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산한 가슴 덥혀주는 가족애경제불황 등으로 가족의 소중함 중시, 가족해체 현상에 대한 반감도

[배국남의 방송가] 이유있는 가족 소재 드라마·영화 붐
스산한 가슴 덥혀주는 가족애
경제불황 등으로 가족의 소중함 중시, 가족해체 현상에 대한 반감도


가을 바람과 함께 섹스와 외도, 불륜으로 일관하며 ‘불륜 권하는 사회’ 로 몰고 가던 드라마와 영화가 이제 진한 가족애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가족을 전면에 내세웠던 주말 드라마나 일일 드라마에서조차 근래 들어서는 가족이 사라지기 시작했는데 다시 브라운관에서 가족을 등장시킨 드라마가 모습을 드러내 눈길을 끈다. 또 가족 소재 영화 자체를 찾아보기 힘든 영화계에서도 최근 가족을 내세운 영화들이 속속 개봉돼 흥행에서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 <한강수 타령>등 높은 시청률

MBC는 생선 장수 어머니와 딸들의 사랑과 삶을 일상성에 천착해 담은 ‘한강수 타령’을 9월25일부터 내보내 20%대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언어의 연금술사로 대중의 감성을 포착하는데 뛰어난 김수현 작가가 자폐아를 둔 중년의 엄마(김희애)와 남편(허준호)의 사랑과 갈등을 그린 KBS 주말극 ‘부모님 전상서’가 10월 16일부터 방송을 시작했다. 최근에 방영을 시작했음에도 19%대의 시청률을 기록, 높은 관심을 알 수 있다.

영화계에서도 가족과 가족애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들이 속속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범죄자인 딸(수애)과 전직 형사인 아버지(주현)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 ‘가족’이 이례적으로 흥행에 성공했고, 두 형제(원빈과 신하균)의 우애를 중심으로 진한 가족애를 보여주는 ‘우리형’ 역시 최근 개봉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또 차만 타면 멀미를 해 차를 못 타지만 도시에서 하는 딸의 결혼식을 보기 위해서 어머니(고두심)가 며칠을 걸어서 결혼식장으로 향하는 고단한 여정을 다룬 ‘먼길’이 제작을 마치고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자폐아 아들(조승우)을 마라톤을 시키는 과정을 중심으로 자식과 어머니(김미숙)의 진한 사랑을 그려 나가는 ‘말아톤’도 촬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왜 이처럼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가족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들을 쏟아내는 것일까. 그 이유를 말하기 앞서 먼저 김수현 작가의 말을 들어보자. “시청자들이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드라마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세요. 드라마가 오락적 의미 외에 아무 것도 줄 수 없다면 작품을 만들지 않을 겁니다.” KBS ‘부모님 전상서' 제작 발표회장에서 한 말이다. 이 말에는 현재 우리 드라마의 문제와 요즘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가족애가 새로운 트렌드처럼 떠오르고 있는 이유를 담고있다.

근래 들어 브라운관에서도 젊은이들의 성과 사랑, 기혼자들의 섹스와 외도 특히 남성의 외도를 주로 다뤘던 이전과 달리 여성의 외도를 당당하게 그리는 드라마들이 넘쳐 났다. 그리고 1992년 MBC ‘질투'를 시작으로 불기 시작한 젊은이들의 사랑과 일상을 화려한 음악과 화면에 담아냈던 트렌디 드라마의 범람이 시작되고 이로 인해 아버지, 어머니 등 부모가 브라운관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전통적 가족을 전면에 내세우던 일일드라마, 주말 드라마에서도 전통적 가족 형태를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표현의 폭이 넓고 제한이 적은 영화에서 이 같은 현상은 더 심했다. ‘조폭 마누라’를 비롯 조폭 영화류가 휩쓴 뒤 ‘엽기적인 그녀’등의 가벼운 코미디가 주류를 이룬 다음 여성의 성과 섹스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와 10대의 감성이 드러난 인터넷 소설을 영상화한 작품들이 스크린을 점령했다. 또 한쪽에선 ‘태극기 휘날리며’ 등 블록 버스터 영화들도 줄기차게 제작됐다. 2000년 들어 영화에서 가족이나 가족애를 주제로 내세운 것을 찾기란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 만큼이나 어려운 상황이었다.

- 가족사랑에 대한 갈망도 주요 원인

가족과 가족애를 내세운 드라마나 영화들이 사라진 것은 우선 가족 소재 작품이 흥행성을 갖지 못한 게 가장 큰 원인이다. 가족과 가족애를 강조하는 드라마는 대중문화의 주소비층인 10~20대들에게 관심을 끌지 못하고 일부 중장년층들의 시선을 끄는데 그쳐 방송사나 영화사는 가족 드라마와 영화 제작을 하지 않았다.

또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다시 정보사회로 숨가쁘게 이어진 사회적 변화는 1인 가족, 동거, 동성부부, 계약부부 등 새로운 가족 행태를 초래했고 가족애에 대한 인식도 크게 변화시켰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부모 자식간의 진한 사랑을 담은 가족 드라마와 영화들이 다시 붐을 이루고 있을까. 가을이라는 계절적 요인도 있지만 경제와 살림살이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가족을 찾는 분위기가 가족 소재의 드라마와 영화의 제작 열기를 지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높은 이혼율 등 가족의 해체와 파편화에 대한 반성과 반발, 여기서 파생된 가족애에 대한 갈망과 욕구의 상승도 가족애를 중심 주제로 삼은 작품을 양산하는 이유로 꼽힌다. 이밖에 대중문화의 강력한 소비층으로서의 30~50대의 부상도 한 요인이다.

그 동안 10~20대들이 시청률과 영화의 흥행 판도를 가르는 중추 세력이었으나 근래 들어 중장년층들의 대중문화 소비가 눈에 띠게 늘어나며 이들의 취향과 기호에 맞는 대중문화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중장년층들은 젊은이들의 사랑을 자극적이고 감각적으로 다룬 트렌디 드라마나 영화보다는 자신들의 이야기일 수 있는 가족 소재의 작품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가족 드라마는 해체돼가고 위기에 처한 가족과 가족애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고 보게 한다는 점에서도 존재 의미가 충분하다. 그것이 김수현 작가가 지적한 재미 이상의 그 무엇일 것이다.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4-10-27 16:32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knbae2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