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와 관객의 만남 유도한 '참여관객제도' 도입
참여와 사유의 축제 한마당 - 2004 광주 비엔날레 예술가와 관객의 만남 유도한 '참여관객제도' 도입
- 관객과 작가가 함께 작품 구상 국내에서 ‘비엔날레’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10년 전, 1995년 제 1회 광주 비엔날레가 열렸을 때만 해도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걱정 반, 호기심 반이었다. 허울 좋은 ‘동네 잔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고, ‘예향 광주를 세계에 알리고, 5.18 민주화 항쟁으로 부각된 광주 민주 정신을 예술로 승화시키자’는 거창한 목적도 피부에 와 닿긴 힘들었다. 실례로, 2,500여 개의 맥주병을 늘어놓고 그 위에 낡은 조각배를 얹어 쿠바의 보트 피플 문제를 다룬 제 1회 광주 비엔날레 대상작 ‘잊어 버리기 위하여’를 본 일반 관객들의 어리둥절함은, 현대 미술 작가와 대중 사이에 가로 놓인 ‘건널 수 없는 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바 있다. 2004 광주 비엔날레에 참여 관객 제도가 도입된 것도, 이처럼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먼 당신들’일 수밖에 없었던 관객과 작가, 예술 사이의 3자 대면을 시도한 도전이다. 물론 모든 작가와 불특정 다수의 관람객 전부가 만날 수는 없는 일. 그래서 세계 42개국에서 선발된 60명의 참여 관객이 참여 작가와 짝을 지어 작품 구상 단계에서부터 함께 머리를 맞대도록 했다. 예컨대 설치 작가 이경호와 짝이 된 참여 관객 미우챠 프라다(패션브랜드 ‘프라다’ 회장) 씨는 이탈리아에서 직접 만나거나 e메일로 의견을 교환하며 작품을 구상했다. 그들의 합작품은 바로 뻥튀기 판매. 어둠 속에서 장중한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이경호 씨가 튀겨낸 따끈한 뻥튀기는, 프라다 회장이 직접 디자인한 핑크빛 종이 봉투에 담겨 1,000원에 판매된다. 프라다의 명성을 상징하는 봉투와 뻥튀기라는 저렴한 간식 거리가 만나 고급 예술의 벽을 허물 때 일어나는 문화적 충격을, 관람객들은 즐겁게 받아 들인다. 또 광주 지역의 작가 그룹 SAA와 고등학교 2학년생 이정은 양은 정형화된 갤러리 전시를 벗어나 관람객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미용실을 그대로 옮겨온 독특한 형식의 작품을 만들어 눈길을 끌었다. 관람객은 전시실 안에서 형형색색의 가발을 써볼 수도 있고, 화장을 새로 고치기도 한다. 이런 관람객의 모습은 유리창을 통해 창 너머 또 다른 관객들에게 그대로 노출되며, 숨겨진 CCTV카메라를 통해서도 관찰돼 인간의 관음증적 측면을 풍자한다. 이 밖에도 퍼포먼스 작가 켄델 기어스와 1970년대 이탈리아 아우또노미아 운동을 주도해 온 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 동물의 실제 고깃덩이를 브론즈로 주조하는 조각가 마크 퀸과 광우병 파동으로 가축을 잃은 잉글랜드 농부 로스 췌링턴, 콜라주 작품으로 한국의 억압적인 시대 상황을 풍자했던 작가 박불똥과 시?고은 등이 함께 참여해 만들어 내는 이색적인 조합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물론 참여 관객 제도하에서 모든 작품이 작가와 관객의 상호 유기적인 관계 하에 창작된 것은 아니었다. 형식적인 한두 번의 만남으로 끝난 작가 – 참여 관객 커플도 있었고, 심지어 참여 관객과 만나기를 거부하고 혼자 작업한 작가도 있었다. 이는 작품 창작이 작가만의 고유 영역이라는 확고한 관념 때문이기도 하다. 비록 절반의 성공이긴 하지만 이와 같은 대형 미술 전시에서 관람객의 역할을 깊이 생각해 보게 만든 기회라는 데 참여 관객 제도의 의의가 있을 것이다.
