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줍은 듯…감춰진 고운 자태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할미꽃
수줍은 듯…감춰진 고운 자태

“뒷동산에 할미꽃/ 꼬부라진 할미꽃/ 늙어서도 할미꽃/ 젊어서도 할미꽃” 아직 우리 뒷동산엔 할미꽃이 살고 있을까?

이 정다운 이름의 주인공은 우리가 도시 생활에 빠져 바쁘게 사는 동안, 사라진 우리의 관심만큼 멀리 떠나 이제 좀처럼 보기 어려운 꽃이 되었다. 그래서 햇살이 따사로운 봄날이면, 문득 우리 곁에 나타날 할미꽃이 그립고 반갑고 반갑다.

할미꽃은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우리나라 거의 전역에서 볕이 잘 드는 야산의 자락 특히 묘지 근처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한 뼘쯤 자라고, 꽃이 피어도 고개를 숙이니 키는 작지만, 한 포기에서 몇 해를 피고 지고 하다 보니 아주 굵고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사실 할미꽃을 가까이 보면 참 예쁘다. 할미꽃이라는 이름에 가려, 또 고개를 숙여 제 아름다움을 감추고 있으므로 스쳐 지나가니 깨닫지 못 할 뿐이다. 갓난 아이 주먹만한 고개 숙인 꽃송이를 들여다보면, 꽃잎은 그 정렬을 주체하지 못할 만큼 붉다 못해 검고, 그 안에 심처럼 박힌 샛노란 수술들은 신선하고 아름답다.

줄기며 잎이며, 보송하게 돋아난 그 많은 솜털들도 사랑스럽다. 할미꽃을 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꽃에 마음이 팔려 잎을 보지 못하지만 잎 역시 개성이 만점이다. 잎자루는 길고 다섯장의 작은 잎으로 갈라진 잎은 아주 깊게 갈라져 있는 것이 특색이다.

처음 꽃이 필 때는 키가 한 뼘도 되지 않을 만큼 작지만 시간이 흐르며 점차 커져 30~40cm정도까지도 자란다. 한 쪽에서는 꽃이 다 지지도 않았는데 다른 한 쪽에서는 이미 열매가 익어가기 시작한다. 길이 5mm정도의 수과에 붙은 긴 깃털 같은 것은 바로 암술대인데, 바로 할미꽃을 할머니의 머리처럼 보이게 하는 부분이다. 물론 씨앗을 가볍게 하여 바람을 타고 멀리 전파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할미꽃이란 이름은 흔히 앞의 노래 가사처럼 줄기가 굽어 붙는 이름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할미꽃이 피고 지고 열매가 익으면 그 열매에 흰털이 가득 달려 그것이 마치 하얗게 센 할머니의 머리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한자 이름도 백두옹(白頭翁)이다. 사실 백두옹이란 이름은 만주 지방에 흔히 분포하는 할미꽃 종류의 한자 이름인데 이를 할미꽃류에 통칭하다 보니 그리 부르는 것이며, 그래서 우리나라의 할미꽃은 이와 구분하여 조선백두옹(朝鮮白頭翁)이라 한다. 이 밖에 할미씨까비, 주리꽃, 고냉이쿨, 하라비고장(제주) 등 수없이 많은 향명 등이 있는데 그만큼 이 꽃이 우리에게 친숙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 할미꽃이 요즈음은 향수를 자극하는 야생화 소재로 인기가 높다. 화단에 심는데 보통의 작은 화단이나 돌이 있는 화단에 심어 두면 작은 포기를 만들어 탐스럽게 피어나므로 두고 두고 보기 좋다. 물론 한방에서도 이용된다. 백두옹이란 한자 이름도 생약명에 해당된다. 주로 뿌리를 이용하지만 잎이나 꽃을 쓰기도 한다. 감심 작용 등의 효능을 가진 중요한 약재이나 독성이 있으므로 반드시 전문가가 처방해야 한다.

할미꽃의 꽃말이 ‘당신은 주기만 하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라고 한다. 물론 꽃말이야 서양에서 유래된 것이지만 우리들 할머니의 사랑도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주는 사랑만으로도 충만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싶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연구관


입력시간 : 2005-03-17 15:17


이유미 국립수목원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