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고 꼿꼿한 기상에 향긋함까지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탱자나무
푸르고 꼿꼿한 기상에 향긋함까지

흔히 하는 말 중에 귤나무가 북쪽으로 강을 건너면 탱자나무가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환경의 중요성을 말하는 이야기일 터. 물론 탱자나무를 비하하는 뜻이 담겨 있겠지만, 필자는 올 한해를 탱자나무처럼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우선 해가 바뀌고 날씨는 차갑지만 이 겨울에도 여전히 왕성하고 뾰족한 초록의 가시를 키우는 게 마음에 든다. 힘들고 어려운 세월을 지나다 보면 이리저리 깎여, ‘나’라는 존재를 잃기가 십상인데 겨울에도 여전히 푸르고 무성하니 말이다. 유난히 그 꼿꼿함이 마음을 끈다.

누군가의 손길이 닿지 않았다면 여전히 달려 있을, 그 귀엽고 향긋한 탱자나무 열매, ‘탱자’도 좋다. 모두가 달콤한 귤을 좋아해 나날이 새로운 모습으로 개량되어 버렸지만 탱자는 먹지 못해도 그 향긋함이 있지 않은가. 잠시 입안에 달콤함을 주는 그 과실들보다 그냥 손끝에서 오래도록 향긋한 탱자가 더 의미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피어나는 순백의 꽃송이들도 더없이 순결하고 아름다워 좋다.

또 한번도 역사의 주인공이 될 것 같지 않고 소소하던 탱자나무는 서로 엉키고 의지하여 생울타리로 사용되고, 강화도에 있는 탱자나무 천연기념물은 성벽을 쌓고 그 아래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울타리로 심어져, 주어진 역할을 다하고 오래도록 이름을 남기기에 이르렀으니, 허울 뿐인 명분에 취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충실하고 의미있게 살아온 듯한 탱자나무처럼 한 해를 살고 싶은 것이다.

탱자나무는 운향과에 속하는 작은 키 나무다. 줄기가 항상 푸르러 상록수로 착각하기 쉬우나 낙엽성이다. 탱자나무가 속하는 운향과 식물들은 그 향기로 한 몫을 한다. 탱자나무는 시고도 달콤한 유자나무와 감귤나무와는 사촌쯤 되어 냄새와 가시는 물론 납작한 잎자루에 날개가 달린 것도 같다. 열매를 가루로 만들어 추어탕을 끊일 때 넣거나 고급 일식집에 향기나는 잎으로 장식을 하기도 하는 초피나무와 산초나무와도 팔촌쯤 된다.

탱자나무는 중국이 원산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대부분의 책에는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몇몇 학자들은 낙동강 하구에 있는 가덕섬의 험준한 곳에 탱자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음을 발견한 뒤 여러 입지적 조건으로 미뤄 이 이 군락은 자연산이라고 주장한다. 만일 이곳의 탱자나무가 자생한 것이라면 한국도 원산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탱자나무는 추운 곳에서 자라지 못한다. 주로 중부 이남지역에 자라므로 강화도의 탱자나무들이 북한계선이 된다. 서울에서도 이따금 탱자나무를 볼 수 있는데 노거수는 없으며 제 기후가 아니어서인지 제대로 결실을 맺지 못한다.

한방에서는 탱자를 약으로 쓸 때 충분히 익지 않은 푸른 열매를 둘 내지 셋으로 돌려 잘라 지실이라 부르고, 습진을 다스리는데 이용하였다. 또 탱자의 껍질을 말려 지각이라 부르고 건위 즉 지사제로 이용한다고 한다.

남쪽으로 가면 지금도 탱자나무 보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무성한 가시, 향기나는 꽃과 열매 그 무엇하나 생울타리로 부족함이 없는 듯하며, 옛 어른들은 그 무서운 가시가 나쁜 기운을 쫓아 집안을 보호해주다는 믿음도 있었다,


입력시간 : 2005-01-04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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