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깨달음은 자기를 이기는 것"

[출판] 하버드에서 만난 부처
"진정한 깨달음은 자기를 이기는 것"

하버드에서 만난 부처
소운 지음
도솔 발행 9,000원

파르라니 머리를 깍은 비구니 스님이 등에 바랑을 메고 지나간다. 스님의 회색 가사 자락 끝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스친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참 안 됐군.’ 한국 사회에서 비구니 스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은 대체로 이런 식이다.

헌데 한국의 비구니 스님 한 분이 일본 도쿄대에서 5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8년, 도합 13년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박사 학위를 따서 돌아왔다. 사람들의 관심이 “왁” 하고 달려 든다. 게다가 그는 한국에서 보기 드문 학승(學僧로)으로서 참선 위주의 풍토가 뿌리 내린 한국 불교 교단을 향해 교의 중요성을 당당히 역설하고 있다.

불교 공부를 수행으로 삼고 캠퍼스를 불당 삼아, 이역만리 타국에서 부처가 되는 길을 찾았던 소운 스님. 부처가 되기 위해 학업을 접고 머리를 깎았다가 불교 공부를 위해 다시 학교로 돌아간 십 수년의 사연과 번뜩이는 깨달음의 순간들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비구니 스님의 저서라고 혹 심상찮은 불교 교리나 저적거린 건 아닌가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버드에서 만난 부처’에서 저자는 자신의 근본인 불교를 말하지만 불교만 붙잡고 있는 건 아니다. 가난한 유학 생활, 타국 생활의 고독과 서러움, 몸서리 나게 치열했던 학업 과정, 잊을 수 없는 은사와 학우들, 학교 매점 흑인 아저씨의 욕심 없는 행복한 얼굴에서 부처를 발견하며 느낀 득의의 환희. 게으름 없이 걸어온 고단한 여정을 담백하게 기록한 에세이집이다. 불자든 아니든 뭔가 자신의 화두를 찾고 있는 사람, 난관에 부딪힌 사람, 갈피없이 흔들리는 사람들에게 정신적 버팀대가 될 수 있는 꼿꼿하고 바른 심지가 담겨 있다.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자면 자기 자신을 이겨낸 사람의 다부지고 중심 곧게 잡힌 목소리가 도처에서 울린다. 단문의 간결한 문체도 오랫동안 갈고 닦은 묵직한 사유들을 힘 있게 쏟아낸다. 읽다 보면 문장마다 굵게 밑줄을 긋고 싶은 충동이 인다.

“불교에서는 많이 믿으라고 하기보다 마음을 더 많이 열라고 가르친다. 열린 마음은 자신의 관점이 아닌 타인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열려 있는 곳은 늘 새롭다. 거기엔 늘 새로움을 발견하는 기쁨이 함께 한다.”“경쟁은 남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하는 것이다. 결국 나에게 지면 모든 것에 패배하는 것이다. 자신을 이기기 위해 중요한 것은 생각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생각의 노예로 만드는 요소들은 콤플렉스와 강박관념 등 부정적인 사고들이다. 강박 관념을 가지면 무거운 짐을 지고 달리는 것과 같아 곧 지쳐 버린다.”

선방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의 고뇌에 빠져 사는 속세의 우리들에게도 금 같고 옥 같은 가르침이다.

소운 스님이 불현듯 학업에 뜻을 두게 된 것은 참선만으론 부처가 되는 길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참선을 하고 마음을 닦으면 된다지만 참선은 뭐고 마음은 무엇인가. 궁금해서 물으니 시간이 지나면 다 알게 된다는 대답뿐. 부처의 가르침을 제대로 배워 보고 싶었다. 선방에서 안 된다면 속세에서 배우겠다며 대학문을 두드렸다. 출가와 속세의 중간 지점에서 정신적 소강 상태를 극복하며 힘겹게 배운 불교학. 이제 자신의 배움을 바탕으로 속인들에게 부처의 가르침을 제대로 전하고 싶은 소망을 얘기한다.

유학 시절 누군가 물었다고 한다. 왜 그렇게 어려운 공부를 하느냐고. 스님의 대답이다. “누구나 벌집에서 달콤한 꿀을 따기 원하지만 벌에 쏘이는 것을 감수하지 않으면 꿀을 손에 넣을 수 없다. 벌에 쏘인 아픔과 상처가 큰 만큼 수확한 꿀은 더 달콤하다.”

문득 자문해 본다. 마음속에서 지금 노력 없는 열매를 욕심 내고 있지는 않은지. ‘백만 대군을 이기는 것보다 자기 한 사람을 이기기 어렵다’는 부처님의 말씀이 등을 딱 내리 친다.

이기연 객원기자 출판전문


입력시간 : 2004-12-08 18:33


이기연 객원기자 출판전문 popper@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