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훌륭한 아버지가 될 수 있다

[출판] 아무리 바빠도 아버지 노릇은 해야지요
당신도 훌륭한 아버지가 될 수 있다

서정홍 지음
보리 발행·7,500원

‘아버지가 되기는 쉽지만 아버지 답기는 어렵다’는 말이 있다. 이 말에 가슴 ‘짠할’ 아버지들이 많을 것 같다. 요즘처럼 아버지 노릇 하기 힘든 시절도 없기 때문이다.

자녀를 유학 보내고 아내까지 보호자로 딸려 보낸 ‘기러기 아빠’들 이야기는 이제 식상할 정도다. 가족들 다 떠난 한국에 홀로 남아 마음이 추워 벌벌 떤다고 ‘펭귄 아빠’라고도 한다. 자식들 교육 욕심, 성공시키겠다는 일념에 홀아비 신세를 자처하지만, 그러고서도 변변한 대접을 못 받는 것이 요즘 한국의 아버지들이다.

새벽에 나가 밤늦게 들어 오는 아버지는 하숙생이나 마찬가지고, 자녀들 훈육은 거의 어머니 몫이 되었다. 아버지의 권위는 이제 월급 봉투의 두께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까. 과거에 아버지 하면 자연스럽게 위엄과 당당함이 떠올랐다. 가족들이 기댈 수 있는 든든한 기둥이었다. 그러나 구조 조정이니 정리 해고니 불안한 직장 생활에 가슴 졸이며 처자식 먹여 살릴 걱정하는 요즘 아버지들 사정은 전혀 다르다. 집안 대소사에서 목소리 잃어버린 지 오래고, 가정에는 설 자리 없다. 아내는 자녀들 교육에 신경 쓰느라 남편 대접 소홀한데, 아이들은 부모보다 컴퓨터가 더 좋다고 한다.

사정이 이 지경까지 된 데는 바쁘다고 가장 역할을 등한시한 아버지들 탓도 크다. 가족에게는 아버지의 돈지갑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관심과 사랑도 필요하다. 당당하고 권위 있는 아버지의 자리를 어떻게 하면 되찾을 수 있을까.

‘59년 개띠’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 노동자 시인 서정홍씨가 두 아이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고자 하는 노력을 글로 옮겼다. 만화가 홍윤표씨가 그린 정감 넘치는 삽화도 곁들여져 설핏설핏 미소를 머금게 한다.

좋은 아버지가 되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보다 자녀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자녀에게 물질적인 뒷받침을 충분히 못해준다고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못하는 게 아니다.

“아버지, 저는요 어른이 되면 엄마 같은 여자 만나서 아버지처럼 살고 싶어요.” 저녁 밥상머리에서 문득 던진 막내 아들의 말 한마디는 저자의 가슴을 뜨뜻하게 적신다. ‘어느 누구한테서도 노동의 대가 훔친 일 없고, 바가지 씌워 배부르게 살지 않은’ 가난하지만 선량한 노동자 시인의 삶은 그대로 자식에게 본이 된 게다. 자식에게서 이런 말 듣고 사는 아버지가 이 땅에 과연 몇이나 있을까.

자식의 깊은 신뢰와 존경을 받는 서정홍 시인이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겪은 갖가지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따라 가다 보면 절로 마음이 훈훈해 진다. 자식에게 욕심 부리지 않고 강요하지 않으며 항상 남과 더불어 살라고 가르치는 아버지가 거기에 있다.

저자의 가르침은 남다르다. 자녀에게 남보다 잘 먹고 잘 살고 잘 입고 편히 살기 위해서 공부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낮은 자리에서 가난한 사람과 밥을 나누어 먹으며 사람 냄새 나게, 사람 노릇 하면서 살라고 한다. 그의 집에서는 항상 가족 회의가 열린다. 회의 안건으로 아들의 신발 사주기, 막내의 여름 방학 여행 계획, 용돈 규모 등이 안건으로 올라 오고 칭찬해 주기, 남에게 잘못한 일 생각해 보기, 우리 집에서 남녀가 불평등한 점 얘기하기 등 다양한 이야기가 오간다.

자녀가 먼저 말하게 하고 끝까지 들어 주는 가족 회의 시간은 아이의 인격이 튼튼히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즐거운 시간이다. 또 아버지 지갑에서 자식이 몰래 돈을 꺼내갈 때, 형제끼리 싸울 때, 아이가 말없이 늦게 들어올 때 아버지가 어떻게 훈계해야 좋을지도 저자의 경험을 들어 자분자분 말해준다.

여름 휴가를 자녀와 함께 농촌 일손 도우며 보내기, 손님맞이할 때 다 함께 청소하기, 하루 30분씩 화분 관리든 바느질이든 자녀와 함께 하기, 소풍가는 날 어머니, 아버지가 함께 김밥 싸주기 등 마음과 정성으로 하는 소박한 아버지 노릇에 대한 힌트가 한가득하다.

마음이 추운 우리 아버지들, 이 책을 오래 곁에 두고 한 장 한 장 넘겨보길 권한다. 누구보다 근사한 아버지 되는 길이 새록새록 담겨있다.

이기연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12-01 22:37


이기연 자유기고가 popper@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