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반목하며 야수가 된 인간일본 땅에서 영원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재일동포의 처절한 삶
[시네마 타운] 재일동포 최양일 감독의 <피와 뼈> 시대와반목하며 야수가 된 인간 일본 땅에서 영원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재일동포의 처절한 삶
‘피와 뼈’에서 기타노 다케시가 연기하는 주인공 김준평은 폭력의 끝을 달리는 인물이다. 날 것으로 삭혀 구더기가 꿈틀거리는 생고기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는 그는 빌린 돈을 연체한 채무자를 찾아가 커피컵을 씹어 팔뚝에다 긋고는 "빌린 돈을 갚지 않으려거든 내 피를 빨아먹으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재일 한국인 감독 최양일이 ‘개달리다’(1998) 이후 오랜만에 국내 관객에게 선보이는 신작 영화는 보고 나면 피가 거꾸로 역류하고 뼈가 욱신거리는 착각이 들만큼 ‘쎈’ 영화다. 재일 한국인 작가 양석일의 동명 소설에 기초한 이 영화는 남의 땅 일본에서 이방인으로 생존하기 위해 야수처럼 살았던 사내 김준평의 인생 역정을 다룬다. 영화의 주인공 김준평은 양석일의 아버지를 모델로 삼은 인물로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완전한 허구는 아니다. 1923년 제주도를 떠나 오사카 행 선박에 몸을 실은 청년 김준평(기타노 다케시)은 오사카에 도착해 공장에 취직한다. 한국인 여자 이영희(스즈키 쿄가)를 만나 강제로 혼인을 한 김준평은 어묵 공장을 차린 후 특유의 우악스런 폭력을 앞세워 사업을 성공시키고 재물을 모은다. 공장 인부들을 착취하고 고리 대금으로 부를 축적한 그는 죽을 때까지 가족을 돌보지 않고 욕망이 이끄는 대로만,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산다.
영혼에 생선가시가 박혀 가공할 강제 노동에 시달리는 어묵 공장 인부들에게 눈을 부라리며 "일을 하라"고 다그치는 그의 모습은 흡사 노예를 부리는 전제 군주를 연상시킬 정도로 모골이 송연하다. 강함과 함께 약함도 가지고 있다. 부인을 강간하고 초죽음이 되도록 아들을 두들겨 패는 무자비한 남편이자 아버지지만 자신의 딸이 목을 매 자살하자 장례식장에 찾아와 "내 딸은 어디 있느냐?"며 난동을 부리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최양일은 왜 이처럼 모순 투성이의 인물에 관심을 가지게 됐을까? '속단하지 말고 그저 이 사내를 지켜보라'고 주문하는 것 같은 영화의 태도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넘긴 듯한 김준평에 대해 어떤 섣부른 짐작도 허용하지 않는다. 청운의 꿈을 안고 오사카행 배에 몸을 실었던 조선 청년이 어떻게 광포한 야수로 변하게 됐는가에 대한 설명은 일언반구도 없다. 하지만 식민지 조국의 무지렁이 청년이 당시로서는 근대화된 신세계였던 일본 땅에 발을 디딘 후 느꼈을 충격과 결심은 굳이 보여 주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김준평이 망가진 사연에 대한 설명을 유보한 채, 피폐해진 한 인간의 모습을 냉정하리만치 차갑게 묘사함으로써 이 영화는 오히려 깊은 여운을 남긴다. 말하자면 ‘피와 뼈’는 심리 연구가 아니라 행태 연구에 가까운 셈이다. 영화는 저패니즈 드림을 이루기 위해 영혼을 망가뜨리면서까지 영달의 길을 가려 했던 남자의 후일담으로 기울지 않으며, 김준평의 포악한 인간성의 연원을 추적하려는 섣부른 인과율에도 빠지지도 않는다. 이 같은 묘사의 방식은 최양일의 영화에서 종종 등장하는 인간에 대한 시각과 통해 있다. 최양일 영화의 주제는 늘 평범한 듯 보이지만 일상적이지 않은 인간의 모습이었다.
그는 “인간이야말로 가장 심오한 수수께끼이며 대단한 구경거리”라고 말한다. 김준평이라는 극악한 인물의 행동을 끈질기게 관찰하면서 영화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간 욕망의 원형질을 그려 보인다. 그래서 최양일이 묘사한 김준평의 일대기는 재일 한국인으로서의 불안한 정체성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의 초상으로 귀결된다.
인간에 대한 성찰과 연민 김준평을 연기할 배우는 영화의 성패를 가늠할 핵심 요소였다. 최양일은 “기타노 다케시가 주인공 역을 수락하지 않았다면 이 영화를 만들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다케시의 막중한 역할을 강조하기도 했다. 최양일의 확신에 찬 말마따나 코미디언이자 영화 감독, 배우로서 전방위적인 재능을 뽐내고 있는 기타노는 과연 명불허전의 명연기를 보여 준다. 다층적이고 모순적인 김준평 그 자체인 기타노의 연기는 크게 가장하지 않으면서도 강력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영화의 말미, 지팡이도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는 초로의 노인이 되어서도 고리 대금업을 계속하는 김준평은 어느 날 과거 자신이 부렸던 어묵 공장 노동자 출신의 야쿠자 두목을 찾아간다. 두목의 졸개들이 "저 늙은이는 누굽니까?"라고 묻자 그는 "괴물"이라고 말한다. '괴물'은 시대가 요구하지 않는 타자다. 김준평의 가차없는 폭력성과 기행은 시대와 반목할 수 밖에 없었던 존재론적 고독의 결과물이다. 그것은 패륜적 짐승에게서 나는 악취라기 보다는 비릿한 인간 냄새에 가깝다. 죽음마저 건조하게 묘사하는 이 영화의 하드보일드 스타일이 마침내 인간에 대한 은근한 연민을 드러내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입력시간 : 2005-03-09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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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원 영화평론가 jangoing@film2.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