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대의 종말찰스 A. 쿱찬 지음, 황지현 옮김김영사 발행ㆍ2만2,900원

[출판] 미국, 새 패러다임 없이 미래 없다
미국 시대의 종말
찰스 A. 쿱찬 지음, 황지현 옮김
김영사 발행ㆍ2만2,900원


예를 들어 4월 14일 외신으로 들어온 뉴스 가운데 미국에 관련된 것들을 무작위로 뽑아 보자. 2월 미국 무역적자는 사상 최고인 610억4,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특히 올들어 첫 2개월 간 대중(對中) 무역적자는 291억2,000만 달러에 달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50% 증가한 것으로 미국 상무부는 발표했다. 천문학적 무역적자에다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 등 갈수록 악화하는 국제경제 사정에 미국은 강경 대처할 때가 됐다고 4월 13일자 월 스트리트 저널은 보도했다. 같은 날 뉴욕 증시의 주요 지수는 일제히 약세를 기록했다. 소매 판매 지표의 부진에 기업 실적 악화마저 우려되는 현실이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다.

21세기의 초거대 제국 미국은 이제 스러져 가고 있단 말인가. 미국의 정치학자 찰스 쿱찬이 쓴 ‘미국 시대의 종말’은 그 같은 소식이 시시각각 전해져 오고 있는 지금, 미국이 구사하고 있는 대외 정책을 잣대로 해 미국의 미래를 점친 책이다. 519쪽에 달하는 방대한 서적의 초입을 장식하고 있는 사건이 2001년의 9ㆍ11 테러다. 이 전대미문의 참극은 미 국민 모두에게 역사적 대전환점이 됐다. 이 사건 이후, 미국 영토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수적인 과업이라는 점에 대해 의심을 품는 미국인은 없게 됐기 때문이다.

2002년 초판 이후 2004년 부시 재선 1년 뒤에 내용을 고쳐 다시 나온 이 책에서 저자는 부시 행정부의 일방적인 대외 개입과 미국 우월론이 오래 가지 못 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가장 뚜렷한 증거가 유럽의 움직임이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위기를 코앞에 두고 유럽연합(EU)이라는 경제 통합을 이룩한 유럽은 통합 헌법을 제정하고 신속 대응군을 창설하는 등 세계 평화의 수호자 또는 지구촌의 보스라는 미국의 이미지를 잠식해 가고 있다. 만일 미국이 그 같은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 한다면 서구 문명 간의 충돌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경고다.

미국이 주도했던 산업 자본주의는 디지털 자본주의에 밀리고 있고, 자유민주주의는 시민의 이탈과 사회적 불평등으로 고민에 빠졌다. 머잖아 우월성을 상실하게 될 미국이 새로운 대전략(grand strategy)을 구상하고 실행하지 않으면 자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며 도입부부터 강하게 경고한다. 책의 말대로, 주적이 없어진 마당에 미국은 일방주의와 고립주의에 빠져 들어 동맹국들과의 관계가 껄끄럽게 될 것인가는 두고 볼 일이다.

로마 제국에서 시작해 유럽과 중국 등 동서고금을 두루 살핀 저자는 미국은 전통적 고립주의의 틀을 깨고 나와 팍스 아메리카나 그 이후를 적극적으로 검토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은 또 미국이 남북한 관계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에 대해서도 넌지시 말한다. “미국은 영향력의 축소를 감수하고 아시아 지역 국가 간의 통합을 적극 수용해야 한다. 미국은 중국과 함께 한반도 분단을 종식시키는 데 매우 큰 이해 관계를 가지고 있다.”여러 개발도상국들에 대해서는 주민에 대한 관심을 표명해 반미 감정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21세기 특유의 다극체제 아래에서 세계 평화를 지속시키기 위해서 미국은 무엇을 해야 할까. 그것은 결국 그가 이 책을 통해 미국에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첫째, 미국 주도의 시기가 끝나고 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일방적인 대외 개입을 자제해 힘을 억제해야 한다. 둘째, 결속과 견제를 위한 새로운 국제 기구(이를테면 세계이사회)를 설립해야 한다. 셋째, 사회적ㆍ정치적 수렴을 모색하기 위해 세계 각국이 모이는 장을 지속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넷째, 인터넷을 창의적으로 활용해 국가를 초월한 보편적 연계를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끝으로 지금 미국이 패권을 완전히 상실하기 이전에 공동의 이익과 의무를 위해 여타 세력들과 연합에 대한 의식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것 등이다.

저자가 밝힌 대로 이 책은 ‘미국 시대의 종말이라는 중대한 난제’를 코앞에 두고 씌어졌다. “미국 시대의 종말과 그 종말 이후의 반향에 대비해야 하는 긴박함”을 숨기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해 책의 ‘당파성’을 구태여 숨기지 않고 있는 셈인데, 이것은 사회과학서로서의 치명적 단점이지만 동시에 깊은 논의를 가능케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결국 판단은 독자의 몫이지만. 저자는 조지타운대 국제관계학 교수이자 미 하원 외교 관계 자문위원회의 수석연구원이기도 하다.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 2005-04-21 15:20


장병욱 차장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