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의 재발견·장 뤽 엔니그 지음ㆍ이세진 옮김·예담 발행ㆍ12,000원

[출판] 외설과 미학을 넘나든 황홀한 탐색
엉덩이의 재발견·장 뤽 엔니그 지음ㆍ이세진 옮김·예담 발행ㆍ12,000원

‘그래, 난 지금도 그 밤을 기억할 수 있어. 당신을 뒤에서 안고 오래 오래 사랑을 나누었던 그 밤을. 내 물건은 몇 시간이나 당신 몸에 푹 잠겨 있었고, 나는 한껏 치켜 올린 당신의 엉덩이 아래로 파고 들고, 또 파고 들었지.’공중 화장실의 벽에 휘갈겨 쓴 낙서라 해도 좋겠다. 과연 누가 저런 걸 썼을까?

놀라지 마시라. 20세기 최대의 작가 중 한 사람인 제임스 조이스가 1909년에 쓴 ‘노라에게 보낸 편지’중 한 구절이다. 인용문은 문학 작품의 일부인 것이다.(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 봐’의 노골적 묘사에 비한다면 후배 뻘이지만.) 후배위에 대해 조이스가 묘사했던 대목을 이 책은 빠트리지 않았다.

프랑스 작가 장 뤽 엔니그의 ‘엉덩이의 재발견’에는 도처에 이 같은 ‘예술적’ 인용이 널려 있다. 제목이 말하듯 그것들은 모두가 엉덩이(남녀를 불문하고)란 것을 인류가 어떻게 봐 왔던 가에 대한 증거다. 직립 보행의 대가로 영장류 193종 가운데 유일하게 갖게 된 돌출형의 반구형 엉덩이. 그것과 인간의 예술적 상상력 간의 관계를 규명한 이 책은 1995년 10여 개국에서 출간돼 70만부 이상 팔려 나간 화제작이다.

엉덩이와 관련해 책에 등장하는 갖가지 묘사들은 상상을 불허한다. 예를 들면 ‘털 한 올 나지 않은 항문의 음란한 틈새, 선홍색의 날고기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항문의 열매, 희극적 찬란함과 숨막히는 잔혹성’과 같은 묘사는 외설성과 직접 맞닿아 있다. 그러나 사실 은 동물원에 있는 원숭이 엉덩이에 대한 묘사다. 책은, ‘아가씨들이 우리 속 원숭이들의 외설적인 엉덩이를 바라보는 모습은 황홀하다’며 일견 무관할 것 같은 아가씨들까지 끌어 들인다.

서구의 그 같은 독특한 엉덩이관(觀)은 엉덩이를 항문 성교, 즉 악마가 처녀들을 유린하는 수단이라 보는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악마는 처녀들과 항문 성교를 한다. 혹시 발생할 지도 모르는 성가신 임신을 우려해 처녀성을 건드리지 않고 교접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몇 편의 대단히 노골적인 문학 작품이 보여 주는 바, 프랑스인들은 그 곳을 사랑의 특별한 증거로 보았음을 알 수 있다.

일찍이 16세기 중반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에로틱한 풍자시 ‘블라종(blason)’이 그 원류였다. 19세기 시인 사드가 엉덩이를 가리켜 ‘무릎 꿇고, 입을 맞추고, 주무르고, 벌려보며, 황홀경에 빠져 들게 하는’그 무엇이라 찬미했던 원류에는 바로 블라종의 전통이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프랑스인들 특유의 엉덩이 찬미로도 읽힐 수 있다.

마릴린 먼로, 브리지트 바르도 등 한 시대를 휘어 잡았던 여배우들의 섹스 어필과 엉덩이의 상관성을 면밀하게 훑어 가는 저자의 문장은 결코 천박하지 않다. 대상에 대한 애정, 그 애정의 객관성까지 충분히 담보해 내는 그의 문장은 외설과 미학적 경지를 아슬아슬 넘나들며 독자의 의식을 희롱한다.

그의 못 말릴 탐미주의는 이런 식이다. ‘그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얼굴이 감춰진 여자의 음문을 본다 …(중략)… 파블로 피카소가 엉덩이의 고랑과 항문의 장미 모양을 느낌표로 표현했던…(중략)…엉덩이에는 악마적인 신비가 내재돼 있다.’변태 성욕으로 인식되는 엉덩이 매질을 논할 때의 어투는 극사실주의적이며 동시에 악마적이다.

그러나 책은 고대 그리스의 작품에 남겨진 엉덩이 등 객관적 역사를 탐색해 가면서 열기를 식힌다. 비만의 엉덩이, 이상적 엉덩이, 방종한 엉덩이 등 독특한 분류법으로 엉덩이의 장르를 논하던 저자가 남성의 엉덩이에 대해 할애한 부분은 단 한 대목이다. 이 책은 서구 문화에서 엉덩이, 특히 여성의 엉덩이가 미,종교,권력,관습 등 문화적ㆍ사회적 요소들과 어떻게 연관을 맺고 어떻게 진실의 편린을 보여 왔는지를 보여 주는 점에서 매우 독특하다.

적잖은 사람들은 이 책의 외설성에만 정신을 팔 지 모른다. 그러나 ‘아기 엉덩이’라는 장을 보자. 또 다른 차원의 황홀경이 있다. ‘엄마에게 아기 엉덩이가 없다면 그녀는 이미 엄마가 아니다. 탈선하고 삐뚤어진 엄마이다. 그러므로 아기 엉덩이는 엄마를 만든다.’

예술인가, 외설인가. 해묵은 논쟁을 퍼뜩 떠올리게 하는, 매우 독특한, 동시에 영감으로 충만한 엉덩이고(考)다.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 2005-04-13 14:54


장병욱 차장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