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그 흔적에 대한 공유와 환상속에서의 희망찾기인간의 아픔에 초점 맞춘 간결한 구도구원과 사랑의 메시지 전달에 주력

[시네마 타운] 김기덕 감독의 <빈 집>
상처, 그 흔적에 대한 공유와 환상속에서의 희망찾기
인간의 아픔에 초점 맞춘 간결한 구도
구원과 사랑의 메시지 전달에 주력


얼마 전 베니스 영화제를 포함해 이미 여러 차례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한 김기덕 감독은 이제 명실상부한 한국의 대표감독으로 자리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편영화로 데뷔한지 채 10년이 되지 않은 짧은 기간동안 그가 해외에서 이룬 성과는 눈부시다. 관객과 평단 모두로부터 관심을 얻지 못하던 어려웠던 시절에도 불구하고 그는 적은 제작비와 초단기간 촬영 등으로 꾸준하게 한국 영화계에 그의 뿌리를 깊이 내렸다.

평론가들의 지독한 혐오를 받는 한편으로 매니아층을 만들어내면서 밖으로는 독특한 미학과 감성을 가진 아시아의 감독으로 해외 평론가들을 매료시켰다. 아직도 그는 영화 ‘빈 집’을 일본 자본으로 전부 제작해야 했을 정도로 한국 영화계에서는 ‘흥행 검증’이 안된 감독이지만 영화는 국내개봉을 앞두고 해외시장에서 벌써 100만불 이상의 판매실적을 올렸다. 그의 ‘서바이벌’전략은 이제 세계를 무대로 한다.

이런 눈부신 성과에도 불구하고 한국 관객 대부분이 그를 한국의 대표적 감독으로 꼽는데 동의 한다고는 할 수 없다. 그의 영화 속 강렬한 이미지와 이야기들이 그의 영화를 다르고 독특한 감독으로 인정하게는 했지만 보통의 관객이 보기에 그의 영화 속에서 감독이 전하고 싶어하는 메시지를 읽어 내기에 앞서 그의 영화가 주는 폭력, 특히 성적인 폭력에 대한 거부감과 지나치게 비 일상적인 에피소드 같은 것들에 불편함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그의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대단히 아픈 것을 참아내야 한다는 것 등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새 영화‘ 빈집’은 김기덕 감독의 작품으로는 훨씬 쉽게 볼 수 있는 영화다. 우선 오랜만에 그의 영화에 이름을 알만한 주연배우 (이승연)가 얼마 전 스캔들을 일으켰던 이미지를 그대로 가지고 누드 사진모델로 출연한다. 영어 제목이 3 Iron인 영화 속에서는 물론 그 3번 아이언을 이용한 폭력 장면이 나오지만 확실히 이전 작품들에 비한다면 미미한 수준이다. 여전히 여자주인공은 남편에게 두들겨 맞는 역할이지만 얼굴에 비춰진 멍자국으로만 짐작할 수 있을 뿐 직접적인 폭력장면은 없고 강간 장면도 없다. 이야기 역시 간결하다.


- 우령에게 얻는 삶의 희망

전단지를 돌리는 한 남자는 빈집을 열고 들어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어느날 들어갔던 빈집에서 멍투성이의 여자를 만난다. 둘은 함께 집을 나와 다시 빈집들을 전전하며 마치 세상에 있되 눈에 보이지 않는 유령처럼 살아간다. 하지만 그들의 ‘유령노릇’이 ‘가택침입죄’라는 세속의 잣대에 걸려 남자가 감옥으로 가고 그 남자는 진짜 ‘유령’이 되는 노력을 거친 뒤 다시 여자의 집으로 돌아와 그녀의 남편과 기이한 동거를 시작한다.

여자 주인공의 단 두 마디 외에는 남녀 주인공들의 대사가 전혀 없는 이 영화는 그저 둘이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면서 벌이는 일들을 이미지로만 죽 늘어놓지만 그의 다른 작품과 달리 그 이미지 속에서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게 해놓은 영화다.

