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리망명객 이유진의 삶과 꿈/ 이유진 지음/ 필맥 발행 / 1만원

[출판] 떠도는 그는 아직도 고국을 짝사랑한다
빠리망명객 이유진의 삶과 꿈/ 이유진 지음/ 필맥 발행 / 1만원

평양에서 6년, 서울에서 18년, 그리고 파리에서 41년. 평생의 대부분을 파리에서 보냈으니 이제 프랑스 사람이 다 되었을 것만 같다. 허나 ‘오래 살아도 외국은 역시 외국’이라며 탄식하는 사람이 있다. 생각만 해도 항상 따뜻한 곳이 고향땅 한국이건만 그는 아직도 돌아올 수가 없다. 지난 1979년 한국을 들썩였던 ‘한영길 사건’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1963년 서울대 문리대 심리학과 졸업 후 프랑스 심리학을 한국에 소개하겠다는 학문적 열망으로 결심한 유학길. ‘카뮈가 공산당에 가입했다고 시비 걸지 않고 사르트르가 모스크바를 지지했다고 잡혀가지 않는 나라‘ 프랑스에서 그는 참된 자유를 맛본다. 그것은 불심검문이 횡행하고 군경의 권위가 하늘을 찌르던 고국에서는 결코 경험하지 못하던 것이었다.

그는 옳은 일, 정당한 일에는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는 강직함의 소유자였다. 1967년 동백림 사건 때는 파리 주재 한국대사관에 찾아가 항의를 했고 김지하와 김대중 구명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는 등 해외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앞장 섰다. 그런 그가 군사 정부에 찍히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벌어진 것이 바로 ‘한영길 사건’이다.

당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파리 무역관 부관장이던 후배 한영길 씨가 문책성 인사를 피해 정치 망명을 시도하면서 도움을 요청해 왔다. 부탁을 뿌리치지 못한 그는 프랑스 대사관으로 후배를 인도한다. 그러나 얼마 후 한영길 씨가 중앙정보부에 의해 압송되면서 그는 북괴 공작원이자 한영길의 딸을 납치했다는 아동 납치범의 누명을 쓰고 만다. ‘르 몽드’, ‘리베라시옹’ 등 프랑스 언론은 박정희 정권의 정치 공작이라며 그를 옹호했다. 그러나 레드 콤플렉스가 뿌리 깊은 한국에서는 그에게 간첩 낙인을 찍었고 그의 프랑스인 지기들마저 간첩단으로 몰았다. 프랑스 교민 사회에서도 그는 기피 대상자가 되었다.

독재 정권과 냉전 이데올로기에 희생당한 예순 노인의 삶과 간첩 조작극의 진실은 2001년이 돼서야 일반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MBC 특집 다큐멘터리 ‘파리 평양 서울, 떠도는 자의 꿈’을 통해서 였다. 그의 삶을 고스란히 담은 자전적 에세이 ‘나는 봄꽃과 다투지 않는 국화를 사랑한다’도 발행되어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이번에 출간되는 ‘빠리 망명객 이유진의 삶과 꿈’은 ‘나는 봄꽃과…’의 내용에 최근의 글을 일부 추가한 개정판이다. 한때 간첩으로 몰렸던 행동하는 지식인, 얽매임 없는 자유인 이유진의 인생과 철학, 꼿꼿한 삶의 소신을 비롯해 동서양 고전을 꿰뚫는 해박한 지식이 온전히 담겨 있다.

간첩 사건이 벌어졌을 때도 신뢰와 지지를 보여준 프랑스인 친구들, 자신 때문에 연좌제에 희생당했건만 불평 한마디 없던 한국의 가족들. 긴긴 타향살이에 힘이 되어 준 것은 바로 가족과 친구들이었다. 특히 염색체 장애를 갖고 태어난 늦둥이 아들을 보고 통곡했으나 지금은 그 모자란 자식의 영혼과 하나 됨을 느낀다는 뜨거운 부성애를 접할 때면 눈가가 후끈해 진다.

그는 두 자녀에게 옳지 않은 일, 싫은 일에는 “농(non)”이라며 외치라고 부추기고 학교에서 부당하게 괴롭히는 친구에게는 주먹으로 맞대응하라고 가르치는 불량(?)아버지다. 다른 사람이 하기 싫은 일을 강요하는 것은 나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좌익이든 우익이든,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가릴 줄 아는 사람은 그의 기준으로 볼 때 좋은 사람이다. 그런 소신으로 한평생을 살아 왔다. “오늘의 나는 내가 옳다고 여긴 것들을 선택해 온 결과다. 정다운 친구들과 밤새도록 술잔을 기울일 수 없는 빈약한 주머니가 고달프긴 하지만, 어느 인생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만족스러우랴.”

참된 것, 바른 것에서 안정과 용기를 얻어왔고 인생의 소소한 즐거움에 안빈낙도하는 초로의 노신사. 그가 바라보는 민주주의 국가 한국은 아직도 젊은이들의 정직한 용기가 징벌의 대상이 되고 있고, 소명절차를 거부하는 해외 민주 인사들의 입국을 두고서는 고개를 외로 꼬는 나라다. 그렇지만 프랑스인의 정체성을 가진 30대 딸에게 아직도 한국말을 배우라고 독촉할 만큼 짝사랑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가 이데올로기의 상흔을 지우고 이 땅에 돌아올 수 있는 날은 언제쯤일까.

입력시간 : 2004-12-22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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