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의 바다가 유혹한다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붓순나무
향기의 바다가 유혹한다

붓순나무를 볼 때 마다 이 좋은 나무를 따뜻한 남쪽에 사는 사람만 즐기지 말고 온 나라의 사람들이 함께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붓순나무는 연평균 기온이 12℃ 이상인 지역에서만 겨울을 날 수 있는 데다 크게 자라는 덕택에 분에 담아 실내로 들여 올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중부 지방에선 거의 구경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멀리 빛나는 ?甁兮沮?꽃잎 모양으로 담은 듯한 향기로운 백록색의 꽃, 반질한 윤기가 흐르는 귀렵고 친근감 넘치는 잎새, 게다가 꽃은 물론 수피와 잎 등 온 몸으로 향기를 내어 놓으니 참으로 매력적인 꽃나무라고 할 수 있다.

붓순나무는 붓순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의 넓은 잎을 가진 큰 키 나무이다. 간혹 정원에 작게 전정하여 가꾸어 나무들도 볼 수 있는데, 그럴 땐 마치 관목처럼 보이지만 언제나 크게 자랄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나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제주도에서는 이월이면 벌써 분순나무가 꽃봉오리를 터트리며 사람을 유혹한다. 지름이 손가락 한 마디쯤 되는 꽃은 길쭉하고 길이가 일정하지 않은 꽃잎들이 6장에서 12장 정도씩 모여 자유롭게 벌어지는데, 그 모습이 개성 있다.

짙은 회색의 수피에 어울리게 크지도 작지도 않은 타원형의 잎은 대부분의 상록수들이 그러하듯 두껍고 윤기가 흐르지만 보다 진초록색 잎새에 자세히 들여다 보아도 뚜렷한 잎맥을 구경하기 어려운 개성을 가진다. 붓순나무의 독특한 냄새는 잎을 잘라도 퍼져 나오고 줄기에서 수피를 벗겨도 나오니, 그야말로 온몸 전체로 향기를 내어 누군가를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가을에 익는 열매의 모양도 아주 재미나다. 이 열매의 모양 역시 어찌 보면 별을 닮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꽃만두 모양 같기도 하다. 만두 소로는 붉은 종자를 넣고, 만두피에 녹즙을 넣은 뒤 만두피를 다섯 방향에서 잡아 당겨 오므려 싼 모습이라고나 할까.

붓순나무는 지방에 따라서 가시목이라고 하는데 나는 아직까지 어디에 가시가 있는지를 찾지 못했으며 발갓구, 말갈구라고 하기도 한다. 이 나무의 학명이 일리시움 레리지오점(Illicium religiosum)이다. 여기서 속명 Illicium 은 유혹한다는 뜻의 일리시오(illicio)에서 유래되었는데 바로 이 나무의 향기가 워낙 특별하여 사람을 끌어 당기므로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종소명 religiosum은 종교적인이라는 뜻인데 이 나무가 불교과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간혹 사찰에 심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불전이나 묘지에 바치는 나무로 알려져 있는데, 이 나무 열매에 여러 각이 지는 모습이 인도 천축무열지에 있는 청연꽃을 닮았다하여 부처님앞에 바쳐지게 되었다고도 전해진다.

이러 저러한 연유로 붓순나무의 목재는 염주알을 재료로 긴히 쓰이곤 하는데 부드럽고 촉감이 좋다고 한다. 이 밖에 양산대나 주판알 또는 기타 세공물을 만들기도 하는데, 목재의 공급이 극히 제한되어 있으므로 널리 쓰이지는 못 한다. 수피와 잎의 특별한 향기는 칠하는 향료 같은 것을 만든다. 또한 수피의 추출물은 강한 혈액 응고 작용이 있어 약용하지만 그 예쁜 열매에는 아니사틴, 코아니사틴 같은 유독 성분이 있어 조금만 먹어도 치명적인 해를 끼친다.

자연과 더불어 지내는 즐거움은 이름만 친근하게 알고 있던 식물을 직적 만나 보았을 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붓순나무처럼, 이 땅에 이런 모습의 이런 나무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모습과 향기 속속들이 알아 갈 때의 기쁨도 큰 듯하다. 이 겨울은 그런 재미를 체험하면 보내보면 어떨까 싶다.

입력시간 : 2005-01-21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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