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미와 삼덕의 자연주의 식단

[맛이 있는 집] 사찰음식전문점 <고갯마루>
육미와 삼덕의 자연주의 식단

“흔히 사찰음식이라고 하면 특별하게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요즘 웰빙이라고 말하는 모든 것들이 전통 생활 방식과 일맥상통하는 것처럼 사찰음식 역시 우리가 어렸을 적에 먹던 음식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거기에 음식을 만들 때의 법도를 따른다는 것 정도가 틀릴 뿐이죠.”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사찰음식에 접근한 일반인들에게 이런 설명은 왠지 가슴에 확~ 와 닿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서양음식과 패스트푸드, 인스턴트식품에 길들여진 우리들에게 사찰음식은 아무데서나 맛 볼 수 없는 꽤나 특별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찰음식은 육미와 삼덕의 조화를 우선으로 꼽는다. 육미(六味)는 신맛, 쓴맛, 단맛, 짠맛, 매운맛에 부드러움을 더한 것이고 삼덕(三德)은 청정(깨끗함), 여법(조리순서를 지킴), 유연(맛의 조화, 음식의 부드러움)을 뜻한다. 스님들의 수행에 방해가 되는 파, 마늘, 부추를 포함하는 오신채가 빠지는 것은 물론이다.

뇌졸중이나 심장병과 같은 성인병이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음식이 독이 됐기 때문이다. 음식끼리의 궁합,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무시한 채 음식을 가려 먹지 않은 결과가 바로 병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찰에서 해 먹는 음식은 자극적이지도, 몸을 해치지도 않는다. 나물과 같은 자연 재료를 이용하는 것도 그렇지만 지나침이 없기 때문이란다. 이는 적절한 조리방식에도 해당이 되고 먹을 만큼만 만들어 낸다는 이야기도 된다. 음식을 만들 때 버릴 생각을 하지 않으면 먹을 궁리가 생긴다는 말이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실제로 전국적으로 사찰음식을 선보이는 곳은 7~8군데 밖에 되지 않는다. 그 중에 서울에 3곳 정도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노원구 상계동의 ‘고갯마루’다. 수락산의 바위 절벽이 올려다 보이는 한적한 장소에 자리한 이 곳은 번화가와는 동떨어져 있어 아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찾아오기 힘든 위치다. 준비 과정부터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모든 음식은 그때그때 만들어 시간이 많이 걸린다. 전날 예약은 필수다.

푸짐한 것만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러한 요구를 맞추다 보면 버릴 궁리부터 하게 되어 정말 ‘먹을 양 만큼’만 만드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인공조미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 대신 들깨가루 같은 자연조미료와 함께 일반인들을 위해 소량의 파, 마늘 정도는 사용한다.

죽과 수삼대추샐러드, 나물구절판 등이 애피타이저라면 두부소박이, 표고탕수이, 버섯전골 등은 주요리로 제공된다. 계절나물과 부각(일종의 튀김), 장아찌 등은 항상 곁들여지는 메뉴다. 요리는 전통사찰음식연구원의 교육과정을 이수한 분들이 맡고 있는데, 직지사버섯무생채와 같이 각 사찰의 특색을 담은 음식들을 맛보는 즐거움도 크다.

봄에는 생채, 여름엔 채소를 살짝 데친 숙채, 가을과 겨울엔 말린 나물과 같은 저장식품을 주로 사용한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의 상차림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요리 하나하나에 많은 정성이 들어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허기뿐 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채워갈 수 있어 음식이 나오기까지 수고한 모든 사람들에게 절로 감사한 마음이 생기는 그런 상차림이다.

- 메뉴 : 사찰정식▶ 산사정식 2만5,000원(1인), 궁중진찬 ‘선’ 4만5,000원(1인), 궁중진찬 ‘진’ 5만9,000원(1인)-전일 반드시 예약 / 한정식▶ 마루정식 2만원, 진찬 ‘미’정식 3만원-닭가슴살수삼냉채, 갈비찜, 로스편채 등의 육류요리가 제공된다. 점심특선(평일 오후 3시까지)▶ 낮 정식 1만3,000원, 런치 샤브샤브 1만3,000원.
- 영업시간 : 오전 11시 30분~오후 3시, 오후 5시~10시. 매월 둘째, 넷째 월요일, 추석과 설연휴 휴무.
- 찾아가는 길 : 지하철 4호선 상계역 하차, 1번 출구 맞은편에서 01번 마을버스를 타고 대동택시 앞에서 하차한다. 대동택시 옆길로 약 50m 가량 걸으면 정면에 고갯마루(2층 건물)가 보인다. 02-951-8790

서태경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10-05 16:23


서태경 자유기고가 shiner96@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