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기의 소박한 비전을 담은 미야자키의 판타지 모험극나이와 국경을 초월한 꿈의 이야기, 과거로의 후퇴 엿보이기도
[시네마 타운]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 황혼기의 소박한 비전을 담은 미야자키의 판타지 모험극 나이와 국경을 초월한 꿈의 이야기, 과거로의 후퇴 엿보이기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지금 일본 영화의 흥행 기록을 무서운 속도로 갈아 치우고 있다. 개봉 20여일 만에 7백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미야자키의 전작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 불명’이 세웠던 2,340만 명이라는 대기록을 추월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모자 가게에서 일하는 18세 소녀 소피가 마녀의 저주를 받아 아흔 살 쭈글이 노파로 변해 버리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황망한 마음에 마을을 떠난 소피는 역시 마법에 걸린 허수아비의 안내를 받아 미남 마법사 하울의 성에서 청소부가 되고 소심한 바람둥이 하울에게 사랑을 느낀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 불명’, ‘모노노케 히메’처럼 동양적 색채가 물씬 풍기는 미야자키의 야심작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미야자키의 초기 애니메이션 중 ‘천공의 성 라퓨타’나 ‘우편 배달부 마녀 키키’를 연상케 하는 낭만적이고 동화적인 비전에 가깝다. 물론 그 안에는 미야자키의 세계관, 즉 인간 혹은 문명이 사용하는 과학이 자연과 공생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담겨 있다.
되돌아 온 동화적 비전 전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 불명’은 광대한 스케일과 독창적인 상상력, 성숙하고 세련된 연출로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경계를 지워 버렸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 불명’에서 미야자키는 평범한 열 살 소녀 치히로가 겪는 기이한 모험을 통해 책임감과 예의, 희망과 한계를 동시에 깨달으며 성숙해 가는 인간 내면의 성장을 깊이 있게 그려내 만화 영화는 어린 아이들이나 보는 단순한 이야기라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뿌리깊은 편견을 일거에 불식시켰다. 시간이 갈수록 성숙해져 가던 미야자키의 영화 세계와 달리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그의 초기작에서 보이는 서양 명작 동화 스타일을 따르고 있다. 가상의 공간으로 설정돼 있긴 하지만, ‘알프스 소녀 하이디’나 ‘엄마 찾아 삼만리’ 처럼 이 영화의 배경은 명백히 19세기 말 유럽을 염두에 두고 있다. 물론, 동명의 영국 판타지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유럽식 배경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더욱 본질적인 것은 암시적으로 근대 유럽의 풍경 속에서 펼쳐지는 이 영화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서양의 고전 동화들을 참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녀의 마음을 지닌 노인 미야자키 미야자키가 그려내는 노인의 모습은 그가 어떤 면에서 미래의 희망과 절망을 모두 짊어져야만 하는 젊은이의 고된 임무를 벗어난 것을 즐거워하고 있다는 인상마저 준다. 소피는 마법에 걸리기 전까지 가업으로 대물림 돼 온 모자 가게를 이어 받아야 하는 책임감 강한 맏딸의 역할 외에 별다른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한 소녀로 그려진다. 그러나 마법을 통해 노파로 변한 뒤 마법을 풀기 위해 하울의 성을 찾아가면서, 그리고 자청해서 성의 청소부가 되면서 자신의 감정에 보다 충실한 지혜로운 여성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원작 소설의 구현하고 있는 방대한 판타지의 비전을 짧은 시간에 온전히 담아 내기 위해 빠른 이야기 전개를 택했다. 하지만 빠른 전개에 비해 이야기 구조가 다소 엉성한 탓에 캐릭터의 소소한 감정 변화를 따라 가기가 그다지 쉽지 않은 맹점을 안고 있기도 하다. 구성과 독창성이라는 측면에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분명 미야자키의 팬들로부터 후한 점수를 받기에는 모자람이 있는 범작이다. 하지만 판타지의 틀을 빌어 자신의 현재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야자키는 여전히 흥미로운 감독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황혼기에 접어든 미야자키의 소박한 비전을 보여준다. 몸은 노인이지만 마음은 여전히 청춘에 머물고 싶은 “피터팬 증후군 환자” 미야자키가 들려주는 동화 속에서 노인과 아이, 남자와 여자는 조화로운 삶을 꾸려간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 속에서는 국경도, 인종도, 성별도, 나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입력시간 : 2004-12-29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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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원 영화 평론가 jangping@film2.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