- "주제가 너무 관념적이다" 지적 2004 광주 비엔날레에서 이 처럼 참여 관객 제도가 부각된 반면, ‘주제가 관념적이다’라는 지적은 올해도 여전했다. 실제로 동양적 사유의 담론을 화두로 삼아 내놓은 본 전시의 주제 ‘먼지 한 톨, 물 한 방울’은 전시된 여러 작품을 다 둘러 본 연후에도 그리 생생하게 와 닿지 않는다. 주최측은 무생물적 분자이지만 물과 섞여 생명체로 거듭나는 존재인 ‘먼지 한 톨'에 희망의 메시지를 부여하며, 다양한 운동 현상을 제공하고 소통하게 만드는 ‘물 한 방울'을 가리켜 생물학적 매개물이라며 자평했지만, 전시된 모든 작품과 주제가 긴밀하게 융합되진 못했다. 특히 ‘먼지 + 물’ 전시장 구석에 나란히 설치된 게르하르트 리히터와 리처드 해밀턴의 작품은 뜬금 없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나마 제 1갤러리 ‘먼지’ 섹션에서 철과 철가루로 정자를 묘사한 레오니드 소코흐의 조각, 제2갤러리 ‘물’ 섹션에서 김승영이 시도한 명상적인 물의 정원 정도가 주제의 필연성을 보여 준다. 이는 저마다 다른 작품 경향을 지닌 작가들을 한 자리에 취합함으로써 생기는 필연적인 결과일 수 있지만, ‘주제와 작품의 유기적 결합’이란 문제는 광주비엔날레가 열릴 때마다 매번 반복되는 풀리지 않을 숙제가 될 듯하다.
앞서 살펴본 주제전이 2004광주비엔날레의 백미이긴 하지만, 이것이 전시의 전부는 아니다. 좀더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야만 볼 수 있는 ‘현장들’전이 광주 곳곳에서 기다리고 있다. 비엔날레 본전시장으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광장의 ‘현장들1-즐거운 발자국 흥겨운 축제마당’이 그 시작이다. 발자국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벤치가 되고, 시멘트 계단이 초록색 인조 잔디 융단으로 변하고, 거인이 타고 다님직한 거대한 자전거가 자동으로 삐걱삐걱 돌아가는 모습이 흥미롭다. 무엇보다 작품을 마음껏 만지며 놀 수 있다는 점은 열린 미술을 향한 시도라고 해야할 것이다. 한편 중외공원 내 교육홍보관에서 열리는 ‘현장들 2-한국특급’은 한국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단체전이다. 인체를 독특한 시각으로 해석한 사진가 김아타, 손바닥만한 그림이 모여 장대한 풍경을 이루는 강익중 등 중진작가의 작품과 풋풋한 신진작가들이 한데 어울린 전시. 비엔날레 본전시장에서 약 30분 거리이긴 하지만, 시간 여??있다면 5․18 자유공원에서 열리는 ‘현장들3-그 밖의 어떤 것’도 들러보자. 옛 헌병대 건물의 구조를 그대로 살리면서 작품을 전시해, 민중항쟁의 중심지였던 광주의 지역성을 강조한 작품들이 대다수를 이룬다. 비엔날레 본전시장 입구 승강장에서 오전 11시와 오후 1시, 2시 30분, 4시에 5․18 자유공원까지 가는 무료 셔틀버스가 운행된다. 올해로 개통 원년을 맞이한 광주지하철 전동차 및 역사 내에서 펼쳐지는 ‘현장들4-에코메트로’전을 감상해보는 것도 좋겠다. 원활한 관람을 위해서는 작품의 제작의도나 배경을 읽어보고 알고 가는 것이 좋다. 본전시장 입구에서 판매하는 작품안내서 《관객에게 말 걸기》는 3천 원의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어 인기다. 도슨트(전시안내자)에게 작품에 대한 설명을 부탁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획일적인 작품 설명이 아닌, 관객 자신의 눈으로 해석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인 느낌일 것이다. 깊어 가는 가을, 나만의 감성을 자극할 예술작품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빛고을 광주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입력시간 : 2004-10-21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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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 객원기자 aponia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