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노처녀 브리짓의 유쾌한 사랑 방정식로맨스를 꿈꾸는 뭍 노처녀의 향수 자극

[시네마 타운] 브리짓 존스의 일기 : 열정과 애정
돌아온 노처녀 브리짓의 유쾌한 사랑 방정식
로맨스를 꿈꾸는 뭍 노처녀의 향수 자극


크리스마스를 학수고대하는 연인들에게 워킹타이틀이 올해 내 놓을 영화는 열광의 대상으로 떠오를 것 같다. 워킹타이틀은 이미 <노팅 힐> <브리짓 존스의 일기> <러브 액츄얼리> 등의 로맨틱 코미디를 제작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영국의 영화제작사다. 이 회사가 2004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등장시킨 주자는 이를 테면 돌아 온 브리짓이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열정과 애정>(이하 <열정과 애정>)은 근사한 로맨스를 꿈꾸는 노처녀들의 향수를 다시 한 번 자극한다. 헬렌 필딩 원작의 속편을 영화화한 이 영화에서 엉뚱하고 매사에 실수 투성이인 노처녀 브리짓 존스는 3년 만에 다시 몸무게를 11 킬로그램이나 늘린 르네 젤웨거의 열연으로 생명력을 얻는다. 매력적인 바람둥이 휴 그랜트와 넉넉하고 쿨한 남자 콜린 퍼스의 밀고 당기는 드잡이 싸움도 여전하다.

브리짓이 새해를 맞아 시골의 부모를 방문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하는 이 영화는 전편의 익숙한 세계에 대한 묘사로부터 시작한다. 변태적이거나 혹은 괴상한 친척들과 친구들로 가득 메워진 집 안에서 혼란스러워 하는 노처녀 브리짓의 모습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으며, 그녀가 처한 상황은 심지어 새로운 해의 가장 큰 변화인 남자 친구 마크 다시(콜린 퍼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심란하기 짝이 없다.

좌충우돌 브리짓의 여전한 매력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애인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브리짓은 이제 <열정과 애정>에서는 멋진 애인과의 해피 엔딩을 향해, 다시 한 번 그녀 앞에 놓여진 장애물들을 힘겹게 뛰어 넘어야 한다. 1편 감독인 샤론 맥과이어의 바통을 이어 받은 비번 키드론(<투 웡 푸>의 감독)은 전편의 매력을 이어 가는 속편의 규칙을 일단은 충실히 이행한다.

전편에서 에릭 카멘의 1970년대 팝송 ‘All By Myself’를 목 놓아 부르던 브리짓의 처절한 몸부림을 기억한다면 새 작품 <열정과 애정>에 브리짓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 올드 팝 넘버들이 넘치는 이유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 같은 음악적 미덕과 함께, 여전히 좌충우돌하는 브리짓이 벌이는 유쾌한 소동은 이 시리즈를 이끌고 가는 가장 큰 동력이자 매력이다.

그러나 <열정과 애정>은 단지 전편의 후광에 안주하려는 속편은 아니다. 영국에 머물고 있던 브리짓의 로맨스가 세계로 넓어지는 것처럼, 우리의 주인공 브리짓은 속편에서 보다 성숙한 고민에 빠진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 해 목놓아 울부짖던 브리짓은 이제 서로를 이해하고 양보해야 하는 커플로서의 삶이 홀로된 외로움을 견디는 것 못지 않게 지난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전편에 달콤한 양념을 가미하는 것 외에, 원작자인 헬렌 필딩의 소설이 제시한 형식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도 특색 있다. 일기라는 철저하게 사적이고 자의식적인 글쓰기가 곧 <열정과 애정>의 영화 스타일을 지배하는 키워드인 것이다. 이 영화는 일기에 씌어진 브리짓의 현실이 때로는 판타지이며, 왜곡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주지시킨다. 전편과는 달리, 감독은 브리짓을 둘러 싼 세계의 중심이 바로 브리짓이라는 사실을 감추려 하지 않는다.

<열정과 애정>은 사적인 일기에서나 표현될 수 있는 감정적인 과장의 수사들을 자유자재로 사용한다. 예컨대 브리짓이 마크와 다툼을 벌이고 홀로 어두운 골목길을 걸어갈 때 그녀는 ‘브리짓 존스, 노처녀로 늙어 죽다’라는 묘비명이 씌어진 자신의 묘비를 발견하며, 마크와 헤어진 후 쓸쓸히 담배를 피우며 창 밖을 쳐다볼 때, 카메라는 창문 위로 날아 올라 온통 행복한 커플로만 가득찬 다른 집들의 창문을 훑어나간다. 감정의 흐름에 따른 이 같은 판타지 장면들은 비루한 노처녀의 현실적 감정에만 치우쳤던 전편과 <열정과 애?이 차별되는 하나의 지점이다.

판타지의 과잉과 왜곡된 시선
<열정과 애정>은 로맨틱 코미디가 흔히 빠지기 쉬운 과도한 낭만주의를 희화화하기 위해 판타지를 동원하고 있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사운드 오브 뮤직’의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넓은 언덕에서 서로를 향해 슬로 모션으로 달려가는 브리짓과 마크를 보여주는 장면에는 낭만성이 과잉돼 실소마저 자아내며, 브리짓이 저지르고 다니는 온갖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흡사 세계적인 권력자처럼 묘사된 마크의 신통방통한 능력 또한 비현실적이다.

감독은 브리짓의 상상 혹은 일기라는 형식을 빌어 영화를 판타지로 꾸미려 작정한 것 같다. 브리짓에게 일어나는 전형적인 소동들을 희화화하면서 스테레오 타입화 된 로맨틱 코미디의 낭만성을 살짝 벗어나는 모험을 감행하는 것이다.

이 같은 판타지의 이면에서는 보다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접근, 즉 서로를 지극히 사랑하지만 학력의 차이, 교양의 차이, 생활 방식의 차이, 사고 방식의 차이로 곤란을 겪는 브리짓과 마크의 관계도 동시에 묘사된다.

영화의 후반부까지 브리짓과 마크의 갈등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아이를 낳는 문제에서부터 속옷을 개는 문제까지 사사건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둘의 반목은 마침내 파국으로 치닫고, 브리짓은 위험한 옛 남자 다니엘(휴 그랜트)의 유혹에 걸려들 뻔 하지만 결국 진실한 사랑을 되찾는다.

간혹 왜곡된 시선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들도 있다. 동양에 대한 서양인들의 오만한 편견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태국에서의 장면들이 대표적이다. 기껏해야 런던과 교외를 배경으로 했던 <브리짓 존스의 일기>와 달리 오스트리아, 심지어 태국까지 날아가 이야기의 집중성을 떨어뜨렸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여기서 그 실체를 밝히기 곤란한 마지막 반전 역시 억지 춘향식이어서 거슬린다.

하지만 이 같은 핸디캡이 영화의 장점을 모조리 가릴 정도로 치명적이지는 않다. 성공한 전편에 기대 구태의연한 답습을 밥 먹듯 하는 여느 할리우드 영화와 차별된 것만으로도 <열정과 애정>은 후한 점수를 받을 만 하다. 독창적인 로맨틱 코미디라고 볼 수는 없지만 전편의 장점을 살리면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려는 감독의 의도가 무리 없이 읽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흠을 눈감아 준다면 <열정과 애정>은 올해 크리스마스를 따뜻하게 보낼만 한 속편임이 분명하다.

장병원 영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4-12-16 16:28


장병원 영화평론가 jangping@film2.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