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의 자연에 스민 역사와 문화의 향취빼어난 풍광 자랑하는 대만의 속살

[주말이 즐겁다] 대만 중부지방
청정의 자연에 스민 역사와 문화의 향취
빼어난 풍광 자랑하는 대만의 속살


르위에탄 호수 가운데에 있는 라루섬

대만 중부는 대만의 속살과도 같다. 화려함으로 가려진 수도 타이뻬이나 청정 자연으로 포장된 화리옌 등 널리 알려진 관광지와 달리 대만의 수수함과 넉넉함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자연도 그렇고 만나는 사람들도 그렇다.

대만 제3대 도시인 타이중을 중심으로 펼쳐진 중부의 볼거리에는 무엇보다 대만의 역사와 애환이 스며 있다. 또 그들의 심성이 헤아려지는 인간미 넘치는 곳이기도 하다. 물론 자연미도 빼어나, 화리옌에 버금간다는 호수 르위에탄 등 절경도 적지 않다.

- 구족 문화촌서 만나는 대만의 역사

대만, 특히 대만 중부 지역을 처음 찾는 여행객이라면 타이중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쯤 들어간 난터우(南投)현의 ‘ 구족(九族) 문화촌’으로 먼저 발길을 돌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 구족’이란 수 천년 전 필리핀에서 쪽배를 타고 대만으로 와 정착한 9개 부족을 일컫는 것으로, 이들은 16세기 한족이 대만 섬에 처음 들어 오기 전부터 섬을 지배했던 주인이었다. 현재 2,300만명을 헤아리는 대만인 중 2~3%를 불과한 이들은 천년 이상 대만을 지배했지만, 지금은 보호지역에서 북미 인디언처럼 살고 있다.

구족문화촌에서는 사람 사냥의 요령을 얻기 위해 비남족 청년들이 원숭이를 사냥해 죽이는 풍속, 배남족들이 조상 제사상에 사람의 목을 바치는 전통을 재연하는 모습 등을 직접 볼 수 있다. 사람이 귀했던 원주민들은 마을 곳곳에 사람 키만한 남근상들을 세워 놓고 있어 관광객들을 민망하게 만들기도 한다. 문화촌에서 매일 진행되는 원주민 공연은 결코 놓칠 수 없는 볼거리다. 조상들의 춤을 그대로 보여주는 모습을 보노라면 여기가 대만인지 남태평양 폴리네시아의 섬인지 헷갈린다. 그만큼 남방의 냄새가 짙게 풍긴다.

문화촌을 돌아보면, 원주민들이 근대가 시작될 무렵 몰려온 한족들에게 정복당했던 대만의 힘겨웠던 시간이 떠오른다. 그 한족들은 다시 1949년 장제스 총통과 함께 몰려 온 또 다른 한인들에게 다시 지배당하는 슬픔의 역사다. 현재에도 도래 시기 다른 두 한족 그룹들은 대만의 독립 문제 등을 놓고 심하게 으르렁거리고 있다. 영화팬이라면 구족 문화촌을 돌아본 뒤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영화 ‘비정성시’가 자연스럽게 오버랩 될 것 같다.

구족 문화촌 바로 옆에는 우리의 롯데월드 같은 놀이시설과 축구장 4~5배 만한 넓은 유럽식 정원이 자리잡고 있어, 여행의 피로를 잠시 잊을 수도 있다. 문화촌에서 차로 30분 정도 가면 과거 대만의 전통 마을들을 재연한 민속촌도 있으니 들러 기념사진을 찍으면 그만이다.

- '대만의 눈' 르위에탄 호수

중부 지방에서 가장 뛰어난 자연 풍광은 단연 르위에탄(日月潭) 호수이다. 깊은 산중, 해발 870㎙ 에 위치한 르위에탄은 둘레가 27㎞에 달하는 거대 산정 호수. 물빛이 맑아 비취빛 그 자체이다. 호수 북쪽이 달을, 남쪽이 해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이 일월담이다. 이 호수는 대만의 정 중앙에 있어 대만의 눈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린다.

르위에탄에는 국부 장제스 총통에 관한 일화가 많다. 국부와 연결된 일화가 많다는 것은 이 호수가 ‘ 국가 대표급’ 호수임을 상징한다. 장 총통이 생전에 이곳에 들렀을 때 토종 민물 고기를 맛 보고는 너무 맛 있어 직접 ‘총통어’라고 명명했다는 일화는 그 중의 하나이다. 배를 타고 호수의 풍광을 즐기기 시작하면 호수에 대한 대만인들의 찬탄이 과장이 아님을 금세 느낀다. 손을 명경지수에 담그면 호수 바닥까지 투명한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에 당혹스러워진다. 100% 청정호수가 이런 거구나 하는 기분이다. 석양에 타는 르위에탄은 여행객들에게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일으킨다.

