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스트림 스포츠와 성룡 액션의 어긋난 조합

[시네마 타운] 성룡 <뉴 폴리스 스토리>
익스트림 스포츠와 성룡 액션의 어긋난 조합

‘뉴 폴리스 스토리’는 성룡의 대표작 중 하나인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의 연장이라기보다는 시리즈 자체에 경의를 바치는 영화처럼 보인다. 영화는 주요 액션 장면에서 과거 등장했던 익숙한 액션 장면들을 보다 현대적인 방식으로 다시 보여줄 뿐, 기존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와 공통점이 별로 없다. 거대한 쇼핑몰에서 적과 대치하는 장면이라든가, 홍콩 시내를 폭주하는 이층 버스의 카 체이스 장면은 성룡 영화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한다. 멜로드라마의 성격을 띈 누아르 영화 ‘천장지구’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진목승 감독은 이 영화의 뿌리가 여전히 성룡에게 있음을 잊지 않는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뉴 폴리스 스토리’는 성룡 영화의 오랜 불문율을 일거에 깨뜨린 영화다. 이는 단지 성룡이 이제 50세를 넘긴 ‘늙은 배우’라는 사실만을 의미하지 않니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 성룡은 나이를 잊은 듯한 과감한 액션을 선보인다. 21세기의 대중 오락인 익스트림 스포츠와 컴퓨터 게임을 적절하게 버무린 ‘뉴 폴리스 스토리’에서 성룡은 언제나 그렇듯, 안쓰러울 정도로 최선을 다 한다. 하지만 문제는 성룡의 혼신을 기울인 열연이 이전 영화들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는 사실이다.

성룡이 사라진 성룡 영화
영화는 인라인 스케이팅, 보드, 자전거 묘기 등 익스트림 스포츠에 경도된 유복한 젊은 갱단에게 동료를 잃은 경찰 진가구(성룡)가 갖은 시련을 뚫고 극악한 범죄 집단을 소탕하는 과정을 쫓는다. 고주망태로 취해있는 성룡의 얼굴을 크게 클로즈업하면서 시작하는 도입부는 영화의 전체 분위기를 짐작하게 한다. 앞으로 전개될 영화에서 성룡의 얼굴이나 몸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걸 이 장면은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슬픔에 젖은 성룡의 눈꺼풀과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그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진목승 감독은 성룡이라는 배우의 개성을 지워내고 오로지 진가구라는 형사 캐릭터 드라마로 이야기를 끌고 가려 한다.

성룡은 이 영화를 찍은 직후 한 인터뷰에서 “더 이상 액션 배우로 남고 싶지 않으며 로버트 드 니로 같이 연기로 평가 받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토로했다. 액션 보다는 드라마를 선호하는 진목승을 그가 ‘뉴 폴리스 스토리’의 연출자로 선택한 것은 이러한 성룡의 심경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1985년부터 시작했던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이들 모두가 완벽한 ‘성룡의 영화’라는 점이었다. 전성기 성룡 영화는 규모와는 무관하게 볼거리의 중심에 있는 성룡의 강한 개성으로 명성을 쌓았다. 얻어 맞고 찢기고 구르고 뛰어내리면서 육체의 아크로바트적 쾌락을 주는 건 늘 성룡이었다. 이층 버스가 홍콩 시내를 산산조각 내거나 심지어 비행기가 통째로 부서지더라도, 우리는 버스나 비행기를 보지 않고 성룡의 몸과 살신성인하는 액션에 탄성을 보냈다. 기예에 가까운 몸동작과 감정 표현이 풍부한 얼굴,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어떤 속임수도 없이 ‘실제로’ 벌어진다는 사실이 성룡 영화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이 영화에서 변한 건 성룡의 캐릭터 만이 아니다. 여기 등장하는 익스트림 스포츠나 컴퓨터 게임은 성룡의 영화 이력에서 보자면 그다지 낯선 시도는 아니다. 그는 꾸준히 새로운 방식의 액션 스펙터클 요소들을 영화 속에 도입해 왔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스펙터클에서 성룡이 제외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는 점이다. 성룡은 새로운 기계나 무기, 새로운 형태의 적에 맞서기 위해 적들의 무기를 이용하거나 주변의 사물을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사용하면서 새로운 볼거리를 창조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익스트림 스포츠와 컴퓨터 게임으로 무장한 조무래기 청년들에게 손 한 번 제대로 써 보지 못하고 그들의 ‘살인 놀이’를 구경할 뿐이다. 결국 흉포한 적들은 액션 영웅 성룡의 손에 일망타진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모순에 의해 자멸한다.

‘변신’이 야기한 자기함정
‘폴리스 스토리’ 1편과 2편을 성룡이 직접 감독했고, 3편과 4편은 무술 감독 출신인 당계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건 성룡 영화의 진짜 알맹이가 무엇인지를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성룡 영화는 점점 규모가 점점 커졌지만, 그가 출연한 모든 영화는 성룡의 일인극에 다름없었다. 이는 성룡이 기대고 있는 스펙터클의 뿌리가 코미디언의 마임과 같은 신체 액션에 있기 때문이었다. 성룡은 그의 주변에 있는 것이 사물이든 사람이든, 그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거대한 사건이든 소소한 장난이든, 그것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지휘하면서 그 안에서 재미를 끌어내는 일인극의 대가였다.

하지만 ‘뉴 폴리스 스토리’에 이르러 이 일인극의 쾌감은 덧없이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이 같은 변화는 진목승 감독과 성룡 자신이 의도한 것이기도 했다. 성룡의 영화에는 결코 등장하지 않으리라 스스로 장담하던 피로 얼룩진 잔인한 총격 신이 빈번히 나오는 것에서 수십년 간 자신을 둘러싸고 있었던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성룡의 심중을 읽을 수 있다.

언제나 누군가의 파트너로서만 주연이 될 수 있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벗어나 변신을 꾀하려는 성룡의 노력은 기꺼이 응원해 줄 만한 것이다. 그러나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떤 캐릭터 뒤에도 결코 숨을 수 없는 성룡이라는 배우 자체의 지울 수 없는 존재감이다. 이는 천의 얼굴을 지닌 로버트 드 니로도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이며, 애석하게도 ‘뉴 폴리스 스토리’가 간과한 지점이다.

동료를 모두 잃은 후 폭발의 잔해를 뒤집어쓴 채 망연자실한 얼굴로 앉아 있는 성룡의 표정에서 느낄 수 있듯이 ‘뉴 폴리스 스토리’는 허탈함을 안겨줄 뿐인 ‘짝퉁 성룡 영화’다. 성룡이 지닌 가공할만한 낙천성, 몸과 물건이 하나되는 기예를 배제한 채 ‘무간도’를 연상케하는 비극적 누아르의 정조를 무리하게 끌어 들이고 만 ‘뉴 폴리스 스토리’는 자기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장병원 영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5-01-26 16:31


장병원 영화평론가 jangping@film2.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