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꽃바람 불면 남도의 유혹에 발 동동지리산과 남녘의 봄을 알리는 산동면 꽃터널

[주말이 즐겁다] 구례 산수유 마을
봄바람 꽃바람 불면 남도의 유혹에 발 동동
지리산과 남녘의 봄을 알리는 산동면 꽃터널


산수유 꽃은 봄을 노래하는 대표적인 꽃이다. 봄이 오면 지리산 기슭은 샛노란 산수유꽃으로 뒤덮이는데, 특히 산수유가 많은 만복대(1,433m) 남서쪽의 산동골은 조물주가 노란 물감을 풀어서 그려낸 듯 열두 폭 수채화가 된다. 그렇게 샛노랗게 번지는 빛에 이끌려 꽃 터널을 거닐다 보면 어느새 자신이 봄의 한가운데 있음을 알게 된다. 산수유꽃 감상의 정점은 산동골 가장 상류에 있는 상위 마을이다.

이 지역은 지금 20여 가구 밖에 남지 않았지만, 6ㆍ25전쟁 전만 해도 100가구 가까이 되는 큰 마을이었다. 그런데 전쟁을 전후해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씩 떠나면서 골짜기에 빈집이 늘게 되었고, 남은 주민들은 그곳에 산수유 나무를 심었다. 지금은 산수유 열매가 큰 수입원이 되지만, 당시만 해도 척박한 땅에 잘 자라는 산수유 나무를 심는 것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상위마을을 포함한 이 산동골은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20세기 말엽부터 우리나라 최고의 산수유꽃 감상지로 거듭나게 되었다.

3월 말 산수유 꽃 절정
지리산 주변에서 언제부터 산수유나무가 자랐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산동 주민들 사이에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먼 옛날 산수유가 많이 나는 중국 산둥성(山東省)에서 한 처녀가 이 곳으로 시집오면서 갖고 온 산수유나무 한 그루가 시초라 한다. 주민들은 산동면(山洞面)이라는 마을 지명도 여기에서 유래했다고 덧붙인다. 이 전설을 증명이라도 하듯 산동면엔 우리나라 최초의 것으로 여겨지는 산수유 나무가 자라고 있다.

산동에서 남원으로 가는 도중의 산동면 계천리 견두산(775m) 동쪽 기슭에 있는 산수유 시목(始木)은 땅 위에서 아름드리 둥치가 다섯이나 갈라져 있는 거목이다. 주민들은 이 산수유 나무가 500여 년 전 중국 산둥성에서 가져와 심은 것으로서, 현재 지리산 주변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산수유 나무가 바로 여기서 퍼져나간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한편, 산동골 산수유 꽃은 매년 3월 초순부터 피기 시작하는데, 올해엔 꽃샘 추위가 심했던 탓에 예년보다 다소 늦은 15일 이후에야 피기 시작했다. 3월 25일을 전후해 만개하면 4월 초순까지는 서운치 않게 감상할 수 있다는 게 주민들의 귀띔이다. 축제는 3월 19~27일까지 아흐레 동안 위안리의 지리산 온천 관광지 일원에서 열린다. 첫날 풍년기원제를 시작으로 산수유 꽃길 걷기, 산수유 떡치기, 산수유술 시음, 산수유차 제조 시연 등 다양한 체험행사가 펼쳐진다. 산수유 꽃을 조용히 감상하고 싶다면 축제를 피해서 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지리산 기슭의 천년고찰 천은사

천은사 감로천으로 목을 축인 뒤…
산동면 동남쪽 산줄기의 성삼재 오르는 길목엔 지리산 기슭의 고즈넉한 절집 천은사(泉隱寺)가 있다. 창건 무렵 절 앞뜰에 감로천(甘露泉)이라는 샘물이 있었는데, 이슬처럼 맑은 이 샘물을 마시면 정신을 맑아진다 하여 한 때 공부하는 스님들이 천명도 넘게 몰려들기도 했다는 절집이다. 당시는 절의 이름도 감로사였다.

이 절집은 고려 때는 남방 제일 선찰이 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완전히 불에 타서 폐사가 되다시피 했다. 이후 1678년 중건하였는데, 당시 감로수를 지켜주던 구렁이를 스님이 죽인 후 샘물이 말라버렸다고 전한다. 그래서 절의 이름도 샘물이 숨어버렸다는 뜻의 천은사가 되었다.

그런데 절집을 중건한 후 이상하게도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자주 일어났다. 마을 사람들은 샘의 수기(水氣)를 지켜주는 뱀을 죽였기 때문이라고 두려워 했다. 이 때 조선의 4대 명필의 한 사람인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ㆍ1705~1777)가 이곳에 들렀다가 사연을 듣게 되었다. 이광사는 “불을 막기 위해서는 물이 항상 흘러야 한다”며 ‘지리산 천은사(智異山 泉隱寺)’라는 글씨를 물 흐르듯 消?일주문에 걸게 했고, 그 뒤로는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전한다. 이광사의 글씨는 그야말로 물 기운이 역력한데, 고요한 새벽녘 일주문에 귀를 대면 현판글씨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릴 정도라 한다.

무지개가 드리워진 듯 한 수홍루는 천은지로 흐르는 계류와 어우러져 제법 운치가 있다. 수홍루를 지나면 불당으로 오르게 되어 있는 가파른 계단 왼쪽으로 커다란 석조가 있으니 바로 감로수다. 천년 전의 그 감로수는 아니지만 당시에 사라진 감로수가 그러했듯이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의 갈증을 달래주고 있다. 천은사는 천년 고찰답지 않게 눈에 띄는 문화재는 적다. 그러나 지리산 절집 치고는 호젓한 편이라 가까운 산동마을의 산수유꽃 감상과 함게 봄날의 정취를 즐기기에 적당하다.

* 숙식 위안리 산수유마을 입구의 온천타운엔 지리산온천랜드(061-783-2900), 지리산프라자호텔(061-782-2171), 노고단관광온천장(061-783-0161) 등 숙박시설이 많다. 또 주변엔 섬진강 재첩국, 지리산흑돼지구이 등을 맛볼 수 있는 식당도 많다. 꽃구경을 하고 난 뒤, 게르마늄과 탄산나트륨이 다량 함유되어 신경통과 관절염 등에 좋다는 지리산 온천수에 몸을 담그는 것도 괜찮다. 상위마을엔 구형근민박(061-783-1330), 임병옥민박(061-783-1314) 등에서 민박을 할 수 있는 집이 여럿 있다.

* 교통 88고속도로→남원IC→19번 국도(구례 방향)→산동면(좌회전)→산수유마을. 남원IC에서 20~30분 소요. 천은사는 산수유마을에서 나와 다시 19번 국도를 타고 가다 성삼재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된다. 산수유마을에서 천은사까지는 승용차로 30분쯤 소요. 서울남부터미널에서구례 구간은 직통 버스가 하루 6회(09:10~18:30) 운행, 4시간 소요. 구례에서 위안마을까지는 하루 4회(08:40~18:10) 운행.

글ㆍ사진 민병준 여행 작가


입력시간 : 2005-03-22 18:37


글ㆍ사진 민병준 여행 작가 sanm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