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이 되고 술이 되는 '한국의 소나무'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잣나무
약이 되고 술이 되는 '한국의 소나무'

상록수가 돋보이는 계절이다. 하지만 늘 푸르다고 말하는 이 나무들도 잎 한 장 한 장을 두고 보면 몇 년이 지나면 수명이 다 해 떨어질 수도 있다. 그 푸르름도 계절이 다르고, 나무마다 때깔이 다르니 이즈음 상록수들도 하나 하나 눈 여겨 봐 줄 때가 되었다. 한 겨울, 푸른 숲에서도 가장 짙푸른 나무 군락을 말하라면, 잣나무숲을 떠올릴만 하다. 색으로 치면 가문비나무 같은 것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숲으로 만나기는 어려우니 잣나무 이야기가 안성맞춤이 아닐까 싶다.

잣나무는 나무 자체보다 열매로 더 알려져 있다. 그래서 소나무 집안이지만 이름도 무슨 소나무가 아니라 잣나무가 되었다. 더욱 의미 있는 것은 잣나무를 영어로 쓰면 코리안 파인(Korean pine)이고 라틴어 학명도 파이너스 코라이엔시스(Pinus Koraiensis)이니, 외국 사람들에게 한국의 소나무는 적송이라고도 하는 그냥 소나무가 아니라 바로 잣나무인 셈이다. 그 사실을 알고 생각하니 남다르게 느껴지지 않는가.

잣나무는 높은 곳에서 잘 자란다.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볼 수는 있지만 한대성 나무이므로 남쪽 지방에서는 표고가 적어도 1,000m 이상 되어야 하고(보통 남쪽에 심으면 너무 온화한 기후에 살기 편한 나머지 잣나무가 잣은 열지 않고 굵게 자라기만 한다), 중부 이북에서는 300m 이상의 지역이어야 하며 북부 지방에는 더 많은 잣나무를 구경할 수 있다. 가평을 비롯하여 중부 이북에 가면 잣나무 숲이 많지만, 자연의 숲에서 자생하는 잣나무 구경을 하려면 가장 쉬운 방법이 설악산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을 올라 가는 것이다. 아래로 보이는 숲에서 녹색이 진한 늠름한 나무들이 바로 잣나무 군락이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소나무와 쉽게 구별하는 방법이 있다. 소나무는 바늘 같은 잎이 2장씩 모여 달리는 반면, 잣나무는 5장씩 모여 있는 것이다. 물론 열매를 보면 잣은 잣송이 안에 날개 없이 딱딱한 잣 알이 들어 있어 쉽게 구별된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잣송이를 얻으려면 5월에 피는 꽃이 바람의 힘으로 수분을 한 뒤, 그 해 가을게 손가락 한마디쯤 자라던 열매가 다시 1년을 또 넘겨야 한다. 더욱이 잣송이는 생장이 가장 활발한 높은 가지 끝에 달리니 여간해서 나무에 달린 잣송이 구경하기는 쉽지 않다.

잣나무에는 이 이름 이외에도 그 특징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이 붙어 있다. 잣나무의 목재는 옅은 홍색을 띄므로 홍송(紅松), 열매인 잣이 이 나무에서 아주 중요하므로 과송(果松), 잎이 흰 서리를 맞은 듯 하여 상강송(霜降松), 혹은 기름이 많다 해서 유송(油松)이라고도 한다. 한편 중국에서는 해송자(海松子)라고 했는데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나라가 바다 건너의 외국인 까닭에 그리 불렀다고 한다.

중국에서 한 때 부른 이름 가운데는 신라송이란 것도 있었다. 우리나라 사신들이 중국에 갈 때 인삼과 함께 잣을 많이 가져가서 팔았기 때문에 얻은 별명이다. 당시 중국에서는 잣을 옥각향(玉角香), 용아자(龍牙子)라고 불렀으며 매우 귀히 여겨 선물을 하곤 하였는데 특히 신라인들이 가져간 잣이 제일이어서 특별히 우리 잣나무를 신라송, 잣은 신라송자라고 불러 구분했다고 한다. 그래서 잣은 우리나라에서 추출된 최초의 임산물이라고도 한다.

잣나무는 이 땅에 자라는 나무 존재 그 자체로, 그 씨앗은 귀한 약이 되거나 음식의 갖가지 재료나 고명이 된다. 또 덜 익은 솔방울이나 잎은 향기 그윽한 술이 된다. 목재는 연하고 무늬도 아름다우며 색도 좋아 한 몫 단단히 한다.

게다가 이름에 한국을 달고 우리를 대표하고 있으니, 돌아 오는 정월대보름에는 잣을 꿰어 볼놀이를 하면 이 또한 잣나무의 존재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길이리라.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입력시간 : 2005-02-01 15:09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