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수육에 육수 맛이 끝내줘요

[맛이 있는 집] 보신탕 전문집 <가정옥>
부드러운 수육에 육수 맛이 끝내줘요

지금이야 보신탕, 보신탕 외고 다니지만, 보신탕도 수난의 시대는 있었다. 서울 올림픽을 즈음해서 간판을 ‘사철탕’으로 바꾼 것이며, 그것도 모자라 뒷골목으로 숨어 든 것이 그 예다. 종로구 교남동의 한 골목에 자리잡은 20년 전통의 보신탕 전문집, ‘가정옥’도 이를 잘 증명한다. 그러나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또 한여름의 더위가 물러 갔다고 해서 손님들이 뜸할 것이라는 기대는 애당초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열너댓 개의 테이블을 빈틈없이 끼고 앉은 손님들로 사시사철 먹는다는 ‘사철탕’의 의미를 확인 할 수 있다.

고깃집의 수육 맛을 보면 그 집의 음식 솜씨를 알 수 있다고 했던가. ‘가정옥’의 대표 메뉴는 수육. 무침과 전골이 준비돼 있지만, 매출의 8~9할은 수육이 차지한다.

옥심(44)사장이 얘기하는 수육의 이 같은 인기 비결은 고기뼈를 이틀동안 푹 고아 우려낸 육수. 주인의 말을 빌리자면 “뼈를 녹인 국물에다 다시 고기를 삶아 진짜 고기보다 더 맛난 고기”다. 부드럽기로 따지면 둘째라면 서러울 정도라고. 그리고 이 육수에는 한약재 3가지와 생강들이 어우러져 육수 맛의 깊이를 더 한다. 뿐만 아니다. 보신탕의 주재료가 되는 황구는 주인 아저씨가 시골에서 직접 물건을 보고 구하는데, 사료를 안 먹인 어린 놈을 갖다 쓴다. 바로, 구린내를 맡을 수 없고 부드럽고 졸깃졸깃한 고기맛의 또 다른 비결이다.

이곳을 7년째 출입하고 있다는 직장인 김국래(46)씨 고기도 고기지만 시원한 육수 맛을 잊을 수 없어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자신이 이곳에 등록시킨 단골 손님만도 스물이 넘는다. 20대 여자 손님들도 몰라보게 늘었다. “식당 아줌마들이 근처를 오갈 때 치맛자락을 잡아 끌고 아가씨들이 ‘조금만 더 달라’하는데 어떻게 안 줄 수 있겠어요?” 푸근한 주인의 인상만큼이나 넉넉한 고기 인심에 나가는 수육이 상당하다.

‘가정옥’의 음식에는 20년 청춘을 보신탕에 다 바쳤다는 정 사장의 손 맛 외에도 고향 남도의 맛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전남 완도 고향에서 재배한 고추, 마늘이며 들깨 등 남도의 산물로 만든 다대기 등을 비롯한 갖은 양념들은 보신탕의 맛을 한껏 끌어 올린다. 노부모가 손수 만들어서 보내온 토종 된장으로 끓인 반탕과 함께 먹는 밥맛도 여느 집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맛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계절 안 가리고 제공되는 갓김치가 인기다. 여수 돌산에서 보내온 갓으로 주인이 직접 담그는데, 젓갈을 넣지 않아 산뜻하고 갓 특유의 향이 갖은 양념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손님 앉은 테이블에 기본적으로 갓김치 접시는 두 번은 추가로 드나들 정도다.

고기가 있는 곳에 술이 빠질 턱이 없다. 보신탕 20년 경력의 정 사장 말에 의하면 수육과 가장 궁합이 잘 맞는 술은 복분자술. 새콤달콤하면서도 씁쓸한 복분자의 맛이 남아있는 느끼함을 싹 가시게 하기 때문이란다. 복분자술을 담가 마시면 주체하기 힘들 만큼 오줌발이 강해 요강이 뒤집어진다는 데서 ‘복분’(넘칠 覆, 요강 盆)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니, 건강식의 대표격인 보신탕과 곁들여진다면 그 효험은 말할 것도 없어 보인다.

숨어 있는 보신탕집인 까닭에, 대부분의 손님들이 단골이거나 그 단골손님의 일행이었던 사람들. 길을 가다 들리는 손님은 ‘천연기념물’이 될 지경이라고 하니, 한번 찾은 손님들의 발길을 다시 돌리게 하는 ‘가정옥’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 메뉴 : 무침, 전골, 수육 각 22,000원(1인분ㆍ200g) 탕 10,000원
*영업 시간 : 오전 10시~오후 12시 매주 일요일, 국경일 휴무 02-736-1619 / 722-9367

서태경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10-13 15:07


서태경 자유기고가 shiner@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