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청춘 등 떠밀지 말아요 아직 어른이 되기 싫거든요"

[시네마 타운] 발레 교습소
"내 청춘 등 떠밀지 말아요 아직 어른이 되기 싫거든요"

에너지는 넘치지만 그 에너지가 갈 곳을 잡지 못하는 청춘의 이야기들은 언제나 매력적인 소재다. < 발레 교습소>(감독 변영주) 역시 수능 시험이 끝난 고3 학생들의 겨울 석달 동안의 이야기를 그린다. 갑자기 어른이 되기를 사회로부터 강요당하는 그들은 그러나 몸만 어른처럼 커버렸을 뿐, 아직 어른이 될 마음의 준비는 하나도 되지 않은 상태다.

12년동안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며 입시 지옥으로 아이들을 밀어 넣고선 시험이 끝날때까지도 그것이 어떻게 되는지 하나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어른이라는 낙인을 찍어 버리는 우리의 현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위태롭지만 어쨌든 성장해 나간다. 영화는 그 모습을 담아 간다.

이른바 기존의 성장 영화 혹은 청춘 영화들의 전례는 이러했다. 즉, 넘쳐 나는 에너지를 발산하지 못해 일탈하거나, 거대한 사회의 벽을 실감하고 좌절하는 슬픈 표정들을 또래들과 함께 나누어 가지는 식이었다. <발레 교습소>가 여타 청춘 영화들과 달라지려고 노력한 점이 있다면 19세의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그들만의 독백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신의 위 아래 세대들과 함께 이리저리 부딪혀가면서 사회라는 체제속에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 가는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속의 ‘발레 교습소’란 그것을 뭉뚱그려놓은 곳이다.

수능이 끝난 뒤 우연히 들어선 발레 교습소에서 19세의 젊은이들은 여러 세대와, 여러 가지 다른 이유로 그곳을 찾은 사람들과 결국 공연이라는 마지막 결과물을 함께 만들어 낸다. 그것이 결국 사회라는 것에 진출하기 위한 작은 준비라는 것이다.

수능 끝난 뒤 마지막 청소년기

이 영화의 주인공들 하나 하나 역시 각각 윗세대와 자신이 속한 집단과의 갈등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여느 성장 영화의 주인공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비행사인 아버지와 함께 사는 강민재(윤계상)은 아버지의 뜻으로 당연히 항공과를 가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자신은 항공과에 지원할만한 성적이 안 돼 고민하고 있다.

강민재가 오래 짝사랑 해 온 황보수진(김민정)은 그에 비하면 훨씬 자의식이 있어 보인다. 그녀는 자신에게 너무나 무심한 집안 분위기가 싫어 자신의 인생은 스스로 개척하겠다면서 제주도에 있는 대학의 수의학과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운다.

강민재의 친구 창섭은 춤을 잘 추지만 마땅히 춤출 곳이 없으며, 동완은 수능 시험이 끝나자 마자 재수를 생각해야 하는 처지다. 딱히 하고 싶은 것도,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이들은 우연히 동네 구민회관의 발레 교습에 함께 참석하게 된다.

이들이 처음 맞딱뜨려야 하는 것은 속살을 훤히 드러내는 착 달라붙는 발레 연습복 입기의 머쓱함이다. 영화속에서 발레는 그런 의미다. 다른 영화에서처럼 어떤 예술적 의미나 주인공들이 이뤄내는 성취로서의 의미라기 보다는, 한 번도 그렇게 자신의 몸을 드러내 본적이 없는 보통의 열아홉살 내기들이 쑥스럽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 몸을 드러내는 도구다.

제대로 어른 이라는 옷을 걸쳐 입지도 않았는데 사람들 앞에서 그런 이름으로 나서야 하는 그들의 오늘을 또 다른 모습으로 이야기 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그들은 자신과 다른 모습과 나이를 가진 사람들을 만난다. 요쿠르트 배달 아줌마, 비디오 가게 아저씨, 중국집 배달원 등으로 이뤄진 발레 교습생들은 작은 공연을 함께 준비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스무살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게 되고, 이들의 어른 되는 과정은 점점 더 구체적인 갈등을 가져 온다. 마냥 “우린 다 왜 이럴까”로 고민하던 아이들은 결국 시험 성적이 발표되고, 자신의 미래에 대한 모습이 구체적으로 다가오면서 또 다른 갈등을 겪게 된다.

