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 검정 고무신 外


검정 고무신 / 도래미, 이우영 지음. 김유대 그림

로또 복권에 당첨되면서 단란했던 가정이 풍비박산 나고 인심 좋던 이웃끼리 절연하는 소식을 접할 때면 참 사는 게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풍요로워질수록 마음이 점점 각박해지는 이유는 뭘까.

‘검정 고무신’은 30년전,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시절의 이야기로 마음을 무장해제 시킨다. 경제가 얼어 붙으면서 얇아진 주머니만큼 마음도 추운 요즘, 누구보다 넉넉한 가슴으로 살아가는 기영이네 식구의 달콤쌉싸름한 이야기에 코끝이 찡하다.

그토록 갖고 싶던 운동화를 사는 대신 엄마가 물끄러미 바라만 보던 빨간 고무장갑으로 바꿔 어버이날에 선물하는 어린 아들, 물건값 깎는 데는 도사지만 할머니들한테는 깎지 않고 더 사주는 엄마, 따뜻한 정이 넘치는 선생님과 제자, 가난해서 책가방도 없지만 웃음과 순수함을 잃지 않는 개구쟁이 악동 친구들. 먼 기억들을 한웅큼씩 끄집어 내 모은 그 시절 이야기들이다. 1992년부터 지금까지 연재되고 있는 만화가 원작이다. 랜덤하우스 중앙 발행. 9,500원.


상실 -어제의 나를 놓아 보낸다
/ 라마 수리야 다스 지음. 진우기 옮김

어제는 직장을 잃고 오늘은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갔다. 암담하고 절망스럽다. 상실의 고통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내 것이 아닌 것을 놓아 버리는’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는 책이다.

저자는 티벳불교 족첵 법맥의 라마 수리야 다스. 본명은 미국 출신의 제프리 밀러로 친구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20여 년간 구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할 수 있을 때는 집념을 가지고 매달려야 한다는 것을 배웠고 또 놓아야 할 때는 가볍게 놓는 법을 배웠다’는 저자의 말은 집착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을 알려준다.

인생은 고(苦)의 연속. 그러나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괴로움은 선택’할 수 있다. 상실은 고통과 절망, 슬픔을 안겨주나 또한 우리를 강하게 단련시키는 요소도 되기 때문이다. 신발을 벗고 긴장을 풀듯이 붙들고 있는 것을 놓아 버리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여기에는 스스로 가장 집착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자문하고 그것을 깊이 들여다 보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마음속 집착의 끈을 풀고 가볍게 짐을 내려놓는 순간 고요함이 찾아 온다. 푸른숲 발행. 9,800원.

전쟁과 여성 / 김현아 지음

가부장제 문화 속에서 역사는 거의 남성들에 대해, 남성들에 의해 서술되었다. 전쟁의 기록 또한 마찬가지. 전쟁의 한복판에서 참상을 함께 겪었던 여성들의 모습, 여성들의 목소리는 실종되어 버린 상태다. 저자는 전쟁에서 승자한 자의 기억과 패자의 기억이 완전히 다르듯, 남자와 여자가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 또한 완전히 다름에 주목한다.

1999년부터 2004년까지 베트남을 답사하며 전쟁을 겪은 현지 여성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한국 여성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담았다. 밖으로 드러낼 수 없었던 여성들의 목격담과 경험담을 통해 남성들의 이야기만을 담으며 왜곡돼 온 전쟁사의 진실, 그 모자란 반 쪽을 채웠다.

전쟁 속에서 여성은 대개 방위의 주체자인 남성 주변부에서 그들을 위무하거나 간호하거나 보호받는 위치에 구조적으로 강제되면서 자신들의 경험은 묻혀 버린다. 그러나 전장에서도 베트남 여성들은 농사를 짓고, 아이를 돌보고, 전투 훈련을 받으며, 일상의 전쟁을 치러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전쟁을 직시할 때, 기록되지 않은 역사의 이면에 무엇이 있었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 여름언덕 발행. 1만2,000원.

입력시간 : 2005-01-04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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