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과 친화를 기원하는 피리사회적 갈등과 역사가 남긴 치유의지 딤긴 작품

[문화 비평] 오태석 <만파식적>
상생과 친화를 기원하는 피리
사회적 갈등과 역사가 남긴 치유의지 딤긴 작품


오태석의 신작 ‘만파식적’이 리모델링 후 재개관 한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중이다. 이 연극은 지금까지의 다른 어떤 극에서보다도 작가 오태석의 자전적 요소가 강하다. 아울러 이 극에는 역사가 남긴 골을 치유하고 사회적 갈등의 해소를 기원하는 작가의 일관된 문제 의식이 변함없이 담겨있다. 꿈이 개인의 잠재적인 소망을 이루어주는 무의식의 장소라면 작가에게 연극은 그의 소망을 이루기 위한 상상의 장소인 것이다.

지난 해 1월 팔순의 노모를 여읜 작가는 충남 서천의 선산에 노모를 안장하면서 그 곁에 6.25때 납북된 부친의 빈 관을 함께 묻었다고 한다. 남북 분단의 역사 때문에 50여년을 따로 보낸 두 분의 아쉬운 세월을 사후에나마 함께 해 드리고자 하는 소망에서라고 한다. 이런 개인사적 바탕 위에 작가의 사회적 역사적 인식이 극에 개입한다. 사후에라도 부모의 만남을 이루게 하려는 소망은 곧 남북한의 만남과 갈등의 해소를 소망하는 것이 된다. 요컨대 극이 지향하는 주제는 ‘만파식적’으로 상징되는 평화와 안식에의 염원이다. 극의 처음과 마지막에 등장하는 대나무는 이런 염원을 무대에 형상화한다.

‘만파식적(萬波息笛)’이란 삼국유사에 나오는 전설적인 피리를 말한다. 이 피리를 불면 역병이 멈추거나 가뭄에 비가 내리고, 바람이 그치거나 파도가 잠잠해지는 등 온갖 소원이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작가의 개인적인 소망과 역사 인식이 극의 놀이성과 더불어 얼마나 관객과 소통이 가능한가가 결국 공연 성공여부의 관건이 될 것이다. 일관성, 합리성, 진실다움으로 요약되는 ‘시학’의 미학은 최선의 극적 효과를 창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극 전개에 있어서 논리보다는 자유로운 상상력과 최대한의 연극적 놀이를 중시하는 오태석의 미학은 ‘시학’의 미학과 충돌하면서 다양한 평가를 낳는다.

현실과 상상의 겹침
‘만파식적’에는 단순히 현실과 상상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여러 겹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관객은 극 전체를 연극이, 또는 작가가 상상한 꿈이라고 보면 이해가 쉽다. 꿈은 논리나 여하한 제약으로부터도 자유로우므로. 극의 큰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주인공 종수는 모친의 장례 후 그 무덤 옆에 6.25때 납북된 부친을 후에라도 모시기 위해 빈 관을 함께 묻는다. 그는 납북된 부친을 찾아 북으로 길을 떠난다. 어렵사리 만난 부친을 남한으로 모시려면 북측의 형제들에게 ‘왜 남한이 여기보다 더 나은 곳인가’를 설득해야만 한다. 그래서 종수는 지하철에서 ‘우산 돌려주기’라는 양심 캠페인을 펼친다. 다른 어떤 증거보다도 남한은 양심이 살아있는 곳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은 쉽지 않다. 그의 열망이 얼마나 강했던지 그는 사람들이 줄지어 우산을 돌려주는 환상을 보기도 한다. 결국 노숙자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증거를 만든다. 말하자면 이것도 일종의 ‘연극’인 셈이다. 극 속에서도 주인공의 소원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은 우산을 양심적으로 돌려주기를 자청한 노숙자들의 자발적 연기이기 때문이다. 증거를 확보한 종수는 월북하다 DMZ에서 총격에 쓰러지고, 이어서 부친이 석관에 눕는 장면으로 무대는 막을 내린다.

