 다르게 색깔이 변해가는 들판은 도시인의 가슴을 넉넉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는 자연의 섭리에 농부의 피땀 어린 노력이 보태진 결과가 아니겠는가.

전라북도 정읍은 수확의 계절이 가까워지면 유독 생각나는 고을. 110년 전 부조리에 항거하던 농민들의 첫 함성이 터져 나온 보(洑)가 있었고, 첫 전투를 대승으로 이끌며 농민들의 사기를 높여준 고개도 이곳에 있다. 하늘 높푸른 이 초가을날, 한반도의 곡창에 터를 잡은 ‘동학의 고을’에서 가을을 맞이하며 아직도 여전한 농민의 한숨 소리도 들어보자.

- 갑오동학농민혁명의 도화선이 된 만석보

황토현 고갯마루에서 내려다 본 초가을 풍경. 농민군이 이곳에서 승리함으로써 동학혁명운동이 크게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정읍에서의 첫 번째 여정은 동진강과 정읍천의 합수 지점 근처에 있는 만석보(萬石洑)터. 우리나라 최고의 곡창 지대로서 논으로 이루어진 지평선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의 하나인 배들평야에 자리하던 만석보는 한국사의 일대 변혁을 가져왔던 동학농민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1892년 5월, 고부군수 조병갑은 이미 제 역할을 하는 예동보(禮洞洑)가 있었음에도 농민들을 강제로 동원해 그 아래에 새로운 보를 막고 만석보라 하였다. 그러나 홍수가 나면 냇물이 범람하여 상류는 오히려 큰 피해를 입게 되었는데도 조병갑은 보세(洑稅)를 거두면서 농민들의 원성을 샀다. 게다가 여러 명목으로 부당한 세금도 거둬들여 착복을 일삼기까지 했다. 이에 녹두장군 전봉준을 선두로 분연히 일어선 농민들이 1894년 1월 10일 밤 배들평으로 몰려가 만석보를 부숴버리면서 동학농민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현재 만석보터엔 1973년 동학혁명기념사업회에서 세운 유지비와 1999년에 세운 양성우 시인의 ‘만석보시비’가 있다. 비석엔 1975년 YWCA에서 ‘겨울 공화국’이라는 시를 낭독한 사건으로 교사직을 파면 당한 경력이 있는 양성우 시인이 지은 시 ‘만석보’가 정성스레 새겨져 있다. “들리는가, 친구여/갑오년 흰눈 쌓인 고부들판에/성난 아비들의 두런거리는 소리/만석보 허무는 소리가(중략)”

전봉준 장군이 훈장생활을 하던 고택.

시를 읊조리며 만석보터에서 나와 2km쯤 가면 이평면 소재지의 말목장터. 1894년 1월 10일 밤 동학농민군이 집결한 뒤 고부관아로 진격한 곳으로 고부 점령 후 이곳은 농민군 진지가 되었다. 장터 사거리엔 전봉준이 모여든 농민들에게 연설을 하고 기대어 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아름드리 감나무가 한 그루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지난해 여름에 비바람에 쓰러졌다. 이 감나무는 현재 방부처리 되어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서 보관중이다. 말목장터와 가까운 장내리 조소마을(당시에는 고부군 궁동면)엔 전봉준이 5~6년 전에 이사와 훈장 생활을 하다 농민 봉기를 일으킬 때까지 거주하던 전봉준 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한편, 고부면 신중리 주산마을은 동학혁명을 모의한 곳으로, 사발통문 서명자 후손들이 거사 계획을 기념하기 위해 1969년 건립한 모의탑이 서있다. 여기엔 사발통문 서명자 20명의 생몰 연대와 그 후손들의 거주지 등이 기록되어 있다. 1893년 11월 고부군 서부면 죽산리(현 고부면 신중리 주산마을) 송두호의 집에서 전봉준 등 20명이 모여 항쟁을 계획하고 그 결의 내용과 아울러 사발을 엎어 놓은 모양으로 서명하여 각 마을의 집강에?돌렸다 하여 사발통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본문과 뒷부분이 떨어져 나가 그 전부를 알 수는 없지만 1968년 12월 세상에 공개되면서 동학농민혁명이 우발적 감정의 폭발이 아닌 철저한 혁명적 탈?계획에서 치밀하게 진행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의 감정 결과 필체가 한 사람이 썼다는 점과 사용된 종이와 먹이 비교적 후대의 것으로 판명되어 원본이 아닌 사본으로 추정하고 있다.


- 오늘도 무심히 벼가 익고 있는 황토현

황토현 고갯마루에 서있는 동학혁명기념비.

이렇듯 당시 관련 유적지를 둘러보았다면 마지막으로 황토현 고갯마루를 올라보자. 덕천면 하학리와 도계리 사이에 있는 황토현(높이 35.5m)은 1894년 4월 7일 동학농민군이 전라감영군과 싸워 승전한 곳으로 나지막한 황토 언덕에 불과하지만 이곳에서의 승리는 동학농민군의 혁명운동이 크게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황토현 마루엔 최초의 기념탑인 갑오혁명기념탑(1963년 건립)이 있다. 여기엔 당시 농민군이 내걸었던 ‘제폭구민, 보국안민’이란 구호와, ‘새야 새야 파랑새야’와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가보리’ 라는 구전 민요가 새겨져 있다. 황토현 주변에는 전봉준 장군 부인의 묘가 있었다 하나 지금은 그 자취를 알 수 없다.

황토현 아래에 조성해 놓은 황토현 전적지는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곳. 갑오동학혁명기념탑을 비롯해 1987년에 세운 전봉준의 동상과 사당, 그리고 지난 5월 준공한 동학농민혁명기념관 등이 있다. 동학농민혁명기념관( www.donghak.go.kr 063-530-7578)엔 자체 수장 유물 1500여 점 가운데 160여점을 전시하면서 혁명의 시대적 배경과 전개과정 등을 첨단 영상물 등을 통해 알려주고 있다. 혁명 전개 과정을 시대별, 장소별로 구성해 전시물을 설치했다. 관람료와 주차료는 무료.

* 교통 : 호남고속도로 태인IC→30번국도→신태인→710번 지방도→만석보터→말목장터→전봉준장군고택→동학혁명모의탑→황토현전적지. 서울 강남터미널→정읍=1일 27회 운행. 3시간 20분 소요. 서울역→정읍역=1일 20여회 운행. 3시간 20분 소요. 정읍시청→황토현전적지=시내버스(24-1, 25)가 11회 운행.
* 숙식 : 황토현전적지와 이평면 소재지인 두지리 말목장터에 요기할 수 있는 식당이 있다. 그 외의 동학혁명 유적지 주변엔 숙식할 곳이 마땅치 않다. 내장사 입구의 내장산관광호텔(063-538-4131), 단풍산장(063-538-9755), 내장사민박(063-538-8169) 등 수십 군데의 숙박시설이 있고 산채비빔밥을 맛볼 수 있는 식당도 많다.

입력시간 : 2004-09-15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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