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괴롭히는 궤양 "물렀거라"'약물+유전자+식이' 복합치료로 위장병 주범 헬리코박터 균 퇴치

[클리닉 탐방] 한림대 강동성심병원<위·십이지장 궤양>
'속'괴롭히는 궤양 "물렀거라"
'약물+유전자+식이' 복합치료로 위장병 주범 헬리코박터 균 퇴치


한림대 강동성심병원 소화기 내과팀이 위궤양 환자에게 위 내시경 시술을 하고 있다. / 임재범 기자

‘몇 가닥의 편모를 길게 늘어뜨리고 ‘풀어진 짚신’ 모양을 한 2~7㎛(마이크로미터ㆍ1㎛는 100만분의 1m) 크기의 세균. 무쇠도 뚫는다는 강력한 위산을 넉넉하게 견뎌내면서 위 점막에 붙어 사는 독종.’

위장병 얘기를 할 때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발병 원인균인 헬리코박터 파이로리를 묘사하는 문구다. 1983년 마샬이라는 호주 의사가 우연히 발견한 이 균은 현재 위ㆍ십이지장 궤양 발병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는 것은 물론, 10여년 전부터 위장병 치료의 방향을 완전히 뒤바꿔 놓은 주인공이다. 전세계 인구의 절반 정도가 이 균에 감염돼 있으며, 국내 감염률은 이보다 훨씬 높은 70% 안팎이다.

우리의 위(胃)는 강력한 위산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특수한 점액질로 둘러 쌓여 있다. 위궤양은 이 점액질이 어떤 원인에 의해 손상된 뒤 위산의 공격을 받아 내부 벽이 허물어진 상태가 된 것이다. 발생 위치가 십이지장이면 십이지장 궤양이다. 위ㆍ십이지장 궤양은 위암, 위염 등 위장병 중에서도 가장 흔한 질환이다. 10명 중 1명은 일생에서 한 번은 걸린다고 한다.

궤양 재발 악순환 고리 끊었다
“얼마 전까지도 ‘한 번 궤양은 영원한 궤양’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헬리코박터 파이로리 균 제거를 시작한 뒤부터 위ㆍ십이지장 궤양 재발률이 10% 이하로 뚝 떨어졌습니다.”

위ㆍ십이지장 궤양 치료의 권위자로 꼽히는 한림대 강동성심병원 소화기내과 김학양 교수(50)는 “예전에는 궤양에 걸렸다고 하면 죽을 쑤어 먹거나 위산을 중화시키는 제산제를 쓰는 게 고작이었다”며 “헬리코박터 파이로리 제균이 궤양 재발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 놓았다”고 그 동안의 변화를 설명한다. 김 교수는 헬리코박터 파이로리는 물론, 유전자ㆍ식습관 등에 대한 다양한 임상 경험을 토대로 한국인의 고질병인 위장병에 대한 최신 연구 결과를 속속 내놓아 국내외에서 주목 받고 있는 인물이다.

위ㆍ십이지장 궤양은 증상만 갖고는 제대로 진단할 수 없다. 가장 흔한 것이 ‘오목가슴이 쓰리다’거나 ‘속이 미식거린다’고 하는 등의 느낌이다. 하지만 증상이 전혀 없는 경우도 많다. 김 교수는 “만일 구토가 났다면 병이 상당 기간 진행된 것으로 봐야 한다”며 “복통이 지속될 경우 내시경 검사를 받는 게 좋다”고 덧붙인다.

김 교수가 추천하는 내시경 검사는 궤양 진단법 중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조영술 보다 정확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조직검사와 헬리코박터 검사까지 한꺼번에 할 수 있기 때문에 발병 여부는 물론 병변이 악성인지 양성인지 등까지 정교하게 가려낼 수 있다.

“헬리코박터 균은 아주 지독한 놈입니다. 보통 세균은 항생제를 쓰면 곧잘 죽지만, 헬리코박터 균은 항생제 2~3개를 함께 써도 잘 죽지 않습니다. 특히 국내에서 발견되는 것들은 궤양을 일으키는 독성인자가 한결같이 강한 ‘독종’들입니다. 최근 들어선 10여년 간 항생제 치료에 따라 내성이 생기면서 90~80%에 달했던 제균율이 70%선으로 떨어졌습니다.”

소화기내과 김학양 교수가 위 궤양 환자에게 증상과 치료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삼제·사제요법 등 복합처방 치료법
김 교수가 토로하듯, 헬리코박터 제균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여러 가지 약제를 복합 처방하는 ‘삼제요법’이란 치료법을 쓴다. 위산분비 억제제와 항생제 2가지 등 3가지 약을 함께 사용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데, 초기 치료일 경우 통상 일주일 정도 걸린다. 치료 한달 후 제균 여부 확인을 위해 ‘요소호기 검사(호흡가스 분석 검사)’를 하며, 만일 제균이 실패했을 경우 항생제 한 가지를 더 추가하는 ‘사제요법’으로 넘어간다.

발병 원인이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나 아스피린 등 약물 복용 탓일 경우에는 유발 물질이 적게 들어있는 다른 약으로 바꾸도록 하거나 복용량을 줄이는 수 밖에 없다. 약물 복용에 따른 발병은 전체 위ㆍ십이지장 궤양 환자의 20% 정도 되는데, 관련 약제들이 관절염이나 당뇨병 등 노인성 질환 치료제가 대부분인 까닭에 노년층이 상대적으로 많다. 김 교수는 “갑자기 피를 토하거나 혈변을 본 뒤 병원으로 급송돼 오는 노인들이 적지 않다”며 “이러한 유형은 뚜렷한 증상이 없는 반면 병세는 중증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경고한다.

위ㆍ십이지장 궤양을 뿌리 뽑는 일은 아직까지도 요원하다. 치료의 관건인 헬리코박터 균의 정확한 정체조차 규명해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균이 어떤 경로로 감염되는지, 똑 같은 감염자라도 왜 어떤 사람은 발병하고 어떤 사람은 발병하지 않는 것인지 등 풀어야 할 비밀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한국인의 경우에는 궤양의 발병 원인이 더욱 복합적이라는 게 김 교수의 판단이다. 지난 수년 간 유전자 및 식습관과 위장병간의 상관관계를 규명하는 연구에 매진해 온 김 교수는 “서양인의 경우에는 ‘위암이나 궤양에 잘 걸리는 유전적인 조건이 있다’는 유전자 가설이 상당부분 입증됐다”며 “하지만 국내의 경우에는 헬리코박터 균과 유전자, 식습관 등이 복합적으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재미있는 연구 결과 한가지는 김치가 헬리코박터 균 감염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 김 교수가 1997년 3월1일부터 1년8개월간 내원환자 272명을 대상으로 한국인의 식습관과 헬리코박터 파이로리 감염과의 상관성을 추적 조사 한 결과, 김치 조기구이 감 녹차 등이 감염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식습관과 관련, “맵고 짠 음식 섭취가 증상을 악화시킬 수는 있지만 궤양을 유발한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아직 없다”면서 “담배와 술, 커피가 더 해롭다”고 일러준다.

매주 150여명의 위장병 환자들을 직접 치료하면서 국내외 헬리코박터 관련 학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 교수는 “속이 자꾸 아프다면 나이에 관계없이 내시경 검사를 꼭 받으라”며 “특히 위 궤양은 양성일지라도 악성(암)으로 최종 판명되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에 조직검사를 받는 게 좋다”고 검사를 권한다.

◇ 다음호에는 <중이염 치료>편이 소개됩니다.

송강섭 의학전문기자


입력시간 : 2005-04-12 17:42


송강섭 의학전문기자 speci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