르위에탄 호수 주변의 고산지대에서 재배하는 차밭

르위에탄에서는 일년내내 수영이 금지되어 있는데 매년 추석 직전 열리는 수영카니발 때는 예외이다. 9월 25일 열린 올 카니발에는 대만은 물론 홍콩 등 동남아에서 수 천명이 몰려와 3,700km에 이르는 코스를 힘차게 갈랐다. 한국인도 1명 참가했다고 한다. 형형색색의 수영복을 입은 수 천명이 차례 차례 호수로 뛰어드는 모습은 장관중의 장관이다. 이 축제가 우리에게도 알려지면 한국의 수영 동호회들도 참가할 것으로 보인다.

차에 관심이 있는 관광객이라면 르위에탄 주변의 원주민 ‘소족’이 고산 지역에서 재배한 고품격 차를 음미할 것을 권유하고 싶다. 대만에서도 최고의 차로 치고 있는 이 차는 그 향과 맛이 뛰어나 대만 관광객들은 필수 코스처럼 찻집을 들른다.

르위에탄 호수가에 있는 문무묘와 현장사, 자은탑 등도 꼭 들러야 할 명소이다. 문(文)의 대명사인 공자와 무(武)의 대명사 관우를 동시에 모시는 사당인 문무묘는 자식들의 성공을 비는 어머니들로 발 디딜 틈이 없으며, 현장사는 당나라 명승 현장법사와 부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곳이다. 영롱한 사리를 직접 보자, 절로 합장이 나왔다. 현장사에서는 관광객이 뽑은 쪽지를 통해 스님이 관광객의 운명을 점쳐주고 있어, 심심풀이로 점을 보기도 했다.

- 악몽의 지진 현장 관광 상품화

르위에탄에서 내려와 난터우현의 평지로 내려서면 외국 관광객들은 대만인들의 강인한 심성에 놀란다. 1999년 9월 2만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간 악몽의 지진 현장을 그럴싸한 관광 명소로 꾸며 놓았기 때문이다. 당시 진앙이었던 난터우현 지지(集集)에는 지진 발생당시 대들보가 엿가락처럼 무너져 내린 3층 사찰 무창사가 당시 모습 그대로 보전되어 있다. 지진으로 운동장이 두쪽으로 갈라진 곳에서는 지진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최근에는 지진 박물관도 들어서 체계적인 ‘지진 관광’ 시대가 열렸다. 지지인들은 지진의 현장을 보전하는 것은 물론 당시 피해 상황을 담은 사진첩, CD를 기념품으로 팔고 있다. 대만 중부는 99년 큰 지진이 발생한 후에는 집값이 폭락하는 등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지진 관광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그들의 슬기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중부 지역을 대표하는 도시, 타이중은 인구가 90만 가량으로 우리의 대전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타이중에서는 젊은이들이 즐겨 찾고 명품 상점들이 즐비한 징밍(精明) 1가를 찾아 쇼핑을 즐기거나, 곳곳의 야시장을 찾아 출출한 배를 채우는 것도 여행의 맛을 더해줄 것으로 보인다. 야시장에서는 식용 개구리 요리가 별미다.

▲ 가는 길

10월 5일 타이중과 인천을 오가는 만다린 항공의 직항 전세기가 취항함으로써 가는 길이 빨라졌다. 11월 17일 이전까지는 5일에 한번 취항하고 그 후에는 주 2회로 운항 횟수가 늘어난다. 대만 중부의 경우 아직 관광 코스가 완전히 개발되지 않은 상태이니, 여행 상품을 꼼꼼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 르위에탄 호수 주변 호텔에 여장을 풀고 주변을 훑는 것이 좋으나, 호텔이 많은 타이중에 여장을 푸는 것도 괜찮다. 서울의 타이완 관광청 왕런더 소장은 “ 올해가 대만 방문의 해인 만큼 광지마다 다양한 이벤트가 마련되어 있다”며 “올해를 넘기지 말고 대만을 찾아주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이영섭 기자


입력시간 : 2004-10-20 15:57


이영섭 기자 young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