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우연성과

[시네마 타운]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감독의 < 21 그램>
삶과 죽음의 우연성과 운명적 삶의 실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세 주인공의 인생 행로 그려


2000년 데뷔작 ‘아모레스 페로스’라는 영화로 단박에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오르며 미국 평단을 사로잡았던 멕시코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두 번째 작품‘21그램’은 한층 스타일리시한 편집과 배우들의 중후한 연기로 묵직한 느낌을 던져주는 영화다.

전작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세 이야기를 교차해서 보여주는 비연속적인 이야기 전개를 보여줬던 그는 ‘21그램’에서는 좀더 해체적인 구성으로 스타일에 대한 커진 야심을 보여준다. 중년남성 폴(숀 펜)과 크리스티나(나오미 와츠)가 허름한 모텔의 침대에 누워있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이후 크게 보자면 이 장면으로 다시 되돌아 오기 위한 이야기들을 전개하는 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야기는 단순한 플래시 백으로 사건을 리와인드 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 둘과 함께 또 다른 주인공 잭(베니치오 델토로) 등 셋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세 주인공의 에피소드를 불규칙하게 늘어놓는 식으로 전개된다. 관객들은 초반 30여분이 지나도록 그 나열된 장면들 중에서 어느것이 먼저 일어난 일이며 어느 것이 결과인지 파악할 수 없어 당황한 느낌을 받는다.


- 죽음과 구원, 그리고 행복

하지만 뒤엉킨 이야기 흐름 속에서 관객은 서서히 서로 관계없어 보이던 세 인생의 현재를 조금씩 파악할 수 있다. 수학자인 숀펜은 심장이식수술을 받지 않으면 한달 안에 죽을 처지이며 별다른 애정이 없어보이는 그의 아내는 그런 남편에게 죽기 전에 인공수정을 위해 정자를 제공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전과자로 술과 폭력과 마약에 찌들어 살던 베니치오 델토로는 새로운 삶을 살기로 작정하고 오로지 교회와 신에게 의지하며 자신의 삶을 거기에 맞추어 살려고 하지만 그의 과거가 계속 발목을 붙잡는다. 마약으로 얼룩진 젊은 시절에서 벗어나 결혼생활로 삶의 활기를 찾은 나오미 와츠는 건축가인 남편과 사랑스런 두 딸을 보살피는 주부의 삶으로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

죽음을 앞둔 자, 새로운 삶을 살려고 하는 자, 완벽한 행복을 누리고 사는 자. 이 세 사람의 에피소드가 거친 화면 속에서 조금씩 소개되면서 관객에게 전해지는 느낌은 까닭 모를 불안감이다.

살얼음판위를 걷는 듯한 그들의 죽음과 구원과 행복을 향한 행로는 결국 베니치오 델 토로가 나오미 와츠의 가족을 치는 교통사고로 예상치 못한 쪽으로 방향을 튼다. 뒤엉킨 세 주인공의 이야기가 안개가 서서히 걷히듯 한 자리로 수렴되는 이 사건이후 삶과 죽음의 우연성, 운명의 불가해함과 같은 감독의 주제가 실체를 드러낸다.

‘아모레스 페로스’에서도 그랬듯이 이 영화에서도 ‘교통사고’는 도무지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간의 삶에 느닷없이 끼어들어 죽으려고 하는 자를 살려놓고 구원 받으려고 하는 자를 다시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행복의 극점에 오른 여자를 불행의 최저점으로 떨어뜨리는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교통사고를 당한 여자주인공은 남편과 자식을 잃고 숀펜은 그 남편의 심장을 이식받아 되살아나고 베니치오 델 토로는 죄책감으로 자수를 한 뒤 다시 감옥으로 들어가게 된다.

숀펜이 여자와 가까워지고 그 여자가 가족을 죽인 운전자를 죽이겠다는 목표를 가지게 되면서 세 명의 주인공은 다시 처음의 모텔에서 맞닥뜨리게 된다. 이후에도 영화는 계속해서 주인공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의지와 그 결과를 엇갈리게 만들면서 질기게 이어지는 삶과 우연한 죽음의 허무한 경계선을 ‘21그램’이라는 타이틀에 대한 설명으로 드러내며 막을 내린다.


- 감독의 재능과 배우의 연기력 완벽 조화

마치 그림맞추기 퍼즐낮?불규칙적으로 전개되는 영화의 편집은 확실히 그냥 평범하게 시간순?酉?펼쳐졌더라면 그다지 드라마틱하지 않았을 이야기에 대한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효과를 낳고 있다. 관객을 의도적으로 불편하게 하는 이 에피소드식 편집은 순간순간의 신과 이미지가 낳는 인생에 대한 상념들을 인상적으로 뚝뚝 흘리고 간다. 하지만 과연 그런 스타일리시한 편집이 이 영화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나 하는 것에는 흔쾌히 동의를 하긴 어렵다.

비슷하게 비연속적인 시간의 흐름으로 편집을 했던 ‘메멘토’의 퍼즐식 편집이 영화의 어느 한 지점에서 모든 게임이 끝나고 난 뒤 짜릿한 쾌감을 주면서 영화의 핵심적인 파워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는데 비한다면 이 영화의 모자이크 식 편집은 ‘필수 불가결’한 선택이었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마지막 영화의 타이틀인 ‘21그램’의 의미를 굳이 주인공의 나래이션으로 설명하고 끝을 맺는 시나리오 역시 그렇지 않았더라면 보다 함축적이었을 영화를 약간 과잉으로 흐르게 한 아쉬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일을 향한 이 감독의 야심은 그 주제의 선택에 있어서의 진지함과 어우러져 차세대 미국 영화를 이끌어갈 기대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어보인다. 그의 재능과 세 배우의 완벽한 연기가 합쳐진 ‘21그램’은 근래에 보기 드문 진지한 수작으로 손꼽을 만 하다.

■ 시네마 단신
▲ 고 이수현씨 일대기 영화로 만든다

일본 도쿄의 지하철역에서 목숨을 바쳐 취객을 구해 일본열도를 감동시킨 의인(義人) 고 이수현 씨의 일대기가 일본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진다. 일본 영화사인 아나스키네마 도쿄의 제작자 다카하시 마쓰오(高橋松男)씨는 7일 오전 이수현 씨의 부친 이성대(65)씨 등과 함께 부산시를 방문, 허남식 시장을 만나 영화제작 계획을 설명하고 지원문제 등을 논의했다. '아들이여, 생명의 가교'라는 제목으로 만들어질 이수현 씨의 일대기 영화는 내년 2월 26일 4주기 때 제작발표회를 갖고 촬영에 들어갈 예정인데 주연배우는 일본에서 한류열풍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원빈 또는 박용하 등을 캐스팅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 대만 금마장 영화제 한국애니 초청

다음달 25일부터 대만에서 열리는 제26회 금마장영화제에 한국 단편 애니메이션 여섯 편이 초청됐다.독립영화 배급사 인디스토리에 따르면 올해 금마장영화제의 국제영화전시(International Film Exhibition) 부문에 'ZZZ'(양승완 외), '큰일났다!'(권미정), '오늘이'(이성강), '편지'(장형윤), 'Eat-up!'(전영찬), 'Why Not Community'(박용제)가 초청됐다. 금마장영화제는 대만에서 열리는 영화제 중 가장 큰 규모의 축제로 국제영화전시 섹션은 다양한 장르의 전세계 작품들이 상영된다.

이윤정 영화 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4-10-13 14:21


이윤정 영화 칼럼니스트 Filmpoo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