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치혁의 건강백세] 보약, 처방과 효과


“기운이 많이 떨어지셨네요. 보약을 드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몸이 허하시네요. 약을 드셔야겠습니다.”

한의원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말이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한약하면 보약 만을 생각한다. 한의학의 치료법은 다양하지만 몸이 허약한 사람들을 치료하는 보약이 한의학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과거 못 살던 시절, 못 먹고 힘들었던 시절, 보약을 많이 처방했기 때문이다.

한의학에서 병을 나누는 큰 기준 중의 하나는 허와 실이다. 허와 실을 분별해야 치료의 방향이 설정된다. 담음이나 어혈, 과식 혹은 감기 등 나쁜 기운이 문제를 일으키는 실증에 보약을 쓰면 오히려 악화될 수 있다. 반대로 본래 체질이 허약하거나 병이 오래 되어 생긴 허증에 공격적인 치료법을 사용하면 몸은 더 나빠진다. 병의 원인에 알맞은 치료를 해야 된다는 얘기다.

오늘은 보약에 대해서 살펴보자. 보약에 대한 일반인들의 상식에는 큰 문제가 있다. 보약이면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를 위한 보약을 아빠가 먹고, 손주를 위한 보약을 할아버지가 먹는 것이다. 보약이라면 얼굴을 안 보고도 그냥 처방 받아 먹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보약은 증상에 따라 틀림없이 구분해 사용해야 한다. 기운이 부족할 때에 쓰는 약이 따로 있고, 혈이 부족한 경우 맞춰 써야 하는 약재도 있기 때문이다. 기허가 진행되어 나타난 양허증과 혈허와 비슷한 음허증도 구별해서 치료해야 몸에 이롭다.

먼저 기허와 양허는 증상이 비슷하다. 얼굴색이 창백한 환자를 보면 한의사들은 기허나 양허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말소리에 기운이 없고 묻는 말에 대답하는 하는 것조차 귀찮아 한다면 “소화가 잘 되지 않으시죠”라고 물어도 된다. 기허나 양허 환자는 소화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눈초리가 힘없이 처져 있고, 혀의 색도 허옇다면 약을 쓸 방향은 결정된다. 기허의 약을 쓸 것인지 양허의 약을 사용할 것인지만 구분하면 된다.

“손발이 차고 시려요”라는 환자는 기허라기 보단 양허에 가깝다. 기허 증상이 오래 진행되서 양기까지 손상된 상태다. 이런 환자들의 얼굴색은 창백하면서도 약간 어둡거나 푸른색을 띠기도 한다. 맑은 소변을 자주 보고 밤에 잠자다 일어나 화장실에 자주 간다면 양허로 확진할 수 있다. “대변이 묽은 편이시지요”라고 물으면 당연히 고개를 끄덕인다. 증세가 심하면 소화가 덜 된 음식물들이 그대로 대변으로 나와, 식사를 뭘 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기허와 양허는 증상이 비슷해 보이지만 쓰는 약재는 달라진다. 기운을 돋구는 보약에 쓰이는 대표 선수는 황기 인삼, 감초다. 양허를 다스리는 대표 약재 중 첫 번째는 역시 녹용이다. 이외에 부자나 계피도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보약에 속한다.

기운이 없는 증상이 기허나 양허라면 체액이 부족해서 나타나는 증상도 있다. 한방에선 이런 증상을 혈허나 음허로 구분한다. 몸이 마르고 어지럽다고 말하는 환자를 만난다면 혈허나 음허일 가능성이 높다. 잠도 잘 안 오고,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이런 환자들은 혀의 색이 유난히 붉고 혀에 끼는 백태도 거의 없다.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 환자 중 혈색이 유난히 창백하고 손톱 색도 허옇고 손발의 감각도 이상하다고 말하면 혈허증이라고 판단한다. 당귀 작약 천궁 숙지황 네 가지의 약을 사물탕이라고 하는데 사물탕을 기본으로 증상의 정도에 따라 다른 약재를 가감하면 혈허 증상을 치료할 수 있다.

음허증은 혈허증에 열의 증상이 포함된다. 혈허 증상이 있는데 유난히 얼굴색이 붉다면 음허증이라고 보아도 된다는 얘기다. 손이나 발바닥이 화끈거리는 증상도 물론 음허증에 포함된다. 한방에선 음액이 부족하게 되면 몸에 잘 갈무리 되어 있어야 할 체열이 마음대로 튀어나가 망나니처럼 돌아다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입이 마르고 목구멍이 건조하게 느껴지거나 잠잘 때에 땀을 흘리는 증상도 음허증이다. 성인 남자들이 정액과 같이 뿌연 것을 속옷에 묻히는 증상을 유정이라고 하는데 이 또한 음허 증상의 하나다. 음허 증상에는 숙지황 산약 산수유 복령 택사 목단피 등의 여섯 약재를 조화시킨 육미지황환이 대표적인 처방이다. 1960대 이전에는 못 먹고 못 살아, 사람들이 대부분 말랐기 때문에 육미지황환이 가장 많이 쓰이던 보약이었다.

몸이 허한 증상을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보았지만 사람들의 증상은 이들 중 하나로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인들도 잘 알고 있는 십전대보탕의 경우 기허의 대표적인 처방인 사군자탕과 혈허를 치료하는 사물탕에 황기와 육계를 합친 처방이다. 혈허와 銖?증상을 모두 보이는 환자에게 쓰는 처방인데 마르고 몸이 찬 노인들에겐 아주 무난하게 쓸 수 있는 처방이다. 감기약으로 많이 알려진 쌍화탕도 훌륭한 보약이다. 약국에서 감기에 걸렸을 때에 제약 회사에서 만든 쌍화탕을 하나씩 주는 게 관례화되다 보니, 감기약이라고 인식되고 있지만 육체적인 과로를 하는 사람들에겐 더 할 나위없이 좋은 보약이다.

쌍화탕엔 또 하나의 적응증이 있다. 과도한 성생활로 인한 피로를 한방에선 방로상이라고 부르는데 이 때에 가장 일반적인 처방이 바로 쌍화탕이다. 또 많이 쓰이는 보약은 보중익기탕이다. 기운이 부족하면서 소화가 안 되는 증상에 널리 쓰인다. 기운이 없어서 장기가 아래로 처진 증상 즉 위하수증, 치질, 자궁하수 등에도 동반 증상을 고려해 적절히 사용할 수 있다. 얼마나 중요한 처방인지, 어떤 의서엔 한약 처방 중 왕과 같다고 해서 의왕탕(醫王湯)이라는 별명도 붙여 놓고 있다.

황&리한의원 원장


입력시간 : 2005-02-01 11:25


황&리한의원 원장 sunspap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