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택시기사의 이유있는 일탈우리 이웃과 세태풍속 여실히 보여주는 언어묘사작가가 직접 각색, 군더더기 없는 연출로 완성도 높여

[문화 비평] 연극 <라이방>
세 택시기사의 이유있는 일탈
우리 이웃과 세태풍속 여실히 보여주는 언어묘사
작가가 직접 각색, 군더더기 없는 연출로 완성도 높여


2004년 ‘밀양 여름 공연 예술 축제 - 젊은 연출가전’의 최우수상 수상작 <라이방>이 정보소극장에서 10월 말까지 연장 공연 된다. DVD로 이미 출시된 장현수 감독의 영화 <라이방>과 연극을 비교하면서 관람하면 더 흥미롭다. 연극 공연에 적합하도록 생략되고 압축된 장면들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한 장면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시나리오를 작가가 직접 짜임새 있게 각색해서 공연 대본으로서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를 바탕으로 한 군더더기 없는 연출과 변신에 능한 배우들의 호연은 배우의 예술인 연극을 보는 재미를 더해 준다. 연극 <라이방>은 영화의 다양한 사건과 시공간을 압축하여 극적 긴장감과 밀도를 높였다. 영화에 나오는 수 많은 등장 인물들을 연극에서는 세 명의 택시 기사와 한 여자, 단 네 명으로 대체했다.

일인다역을 하는 배우들의 연기력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것도 이 연극의 매력이다. 여성이 나오는 모든 역할을 도맡은 임혜숙은 주점 여주인 김 마담, 진상의 정부 다혜, 재범의 아내인 인희, 기진의 딸 은정, 그리고 할머니의 시신까지 혼자서 무리 없이 소화한다.

무대 뒤에서 의상과 분장을 고치느라 얼마나 분주하랴! 개개인의 표정 연기도 출중하지만 이들의 잘 어우러진 앙상블 연기는 많은 시간을 연습에 바쳤음을 짐작하게 한다. 연출은 배우들의 기본기를 바탕으로 공연의 흐름을 신속하고 일사분란하게 이끌어 나가며, 극의 주제에 적합한 매끄러운 극적 리듬을 만들면서 관객의 주의를 사로잡는다.


- 소시민의 일탈과 일상으로의 귀환

도시 소시민인 세 택시 기사 이야기에 어떤 극적인 부분이 있을까?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간단하다. 진상(지대한 분), 기진(최무인 분), 재범(윤진호 분)은 택시 운전을 하면서 만난 오랜 친구 사이다. 제각기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사기까지 당한 이들이 모색한 탈출구는 부자로 소문난 동네 할머니 집을 터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할머니 집에 잠입하고 돈을 찾아 보지만 시신만 발견될 뿐 일은 헛되이 실패로 끝난다. 돈은 할머니가 깔고 누워있던 이불 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방송으로 알게 된다. 그나마 진상이 가져온 누런 종이 봉투에 일말의 기대를 걸어 보지만 내용물은 모두 영수증 다발일 뿐이다. 이들은 허허로운 웃음을 통해 다시 일상으로 귀환한다.

그러나 줄거리만으로는 이 극의 재미를 건질 수 없다. 줄거리보다는 극의 전개방식과 연기가 흥미롭다. 티격태격하는 이들 간의 관계는 어려운 삶 속에서도 진정 우리가 의지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일러준다. 자주 시간을 함께 보내는 한 변두리 주점에서 이들은 소주잔을 기울이며 서로를 헐뜯으면서도 서로의 마음을 위안하고 보듬는 독특한 우애를 보여준다.

주점 여주인이 친구상을 당하고 허탈해서 하는 말처럼(“수다 떨구, 쓸데없는 농담하구, 노래방 가서 시간 죽이구… 그게 그렇게… 소중한 거드라.”) 일상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은 모름지기 소중한 법이다. 이런 우정과 우애가 삶의 무게로 인해 ‘집 털기’라는 잘못된 일탈행위로 이어졌으되, 극을 통해 간략하게 기술되는 이들 개개인의 막막한 처지는 이러한 행동에 대한 연민의 시선을 불러 일으킨다.

