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일본 경제 회생의 저력 엿보기
10년 불황 그러나 Hit는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지음ㆍ황영식 옮김
용오름 발행ㆍ1만원


‘잃어버린 10년’.

무슨 유행가 가사의 한 구절 같지만 이 말은 일본인들에겐 지난 10년 세월을 일컫는 쓰라린 말이다. 2차 세계대전 후 유례없는 장기 호황을 구가하며 온 세계의 찬탄과 질시를 함께 받았던 일본 경제. 그러나 일본 경제는 1991년 이른바 버블(거품)이 붕괴하면서 바닥 모르는 불황으로 빠져들었다. 2001년에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마이너스 3%대로 곤두박질했고, 실질금리는 0%였으며, 한때 일본에서 배우자며 난리 치던 미국ㆍ유럽의 전문가들조차 일본 경제의 회생 가능성을 가망 없는 일로 치부했다. ‘일본을 알아야 돈이 보인다’며 일본 따라가기에 급급하던 한국 경제도 고개를 모로 꼬기 시작했다.

그러던 일본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 지난 1월 14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관저에서 ‘일본 경제의 르네상스 - 경제 회생과 새로운 도전’이란 경제 정책 포럼을 열었다. 닷새 후 고이즈미는 국회 연설에서 “일본 경제가 기업 수익이 개선되고 설비 투자가 증가하는 등 견실하게 회복되고 있다”며 경기 회복을 ‘공식 선언’했다. 일본 정부는 올해부터 2% 내외의 플러스 성장에 이어, 10년 넘게 진행돼 온 장기 디플레이션이 일단락될 것이이라고 낙관적으로 자신했다.

일본은 어떻게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을 수 있었는가. 그들의 얄밉도록 질긴 경제의 저력은 어디에 있고, 어디로부터 활력을 얻는가.

‘10년 불황 그러나 Hit는 있다!’는 바로 그 일본 경제 밑바닥의 저력을 샅샅이 훑은 책이다. 일본의 권위 있는 경제일간지 니혼게이자이신문(日本經濟新聞)의 기자 40명이 2003년 봄부터 1년 간 연재한 ‘경제 탐험’과 ‘숫자로 읽는 유행’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한 마디로 서민 생활과 밀접한 생산ㆍ소비ㆍ유통의 현장에서 일본의 10년 불황, 잃어버린 10년을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다.

현장 기자들이 발로 뛰어 취재한 이 보고서에 드러난 아이디어들은 보석처럼 반짝인다. 42가지의 마케팅 전략, 히트 아이템과 아이디어들은 그야말로 일본 경제의 저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기자들은 이들 42가지 아이디어에서 ‘변신하라’부터 ‘박리다매가 능사는 아니다’까지 42가지의 히트 전략을 이끌어 내고 있다.

착(着)노래, 스켈리턴 임대, 뼈 없는 생선, 택시 기모노 할인, 아파트 자유설계, 고가도로 밑 목욕탕, 날씨 보험, 얼굴이 보이는 야채…. 뭘까? 어쩌면 사소해 보이는 이들 아이디어의 뒤에 상식을 뒤짚고, 일신우일신의 새로움을 추구하는 일본인의 마케팅 전략이 숨어 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100엔 숍의 경우. 다이소산업, 캔두, 세리아, 오스리, 왓츠 등 일본의 100엔 숍 대형 5개 사의 매출액은 불황 속에서도 2001년 3,000억엔의 매출을 돌파, 3년 전 대비 3배나 성장했다. 백화점이나 대형 체인점, 편의점의 매출이 제자리 걸음을 하거나 마이너스 성장을 할 때 이들은 약진을 계속했다. 무료 쿠폰을 제공하는 쿠폰 잡지 ‘핫 페퍼’는 발행 부수가 무려 400만 부를 넘어 섰다. 우리 어린 시절에나 있었던 가정 배달 우유가 일본에 다시 등장해 판로를 계속 넓혀가고 있다. 지혜로운 생산자와 유통ㆍ판매자, 그리고 현명한 소비자가 일본에는 살아 있었던 셈이다.

책은 이 같은 42가지 아이디어들을 불황 속에서 대박을 터뜨린 ‘불황을 꺾은 히트 전략’, 잊혀졌던 상품의 화려한 부활을 다룬 ‘역경의 반전, 패자부활’, 소비자의 눈높이를 넘어서는 상품을 다룬 ‘소비자를 유혹하다’, 기술 개발의 현장을 소개하는 ‘신기술, 불황을 잡는 저격수’, 외식 산업의 기묘한 아이디어들을 소개한 ‘외식 산업 - 불황 탈출의 최전선’등으로 나눠 소개한다. 관련 사진과 통계, 그래픽 등 자료도 충실하게 실었다.

음식업자들이 솥단지를 던지는 시위를 하고, 농민들은 논밭을 갈아 엎고,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되자 웬만한 중소 도시 규모의 유흥가 전체가 무너지고 있는 지금 한국의 경제 상황.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닮은 가혹한 침체에 빠져들고 있는 우리가 참고해야 할 내용이다. 황영식 한국일보 논설위원 옮김.

하종오 기자


입력시간 : 2004-11-17 14:52


하종오 기자 joh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