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치혁의 건강백세] 웰빙은 마음 다스리기다


심플한 가구가 자리 잡고 있는 널찍한 거실. 창 밖으론 푸른 숲이 보인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가벼운 스트레칭 후 결가부좌하고 명상을 하는 사람이 있다. 허리를 곧추 세우고 입가엔 미소를 머금은 모습. 삶의 여유가 느껴진다. 명상 후엔 유기농 과일 쥬스를 마시고 하루를 활기차게 시작한다….

웰빙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일상 생활에 쫓기는 현대인의 꿈꾸는 모습이 웰빙이라는 단어로 포장되어 각광을 받고 있다. 대중 매체에서 새로운 코드인 웰빙에 주목하자, 기업들도 앞 다투어 웰빙을 마켓팅에 이용해 새로운 소비 문화를 만들고 있다. 깨끗한 물과 공기를 위한 제품을 내놓고 사람다운 삶을 살려면 이 제품들을 써야 한다고 유혹한다.

특히 먹거리엔 웰빙의 파장이 더 크다. 조류 독감, 만두 파동, 오염된 야채 등에 대한 기사들이 주목을 받으며 유기농 야채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다. 화학 조미료를 피하고 비싼 청정 야채와 과일을 먹어야 웰빙을 한다고 말할 수 있는 현실이다. 옷도 천연 소재를 고집하고 명상, 요가, 기공을 해야 웰빙족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삶과 건강에 대해 남보다 많은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 한의사인 탓이다. 먼저 요즘의 웰빙이 너무 물질적인 측면에서만 강조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신문, 방송 등의 언론 매체에서 보도를 할 때에 여러가지 측면들을 고려하지만 역시 화제가 되고 강조하기 쉬운 것은 보여질 수 없는 내면보단 외형적인 부분이다. 게다가 제품의 이미지를 웰빙에 맞춰 광고를 하는 기업들이 많다 보니 웰빙은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없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웰빙은 있는 사람들의 허영처럼 보이기도 한다. “누군 유기농 야채를 먹고 싶지 않겠느냐. 건강에 좋은 운동과 요가를 하고 싶지 않겠느냐”고 외치고 싶을 지경이다. 가뜩이나 나라 경제는 어렵다고 하고 살림 꾸려나가기가 하루가 다르게 팍팍해짐을 피부로 느끼는데 한가하게 웰빙이라니…. 먼 나라 이야기라며 화를 내는 분들도 있다. 한 마디로 위화감을 조성하는 새로운 코드라는 반응이다.

하지만 웰빙은 경제력과도 상관이 없고, 위화감을 조성할 이유도 없다. 말 그대로 해석하면 ‘잘 살기’다. 삶의 방식은 다양하고 자기가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것이 각기 다를텐데,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만 웰빙을 판단할 수는 없다. 정신과 물질 양 측면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웰빙의 긍국적인 목적일 것이다. 그것도 남이 아닌 자기의 기준치에 의해서다.

웰빙이 새로운 고민을 하게 한다면 문제다. 슈퍼 마켓이나 시장에서 “비싼 것이 좀 더 깨끗하지 않을까? 부담이 되지만 기왕이면 웰빙이라고 하는데…”라고 고민한다면 그것은 이미 웰빙이 아니다. 마음에 부담을 주는 행위가 건강한 삶에 도움이 될 리가 없다.

한의학에서 본다면 웰빙의 지향점은 마음 다스리기다. 마음가짐이 ‘건강하게 잘 살기’의 핵심이다. 먹거리로 인해 생기는 병보다는 마음에서 생기는 병이 더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화를 너무 많이 내면 간이 상하고, 고민이 지나치면 비위 즉 소화기에 문제가 나타난다. 슬픔이 과하면 폐가 나빠지고, 공포가 지나치면 신의 기능이 저하된다. 인간사의 일곱 가지 감정이 장부의 건강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마음을 다스리는 좋은 방법중 하나는 관심법(觀心法), 즉 자기 마음을 관찰하는 것이다. ‘태조왕건’이란 TV드라마에서 궁예가 말했던 ‘관심법’이 타인의 마음을 읽는 것이었다면, 지금 말하는 관심법은 자기 감정의 변화를 잘 살피고 마음이 변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유없이 화가 날 리가 없다.

평소엔 별 일 아니었을 것이 심각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있다. 눈을 감고 차분히 자기 감정을 살펴보라. 자기가 얼마나 남을 의식하고 타인의 잣대로 생활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라. 행복은 경제력 순이 아니라 자기만족의 기준에 의해 결정된다.

어설프게 요가와 명상을 한다고 마음이 편해지지는 않는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 매일 맛사지를 받고, 골프를 치는 사람이라도 가정이나 사업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면 건강이 망가질 수 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힘들게 어떤 장면을 연출한다면 더 이상 웰빙이 아니다. 일상 속에서 자신에게 맞는 범위 내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

꼭 무엇을, 누구처럼 해야 웰빙이 아니다. 외식 한 번 못 할 지라도 가족과 함께 저녁 산책을 즐길 수 있고, 웃음이 가득한 식탁의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그 자체가 행복일 것이다. 힘든 일상일지라도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배려할 수 있는 여유, 그들과의 따뜻한 교감, 조그만 것에 감사하는 마음 만들기가 진정한 의미의 웰빙일 것이다.

황&리 한의원 원장


입력시간 : 2005-01-12 11:42


황&리 한의원 원장 sunspap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