돈만 있으면 모든 일이 해결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진 이들을 보면서 한번쯤 이런 생각을 안 해본 적이 없을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씁쓸한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다.

‘라이방’은 맥아더장군이나 월남전 때 군인들 사진으로 잘 알려진 선글라스 ‘레이 뱅’의 베트남 식 발음이라고 한다. 라이방 선글라스는 각기 택시 기사인 이들 주인공이 직업상 사용하는 소품이자 안경이라는 ‘부분’을 통해 이 안경을 착용한 이들 주인공 ‘전체’를 지칭하는 환유이다. 공연이 시작되면 ‘라이방’을 쓴 세 주인공의 모습이 핀 조명을 받으며 전경에 등장한다.

<라이방>은 이들에 대한 이야기이자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소시민들의 애환을 담은 연극이다. 연극은 이들의 삶을 과장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사실적으로 제시함으로써 공감의 폭을 넓힌다.

경제적, 물질적 어려움에 처한 이들의 모습을 연극적인 재미와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 빠른 템포로 그려 보여준다. 극에서 질펀하게 언급되는 성적 농담들과 비속어들은 단지 재미와 농담을 위한 흥미위주의 언어가 될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진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주인공들 삶의 충만한 에너지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주고 현 세태의 풍속을 여실하게 그려주는 사실적인 묘사 언어이기도 하다. 세 운전기사가 베트남으로 진출하던 영화의 끝 장면은 연극에서는 삭제되어 없어졌다. 연극 매체를 위한 각색 과정에서 생략과 극적 스피드로 인해 다소 따라잡기가 바쁠 수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공연을 이해하고 즐기기에 무리가 없다.


- 조명과 프리즈를 이용한 과거회상

제한된 무대를 다양한 공간으로 사용하고,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재빨리 이동하는 기법으로 조명과 ‘프리즈(freeze)’가 주로 쓰였다. 전체 조명에서 부분 조명으로 바꾸면서 조명으로 새로운 공간을 형성하고, 기존의 공간에 있는 배우들이 부동자세를 유지함으로써 관객의 시선과 관심을 움직이는 새로운 등장 인물로 이동시킨다. 주점 장면에서 주인공들 각자의 과거를 보여주는 회상 장면으로의 이동이 많았던 이 공연에서 이 방식이 특히 자주 사용된다.

무대는 대체로 비어 있어서 오히려 더 보기에 편안하고 기능적이다. 바퀴를 단 플랫(나무판) 몇 개, 탁자와 의자만으로 간소하지만 다양한 무대 장면을 구성하며 변화를 주었다. 움직임이 용이한 배경 판은 배우의 등퇴장에 가림 막으로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무대 장치와 조명은 그 자체에 관심을 끌지 않고 전체적인 공연의 흐름에 유연하게 기여한다.

가슴을 울리는 진한 감동은 없으되 우리 이웃의 모습을 들여다 보는 공감의 여지가 있으며, 배우의 연기를 즐길 수 있는 연극이 <라이방>이다. 2003년 ‘평론가가 뽑은 올해의 연극베스트3’인 <사마귀>의 연출가인 문삼화, 2000년 38회 백상예술대상 시나리오 부문 수상 작가인 송민호의 작품이다. 배우에게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는 이 공연에서 이들이 처음의 에너지, 스피디한 리듬과 적절한 템포를 그대로 가지고 배역을 끝까지 잘 소화해 내기를 기대한다.

때 2004년 10월 5일~10월 31일 |곳 정보소극장 | 제작·기획 JT culture | 작 송민호 | 연출 문삼화 |출연 지대한, 윤진호, 최무인, 임혜숙 | 문의 02-745-0308

송민숙 연극평론가


입력시간 : 2004-10-13 12:04


송민숙 연극평론가 ryu1501@korne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