빈집에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남자는 그 집의 고장 난 물건들을 고쳐놓고 집안의 빨래를 말끔히 해 놓으면서 생기를 불어넣는다. 빈집에 함께 들어선 여자 역시 그와 함께 하는 시간동안 서서히 얼굴의 상처가 나아가고 함께 사진을 찍으며 조금씩 표정이 밝아지고 평화로움을 되찾는다. 남자와의 사랑으로 자신의 상처를 회복해나가는 것이다.

현실인 듯 환상인 듯 경계를 오가던 영화는 남자주인공이 감옥에서 자신의 몸을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듯이 보이게 하는 이상한 훈련을 하는 장면에서 환상의 단계로 도약한다. 빈집을 떠돌던 유령처럼 살던 남자와, 자신의 집안에서도 유령과 다름없는 삶을 살았던 여자는 완벽하게 ‘유령’이 되어 돌아온 남자를 통해 비로소 黴탔?집에서 온기를 가진 생명체로 살아갈 희망을 얻는다. 남편의 가슴에 안겨서 한 팔을 뻗어 그 ‘유령’남자에게 손을 내미는 마지막 장면은 확실히 관객을 매료시킬 인상적 장면이다.


- "열린 마음으로 내 영화를 봐라"

김 감독은 늘 관객들의 외면을 받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어떤 편견 같은 것 없이 열린 마음으로 내 영화를 봐달라”고 주문하지만 조금씩 가슴을 여는 쪽은 감독 자신이 아닌가 싶다. 여전히 그의 영화는 어떤 장면에서는 작품 전체에서 흐르는 균일한 정서를 깨는 면면이 곳곳에 서 보이고, 직접적 표현은 하지 않지만 여자는 여전히 남성의 폭력의 대상이며, 그것을 또 구제해주는 것 역시 여자 스스로의 힘이나 의지가 아니라 또 다른 남자에 의해서라는 점, 그의 영화 속 캐릭터들이 늘 그래왔듯 단면적이고 풍부하지 못한 납작한 캐릭터에 머물고 있다는 점까지 그의 영화는 아직도 불편하고 느닷없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그는 최근 작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나 ‘사마리아’같은 작품에서 느낄수 있듯 세상에 대한 분노로 주먹질 하는 듯한 특수한 상황에 놓인 인간에 대한 조명이라는 단계를 지나 확실히 어떤 형태로든 상처받는 인간들의 벗어날 수 없는 아픔에 초점을 맞추고 그들의 정신적인 구원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표현에서도 과잉인 듯 했던 그의 이미지 역시 점점 톤을 낮춰가고 있다. 갈수록 인간 구원의 희망을 읽어내려는 그의 영화는 관객과의 소통이라는 점에 있어서 희망의 문을 열어가고 있다.

시네마 단신
   
- 모스크바 한국영화제 개막
모스크바 한국영화제가 30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4일 동안 열린다. 한-러 정상회담의 후속 문화홍보사업으로 열리는 이번 영화제에는 30일 김기덕 감독의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 그리고 봄>을 시작으로 <태극기 휘날리며> <사마리아> <선물> <엽기적인 그녀> 등 모두 9편의 한국영화가 상영된다.

- 청소년영화제 본선진출작 발표
대한민국청소년영화제 집행위원회(위원장 성낙원)는 10월 9일부터 5일 간 열리는 제4회 영화제의 본선 진출작을 30일 발표했다. 올해 영화제에는 출품작 200여 편 중 예심을 거친 51편이 본선에서 상영된다. 중·고등부 상영작은 'Do it yourself'(이재환), '내동생'(전수연) 등 25편, 대학부는 '바람처럼'(김동한), '사면초가'(김민용)를 포함한 26편이 선보인다. 본선 진출작들은 청소년과 성인 등 일반인 99명이 전문 심사위원과 함께 심사한다.

이윤정 영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4-10-05 16:45


이윤정 영화평론가 filmpoo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