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에 가려진 '인간 역도산'조선인으로 살아야 했던 고달픔과 처절한 생존과정 그려

[시네마 타운] 송해성 감독 <역도산>
신화에 가려진 '인간 역도산'
조선인으로 살아야 했던 고달픔과 처절한 생존과정 그려


‘역도산’을 잉태한 건 한 장의 사진이었다. 재일 프로레슬러 역도산을 찍은 그 사진에서 레슬링으로 전향하기 전 스모 시절 역도산은 묘령의 여자와 나란히 서 있다. 사진 속의 역도산은 반쯤은 웃고 반쯤은 찡그린 것 같은 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역도산’을 연출한 송해성 감독(‘카라’ ‘파이란’)은 “그 자식 인상 정말 더럽네, 라는 생각이 확 드는 사진이다. 왜 청년 역도산의 얼굴이 저렇게 그늘져 있는지, 그는 왜 웃지 못하는지를 ‘역도산’을 통해 파헤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극중에서 조센진이라는 이유로 일본인 스모 선수들로부터 이지매를 당하는 역도산은 그들에게 “맘껏 웃으며 살고 싶어서 요코즈나(스모 선수가 올라갈 수 있는 최고 등급)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천황 아래 역도산’이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전후 일본 사회의 신화였던 역도산의 영웅적 면모 뒤에는 여성 편력을 일삼았던 천하의 난봉꾼, 강함을 증명하기 위해 승부를 즐겼던 싸움꾼, 목표를 위해 음모와 협잡도 불사했던 모사꾼의 모습이 있다.

링 위에서는 당할 자가 없는 강자였지만 언제나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던 역도산. 송해성이 연출한 설경구의 ‘역도산’은 영웅 역도산이 아닌 인간 역도산을 담으려 했다. 조선인으로서 차별을 인내하며 오로지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링 위에서 싸워야 했던 한 남자의 고독과 슬픔을 찡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설경구의, 설경구에 의한, 설경구를 위한
‘역도산’은 조센진이라는 출신 성분의 한계를 가진 역도산(조선인 이름 김신락)이 가혹한 차별을 딛고 레슬링 선수이자 프로모터, 비즈니스맨으로 성공한 후 외로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역도산의 영광 뿐 아니라 그의 고뇌와 좌절, 슬픔, 그림자까지를 담는 게 ‘역도산’의 진짜 목표였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 역도산의 일대기는 쉽게 영화화할 수 있는 소재는 아니었다. ‘역도산’의 제작사인 싸이더스픽쳐스의 차승재 대표는 “일본에서 역도산은 누구나 영화로 보고 싶어 하지만 누구도 응원해 주지 않는 이야기”라고 이 영화를 정의한다.

나이트클럽 화장실에서 역도산에게 칼침을 놓아 그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야쿠자가 현재 일본 내 야쿠자 조직의 보스로 생존해 있으며, 북한의 영웅이기도 했던 역도산의 생애가 영화화할 경우 일본 내 우익들의 반발을 살 가능성도 컸다. 일본 로케이션과 협작을 시도한 제작 과정도 천신만고라는 말이 허언이 아닐 정도로 고행의 행군이었다. 1950~60년대 일본의 모습을 재현한 오픈 세트를 열 개나 지었고 주연 배우 설경구는 체중을 28kg 불리고 대본의 95%에 달하는 일본어 대사에 익숙해지기 위해 개인 교사까지 두고 일본어 연습에 매진했다.

‘역도산’은 그 유장하고 드라마틱한 인생역정의 주인공을 연기한 설경구의 영화다. 역도산의 음영진 삶을 스크린에 옮기려 작정했을 때부터 이 영화의 운명은 온전히 설경구에게 올인 돼 있었다. ‘공공의 적’, ‘오아시스’ 등의 영화를 거치며 체중 불리기와 줄이기에 신물이 난 설경구는 끝까지 역도산 역을 거절했지만 “설경구가 아니면 영화를 엎겠다”는 송해성 감독의 불퇴전에 설득당하고 말았다. 아니나 다를까 “오로지 설경구 뿐”이라고 했을 정도로 두터운 신망을 받았던 설경구의 에너지는 스크린에서 폭발한다.

운동에는 젬병이었던 그는 비대해진 살집을 근력 운동을 통해 근육으로 만들고 140kg에 달하는 진짜 레슬링 선수들과의 격한 레슬링 경기를 대역 없이 소화했다. 육체의 한계를 극복한 근성보다 더 경이로운 건 그가 역도산의 카리스마와 풍모를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손이 발끝에 닿지 않을 정도의 뱃살, 겹쳐지는 목덜미 살들, 뭉툭해진 손가락, 우람하게 발달한 어깨 근육 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 거인의 아異遮?몸 뿐 아니라 정신과 기질, 뼛 속까지 역도산이 되고자 했던 지극한 신심의 결과다.

너무 많이 말하고 싶었던 영화
불행한 것은 이 같은 설경구의 괴력이 영화에는 마이너스가 됐다는 점이다. 이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설경구에게만 시선이 꽂히는 이유는 단순하다. ‘역도산’이 인간 역도산의 다층적 모습을 효과적으로 담아내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괴물 배우 설경구가 돋보이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역으로 설경구가 너무 앞에 나와 있기 때문에 역도산의 진짜 삶이 가려졌다고 볼 수도 있다. 문제는 설경구 말고도 ‘역도산’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는데 있다.

전기적 영웅담이 되지 않기 위해 영화는 게이샤(아야)와의 아련한 로맨스, 정신적 아버지였던 칸노 회장과의 관계, 민족적 정체성을 거부하는 무정부적 태도, 최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인간적 고뇌 따위를 모두 아우르려 한다. 하지만 한 사내의 좌절과 사랑, 공포, 두려움, 그 속에서 피어나는 생의 의지 같은 테마가 교차하는 입체적인 인간 드라마까지 비상하지 못하고 그저 산만한 휴먼 스토리에 주저앉고 만다. 원초적 순수성을 상징하는 여인과의 로맨스, 재일 한국인으로서 느꼈던 성공에 대한 갈증, 적들에게 포위당하고 있다는 강자의 불안감, 조국에 대한 애증 등을 ‘역도산’은 어느 것 하나 분명하게 보여주질 않는다. 설경구는 안간힘을 쓰는데 그 힘이 잘 전달되지 않는 것이다.

‘역도산’은 역도산이라는 인간의 다층적 모습을 훑고있지만 그 깊숙한 속내를 들춰내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 한다. 역도산의 실제 삶에 짓눌려 영화가 맘껏 기를 펴지 못하는 형국이다. 결과적으로 남는 것은 ‘역도산을 지금 이 시대에 되살려 감독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이다. 동물 같은 생존본능으로 일생을 살았던 역도산의 안과 밖, 그 복잡다단한 삶의 결들을 포착해 보편적인 인간의 진실에 접근하려던 애초의 의도는 희미해졌기 대문이다. 시사회 무대 인사를 통해 송해성 감독은 “치열하게 살았던 남자의 진심을 보아 달라”고 청했다. 그 진심이 가슴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실로 애석하다.

장병원 영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4-12-22 15:30


장병원 영화평론가 jangping@film2.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