항공학과에 다 떨어지자 느닷없이 조경학과에 합격한 민재는 아버지와의 갈등속에서 아버지로부터 당연히 물려 받아야 한다고 믿었던 舟先瑛?꿈이란 것은 정작 자신의 꿈이 아니며, 오히려 그는 바쁜 일정 때문에 어머니의 병사에 일조를 한 것이 비행사라는 아버지의 직업때문이었음을 고백한다.

수진은 자신이 늘 내세웠던 수의사의 꿈이라는 것이 강아지도 무서워할 정도의 자신의 실제 모습과 얼마나 동떨어진 것이었나를 깨닫는다.

갈등, 그리고 성장의 담담한 기록들

결국 어설프게나마 이들은 발레 공연을 하게 된다. 감독은 그들의 발레 공연에 기적 같은 완성도나 화려함 같은 팬터지를 집어 넣지 않고, 마치 동네 잔치같은 수수한 무대의 모습을 보여 준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그들의 모습은 그렇게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민재는 아버지와 백퍼센트 화해한 것으로 보이지 않으며 수진은 수의사의 꿈을 포기할 것 같지 않다.

영화는 주 소재로 등장한 발레 교습소안의 이야기를 교습소 밖의 주인공의 이야기들과 유기적으로 맞물리는 재미 같은 것을 느낄 수가 없다.

그들은 어쩌다가 발레 교습소로 왔고 그들이 공연을 해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같은 것들이 보이지 않으며 중간에 한 번 더 그들을 공연으로 밀어 붙이는 어떤 극적인 사건도 없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카메라는 요란떨지 않고 등장 인물들에 애정을 불어넣어 그들이 조금이나마 성장하는 모습을 담아 내겠다는 담담한 자세로 그들을 바라본다.

그래서 관객은 이들이 겨울 동안의 발레 수업을 통해, 결국 사회로 나가기 위한 작은 준비를 했음을 조용히 공감할 수 있게 된다.

■ 시네마 단신
제 1회 롯데시네마 공모전

총 3,000만원의 상금이 걸린 제 1회 전국 대학생 대상 '롯데시네마 공모전'이 열린다. 이번 시나리오 공모전에는 시나리오와 트리트먼트 모두 응모 가능하다. 상업성과 영화 제작 가능성이 있는 순수 창작물로서 시나리오는 A4 용지 100매 내외 분량, 트리트먼트는 10장 내외로 작성하면 된다.

선정된 아이템은 추후 시나리오 개발을 통해 롯데시네마에서 영화화될 기회를 얻는다. 응모 자격은 전국 대학(원)재학생(2005년 졸업예정자 지원가능)이며, 접수 기간은 오는 22일부터 2005년 1월 31일까지.접수는 롯데시네마 홈페이지(www.lottecinema.co.kr)나 우편(서울시 송파구 신천동 29번지 롯데시네마 시나리오 공모전 담당자 앞)을 통해 할 수 있다.

한국영화 아카데미, 서교동 시대 개막

한국영화아카데미는 18일 저녁 서교동에 신교사 오프닝 리셉션을 열었다. 내년 2005학년도 신입생부터 본격적인 서교동 교사 시대의 막이 열리게 된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서교동 교사는 지상 5층 지하 1층 연건평 650평 규모에 아비드 편집실, 파이널컷프로 편집실, 암실 등 영화 제작 시설과 3D실, 모형 제작실, 애니메이션 촬영실 등 애니메이션 제작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 밖에도 오디오 작업을 위한 믹싱 룸과 60여평 규모의 스튜디오, 도서관 등이 구비돼 있으며 조만간 시사실도 마련할 예정이다. 특히 내년 신입생부터는 프로듀서 과정을 개설해 영화 학교로서의 틀을 확고히 하게 됐다.

이윤정 영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4-11-24 15:00


이윤정 영화평론가 filmfoo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