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를 지키려면 TV를 꺼라/고재학 지음/예담 발행·9,000원

[출판] 거실을 가족사랑의 터로 바꾸자
내 아이를 지키려면 TV를 꺼라/고재학 지음/예담 발행·9,000원

휴일만 되면 가족간에 TV 쟁탈전이 벌어진다. 회사일로 피곤에 절은 아빠는 모처럼 좋아하는 스포츠 중계를 보며 한 주의 스트레스를 풀 작정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두 자녀는 좋아하는 가수가 출연하는 쇼 프로그램을 보고 학교에서 친구들과 수다 떨 생각에 빠져 있다. 엄마는 며칠 전에 놓친 드라마 내용이 너무나 궁금해서, 오늘 하는 재방송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거실 상석에 고이 모셔진 TV 한 대를 놓고 치열한 삼파전이 벌어진다.

가장의 권위를 내세운 아빠가 '들어가서 공부나 하라'고 아이들을 방으로 쫓아 버리면 자녀들은 입을 삐죽대며 방문을 쾅 닫아 버린다. 허나 아빠가 TV를 차지하려면 아직도 아내라는 산을 하나 더 넘어야 한다. TV 놓고 싸우는 게 애나 어른이나 똑같다며 한숨 쉬는 엄마는 TV를 한 대 더 사자는 해결책을 내놓기도 한다. 아예 방마다 한 대씩 TV를 들여 놓는 민주주의(?)를 실행하는 집도 있다.

그러나 그쯤 되면 상황은 돌이킬 수 없다. TV 앞에 뿔뿔이 흩어져 혼자 즐기는 가족들은 제각각 흡족하다. 덕분에 가족간의 대화는 점점 사라지고 화려하고 감각적인 자극으로 욕망을 채워 주는 TV가 가장 좋은 친구가 된다.

집의 중심은 거실이고 거실의 중심에는 TV가 있는 풍경이 당연시 된 요즘, “그만 TV를 끄라”고, 아예 “TV를 버리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내 아이를 지키려면 TV를 꺼라’를 낸 고재학 한국일보 경제과학부 기자도 그 중 한 사람. 이 책을 통해 ‘TV 안 보기 운동’을 설파하는 저자는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과소비 하고 있는 TV를 끄는 순간 행복의 불이 환하게 켜진다고 말한다.

집에서 TV를 없앤 오세훈씨 집안의 거실 풍경은 남다르다. TV가 없어 넓어진 거실 중앙에 대형 책상과 사무용 의자 다섯 개가 놓였다. 저녁이면 자연스럽게 온 가족이 책상에 둘러 앉아 각자의 일이나 독서, 놀이를 한다. TV가 없어져서 뭐가 좋아졌냐는 질문에 세 자녀는 이구동성으로 시간이 많아졌고 공부가 잘 되고 책도 많이 읽는다고 답한다.

많은 사람들은 TV가 아이의 교육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디즈니 만화영화나 ‘텔레토비’ 같은 프로그램을 포함해 일방적 자극만을 주는 모든 TV 프로그램은 본질적으로 나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TV 시청 같은 간접 경험보다는 책 읽기, 일기 쓰기, 부모나 친구와 대화하기, 다양한 놀이와 운동 같은 직접 경험이 아이의 언어와 행동 발달에 훨씬 좋기 때문이다.

“TV나 비디오를 많이 시청한 어린이는 세상을 남의 입장보다 자신의 관점으로 보기 때문에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친사회적 도덕성의 발달도 지연됩니다.” 소아정신과 전문의들의 말이다. 실제로 일본의 영ㆍ유아 1,000명을 조사한 결과 하루 10시간 이상 TV를 켜 놓는 가정에서는 부모가 눈을 맞추려고 해도 눈길을 돌리는 어린이의 비율이 96.6%에 달했다고 한다. 원만한 대인 관계와 도덕성을 갖춘 아이로 키우려면 아이를 TV에서 떼어 놓으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 이를 통해 TV가 초래하는 지능 발달 방해, 비디오 증후군, 정서 불안, 소아 비만, 창의력 저하 등 갖가지 폐해들도 방지할 수 있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TV 안보기는 중요하다. 한국인의 평일 TV 시청 시간은 평균 2시간 22분, 휴일은 3시간 44분이다. 일년으로 따지면 50일 이상을 TV보는 데 소비하는 것이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푸념하고 ‘아침형 인간’으로 거듭 나겠다며 팔을 걷어 부치는 것보다 더욱 간단한 시테크 방법이 있다. 바로 TV를 끄는 것이다. 최소한 뉴스는 봐야 하지 않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신문, 책, 인터넷 등 TV가 아니어도 우리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

문제는 강력하게 몸에 밴 TV 시청 습관을 버리기가 너무 힘들다는 데 있다. TV를 가리켜 ‘보는 마약’이라 명명한 저자의 말이 결코 틀리지 않다. 때문에 TV 안보기 운동에 동참하기 위해선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저자는 가족 구성원간 공감대 형성하기, 명시적인 선언문 만들기, TV를 안방으로 옮기기, TV 코드나 리모콘 없애기, 거실을 도서관이나 놀이 공간으로 꾸미기 등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제시해 놓았다.

우리 삶에서 TV를 제외시킨다면 얼마나 풍요로운 생활의 여유와 즐거움이 넘칠지 상상해 보자. 그 변화란 생각보다 훨씬 막대한 것이다. 실제로 ‘TV 안보기 운동’을 실천하고 있는 많은 가정들이 이를 증명한다. 이제 그만 TV 화면에서 눈을 돌리고 내 가족을, 내 주변 사람들을 바라볼 때가 됐다.

이기연 출판전문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5-01-26 17:12


이기연 출판전문 자유기고가 popper@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