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외피를 벗겨내고 투쟁적 삶의 내면을 보다사랑과 역사, 그리고 정복욕에 불타는 인간의 모습 그려

[씨네마타운] 올리버스톤 감독 <알렉산더>
영웅의 외피를 벗겨내고 투쟁적 삶의 내면을 보다
사랑과 역사, 그리고 정복욕에 불타는 인간의 모습 그려


세계 정복의 야망을 품었던 기원전의 영웅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알렉산더>에서 올리버 스톤 감독은 이 같은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진력한다.

할리우드의 반골로 명성이 자자한 스톤(<플래툰>, , <도어스>, <애니 기븐 선데이>)에게 ‘알렉산더 프로젝트’는 일생을 두고 앙망해 온 꿈의 실현이었다. 케네디 암살 사건을 조명한 , 워터게이트 스캔들에 가려진 닉슨의 삶을 해부한 <닉슨>, 반문화의 기운이 만연했던 60년대 록커 짐 모리슨의 생을 다룬 <도어스> 등 역사적 인물의 전기적 삶에 천착해왔던 그에게도 알렉산더는 범접하기 힘든 경외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뉴욕대 영화학과 재학 시절부터 그는 “극소수의 스탭들만을 데리고 과거로 가 알렉산더가 벌인 전투를 카메라에 담는 황당한 상상을 했다”고 고백했다. 청년 영화학도 스톤의 꿈은 수 십년 후 물경 2억4,000만 달러에 달하는 거대 블록버스터 영화로 결실을 맺었지만, 현실적 한계를 극복하고 세상을 발 아래 두려 했던 알렉산더의 투쟁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끌어내고자 한 애초의 생각만큼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세계인의 꿈을 펼치다

<반지의 제왕> 삼부작의 기념비적인 성공 이후, 할리우드에서 서사 스펙터클 영화의 제작은 한동안 사그러들지 않을 유행이 되고 있다. 신화적 영웅이 등장하는 서사 블록버스터로 성공을 거둔 <글래디에이터> <트로이> 등의 선례가 있었다. <알렉산더> 역시 이 같은 서사극 바람을 타고 제작될 수 있다.

영화는 그리스 도시 국가 마케도니아의 장수이자 왕이었던 필리포스 2세(발 킬머)의 아들로 태어난 알렉산더(콜린 패럴)가 타고난 용맹함과 지략으로 그리스를 통일한 뒤, 세계 정복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감행한 8년 간의 원정 전쟁을 따라간다. 순수 마케도니아 혈통이 아니었던 알렉산더를 왕위에 올리기 위해 살인까지 불사했던 어머니 올림피아스(안젤리나 졸리)의 욕망과 강한 카리스마로 영토를 넓혀간 알렉산더의 독특한 정복 정책, 충직한 신하이자 친구였던 헤파이션(자레드 레토)과 나눈 우정과 사랑 등 다채로운 스펙트럼으로 그의 삶을 조명한다.

강렬한 캐릭터의 힘으로 드라마를 끌어가는 올리버 스톤 특유의 스타일은 <알렉산더>에 완벽하게 살아있다. 서사 스펙터클 대작들의 연인은 흥행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일반적인 서사영화의 흥행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2억4,000만 달러의 엄청난 제작비와 수천명의 엑스트라, 1,000 개가 넘는 창과 방패, 수천 개의 활과 화살 등의 무기와 의상을 만들었지만 이 모든 건 관객의 시선을 끌기 위한 전시용 볼거리가 아니다. 이 영화는 거대한 규모나 전쟁 스펙터클 장면의 위용을 자랑하지 않는다. 초반과 종반, 이야기의 양축을 이루는 가우가멜라 전투와 인도 코끼리 부대와의 전투가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만, 이들 전쟁 장면은 CG와 특수 효과의 지원을 등에 업은 ‘상상’의 전투가 아니라 피와 살이 엉기는 ‘현실’의 전투에 가깝다.

스펙터클의 황홀경으로 눈을 홀리는 데에는 관심이 없는 이 영화는 세계 통합의 꿈을 꾸었던 제왕적 지도자의 정복욕의 뿌리를 파고 든다. 새로운 역사 해석을 위해 올리버 스톤은 고대 그리스 역사학자인 로빈 레인 폭스를 고문으로 받아 들여 현장에 상주하게 했다.

스톤과 폭스는 알렉산더의 정복 전쟁을 순수 마케도니아 민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왕위 계승을 반대했던 아버지의 혈통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여정으로 재해석한다. 즉, 알렉산더의 동방 원정은 민족과 국가의 경계가 사라진 세계시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방도였다는 것. 주변의 반대를 물리치고 행한 이민족 여인과의 정혼도 이 같은 맥락으로 묘사돼 있다.

제왕에서 인간으로

<알렉산더>가 개봉한 후 일각에서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과 알렉산더의 정복 전쟁 사이의 유사성을 거론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알렉산더가 원정 전쟁을 벌이는 페르시아가 지금의 중동 지역에 해당한다는 것이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이라크 전이 발발하기 전부터 기획된 이 영화가 주도면밀하게 당대의 문제를 겨냥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더구나 이 영화는 알렉산더의 삶을 충실하게 재현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감독 스톤은 역사적 사실에 대해 예술가의 입장에서 나름의 재해석을 내리는데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렉산더는 이민족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결핍의 제왕이었고 자신의 불안을 감추기 위해 정복을 일삼았다. 아버지에 대한 애증을 극복하기 위해 세계 정복에 나서는가 하면, 향수병에 시달리는 병사와 신하들에게 독단적인 군주로 비난을 받고 야만인이라 불린 이민족과 정혼을 하고 동성 연인과 우정 이상의 사랑을 나눠 부인의 질투를 사기도 했다.

영화가 공개되자마자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 그리스, 페르시아계 역사학자들의 비난은 모두 이 같은 ‘자의적인’ 역사 해석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비난의 화살을 무릅쓰고 올리버 스톤은 ‘역사책에 쓰여진 사실들을 카메라로 재확인하라’는 역사학자들의 완고한 요청을 과감하게 거부한다.

<알렉산더>는 역사 재현 영화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 시대에 존재할 가치가 충분하다. 올리버 스톤의 이 같은 야심을 후방 지원한 일등공신은 나약한 인간에서 위대한 제왕까지 넓은 스펙트럼에 걸쳐 있는 ‘인간 알렉산더’를 연기한 콜린 패럴이다. ‘아일랜드의 브래드 피트’로 불리며 그저 잘 생긴 꽃미남 배우로만 치부되던 패럴은 욕망과 콤플렉스, 질투와 카리스마가 넘치는 복잡다단한 캐릭터를 완벽하게 연기함으로써 더 이상 그의 재능에 대해 의심의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인간의 꿈과 콤플렉스가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동력’이라고 말하는 <알렉산더>에는 이전까지의 역사 드라마에는 없던 힘이 실려 있다. 영웅의 삶을 단지 본뜨지 않음으로써 단순한 전기영화가 되기를 거절한 용기가 <알렉산더>를 역사책을 베끼는 파렴치한 영화로 만들지 않았다.

장병원(영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5-01-04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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