작가의 소망대로 연극에서는 부친의 유골을 모친과 합장한 것이다. 무대를 채우는 푸른 대나무는 피리 ‘만파식적’을 환기시키면서 희망과 동일시된다. 종수의 북한 방문과 유골을 합장한 에피소드까지를 종수의 꿈으로 묶는다면 줄거리가 한층 일목요연해 진다. 저승사자의 등장을 꿈으로의 도입이자 꿈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이해하면 말이다. 꿈속 이야기라면 일관성이나 전개되는 사건간의 타당한 연결 고리가 없어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극에는 하나의 이야기가 더 겹쳐진다. 바로 문무왕의 ‘만파식적’을 찾아 나선 신문왕의 이야기이다. 설화 부분은 극을 다양한 이미지로 채우는 환상의 공간이지만 아쉽게도 인물과 행위, 형상들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여 그 전달이 명확하지 않다. 신문왕은 종수를 도와 부친을 찾게 해 주거나 동북공정을 꾀하는 중국 군인들과 전쟁을 벌인다. 즉 설화적 부분들은 우리의 소원 성취를 도와주는 기복적 기능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북청사자놀이에 나오는 사자, 그 사자가 낳는 용, 꼭두각시놀이에서 홍동지의 형상을 한 붉은 인형, 소쿠리 갓을 쓴 저승사자들, 갖가지 가면들과 종이 인형들이 무대를 이미지로 가득 채운다. 작가는 이런 형상들을 통해 관객이 극의 내용을 자유롭게 상상하고 해석하기를 원한다. 마치 우리가 꿈에 등장하는 많은 형상들의 자세한 의미를 다 파악하지 못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마치 퍼즐이 맞추어지듯이 그 의미가 확연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상흔의 치유를 위하여
극의 초반과 후반부를 비교해 보면 초반에는 극의 전개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없고 후반부인 지하철에서의 ‘우산 돌려 주기’ 장면은 메시지가 명확한 반면 유사한 장면이 반복되어 다소 지루한 감이 있다. 주제의 전달보다는 극의 놀이성에 치중한 결과라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장면이 길어진 이유는 분단이 야기한 상흔의 치유를 위해 우리 주변에서 각자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시작하자는 작가의 소망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라고 이해된다. 언어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작가는 북한이 배경이 되는 이번 공연에서는 진한 함경도 사투리를 들려준다. 작가와 단원들이 손수 제작한 무대장치와 각종 소품들, 그리고 독특한 의상이 배우를 위한 환경을 만드는데 일조한다.

공연 기간 중에도 관객을 만나며 계속 작품을 수정해 나가는 오태석의 극이 처음과는 어떻게 다른 모습을 하고 마무리를 짓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관객 여러분의 반응이 극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이 흥미롭지 않은가! 많이 관람하시고 극의 성장 과정에 일조하시기 바란다. 필자도 공연 마지막 즈음 다시 관람하면서 이 글이 어떻게 수정되어야 할지 다시 읽어 볼 것이다.

2월 20일부터는 1984년 창단된 극단 목화의 20주년 기념축제를 마무리하는 ‘천년의 수인’이 아룽구지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올 하반기에는 신작 ‘용호상박’이 예고되고 있다. 잡지 발간일로부터 공연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원고를 보내게 되어 독자께 송구하다. 극단 목화 여러분께도 이어지는 공연들 잘 하시기를 당부 드린다.

* 때 2005년 1월 21일~2월 12일 |* 곳 예술극장 대극장 | * 작 · 연출 오태석 | * 극단 극단 목화 | * 출연 정진각, 이명호, 황정민, 조은아, 강현식, 이병선, 이수미 외 | * 공연문의 극단 목화 02-745-3966

송민숙 연극평론가


입력시간 : 2005-02-01 11:03


송민숙 연극평론가 ryu1501@korne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