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아래 찬연히 빛나는 밤의 요정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달맞이꽃
달빛 아래 찬연히 빛나는 밤의 요정

달맞이꽃은 누구나 잘 아는 식물이다. 길가에 피어나는 환한 달맞이꽃을 보노라면 낯 모르는 곳도 마치 고향집 근처같은 착각이 들기도 하고, 동심으로 돌아가 마음이 가벼워지곤 한다.

하지만 이 달맞이꽃이 고향이 우리나라가 아닌, 귀화 식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신 분들은 많지 않다. 달맞이꽃의 고향은 저 멀리 아메리카 대륙의 칠레라고 하면 “어릴 때부터 보았는데 무슨 말인가” 하고 깜짝 놀라실 분이 많으실지 모르겠다. 이 식물은 고향은 다르지만 일찍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스스로 자리잡고 씨앗을 퍼트려 사방에 퍼져, 이젠 전국에 분포하고 씨앗으로는 기름을 짜서 약으로 쓴다 하니, 태생은 다르더라도 이 정도면 널리 보아 우리풀이라고 여겨도 될 듯 하다.

우리의 생각과 다른 달맞이꽃의 특징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월년초(越年草)라는 사실이다. 워낙 왕성하고 튼튼하여 잘 자란 곳에는 아이들 키를 넘을 만큼 크게 자라니 당연히 여러 해 살이 풀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씨앗이 떨어지면 그 해에 방석 모양으로 뿌리 근처에 잎들이 둥글게 퍼져 달리다, 새봄이 되면 싹이 다시 나와 온전한 식물로 커 꽃도 피고 열매도 맺어 마침내 떨어진다. 사실 알고 보면, 이러한 특징이 바로 달맞이꽃의 생활력을 높혀 이 땅 곳곳에 잘 정착시킨 장점의 하나이다.

지금 같은 겨울, 풀밭에 가보면 잎의 반쯤은 붉게 물들어 푸르지도 붉지도 그렇다고 누렇지도 않은 모양으로 땅위에 퍼져 자라는 식물의 상당수는 달맞이꽃이다. 이런 형태로 모진 겨울을 지내다가 봄이 오면 다른 식물들은 그제서야 씨앗을 틔우며 꾸물거리지만, 달맞이꽃은 바로 눈(芽)에서 새순이 쑥 나와 자라니 일정한 땅을 조기에 점령하여 퍼져나갈 수 있는 것이다.

달맞이꽃은 이름 그대로 달을 맞이하는 저녁에 꽃을 피워 붙게 된 이름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금달맞이꽃, 향대소초, 아래향, 월견초, 돼지풀 같은 여러 가지 별명이 붙어 있기도 하다, 여름이면 4장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밝은 노란색의 꽃이 잎겨드랑이마다 한 개씩 달린다. 보통 저녁때 노랗게 피었다가 아침에 시들며 그 때는 약간 붉은빛이 돈다.

왜 하필이면 저녁에 꽃을 피울까? 요즈음 사람처럼 튀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주로 밤에 활동하는 곤충 박각시와 관계가 깊다. 박각시라는 곤충의 이름 역시 밤에 꽃잎이 벌어지는 박꽃을 찾아가 그 앞에서 윙윙대며 꿀을 빨고 있으니 신랑인 박을 찾아온 각시라는 뜻인데, 이 곤충이 바로 달맞이꽃의 꽃가루 받이를 도와 준다. 서로 서로 경쟁자가 없는 저녁 시간을 이용해 효율을 높여 결실 하고자 하는 의도이다.

흔히 귀화 식물은 생태계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식물로 인식되고 있지만 달맞이꽃은 매우 유용한 자원 식물이다. 생태적인 문제와 함께 생각해 보면, 이 식물이 우리의 고유한 식물이 자라는 곳에 있는 게 옳지는 않다. 그러나 이 식물은 광선 요구도가 많아 아주 우거진 숲에는 들어가 살지 못하고 사람들이 숲을 파괴하여 들판을 만들어 놓았거나 혹은 길을 만든 가장자리에 자라니, 혹 생태 문제와 생각하여 이 식물의 잘 잘못을 가리려면 우리 사람들의 행동부터 따져 봐야 할 일이다. 더욱이 길쭉한 주머니 같은 열매 속에 달린 까만 씨앗에서는 기름을 짜는데, 한때는 성인병에 좋다고 하여 아주 고가로 거래된 적도 있을 정도이니 분명 유용한 식물이리라.

한 해가 간다. 어려운 일이 많았다면, 그래서 참 힘들다면, 이 겨울 씨앗을 틔워, 잎을 펼쳐내고 추위를 견디면 성공적인 새봄을 기약하는 달맞이꽃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어두운 환경에서도 더없이 환하게 피어나는 그 꽃의 아름다움 만큼만, 우리 마음을 밝게 가져보자. 그렇게 한 해를 보내고 싶다.

입력시간 : 2004-12-22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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