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뿐인 스릴러, 쾌감을 잃다지나친 스타성 의존, 어줍잖은 정치적 메시지 등으로 긴장감 반감

[시네마 타운] 시드니 폴락 감독 <인터프리터>
허울뿐인 스릴러, 쾌감을 잃다
지나친 스타성 의존, 어줍잖은 정치적 메시지 등으로 긴장감 반감


스릴러 장르의 생명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긴장에 있다. 이를 위해 스릴러는 '서스펜스'와 '서프라이즈'를 황금 비율로 배분해야만 한다. 관객의 마음을 풀었다 죄었다 하는 능수능란한 심리 묘사는 스릴러 장르의 대원칙이다. 하지만 ‘인터프리터’는 이 대원칙을 거스른다. 시드니 폴락(‘폴링 인 러브’ ‘아웃 오브 아프리카’ ‘사브리나’) 감독은 스릴러적인 쾌감으로 관객을 유혹하기 보다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영화는 지나치게 스타에 의존한 미스 캐스팅, 얄팍한 정치 의식, 완급 조절에 실패한 구성 등으로 한계를 드러낸다. 그러다 보니 마지막에 가서는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조차 모호해진다.

아프리카 내전의 포화 속으로
아프리카의 독재 국가 마토보. 파시스트 쥬와니 정권에 저항하는 반체제 인사들이 흑인 소년들에 의해 축구 경기장으로 안내된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그들은 독재자의 사주를 받은 흑인 소년 암살범에 의해 몰살당한다. 그 후 무대는 미국으로 옮겨진다.

아프리카 태생의 유엔 통역사 실비아 브룸(니콜 키드만)은 유엔 연설을 앞둔 쥬와니 대통령에 대한 암살 모의를 우연히 엿듣는다. 목격자인 실비아가 살해 위협에 노출되자 암살 저지와 증인 보호 임무를 띈 보안국 수사관 토빈 켈러(숀 펜)가 파견된다. 증인과 경호인 관계로 만난 두 사람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면서 가까워지지만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실비아의 태도는 토빈의 수사를 미궁에 빠뜨린다.

냉전이 주요한 영화의 소재였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 테러리즘과 민족 분쟁으로 치닫고 있는 세계는 할리우드 정치 스릴러에도 얼마간의 변화를 가져왔다. 중동 전쟁을 바탕에 깔았던 ‘맨츄리안 켄디데이트’ 처럼 이 영화는 내전으로 인한 갈등이 일상화한 아프리카가 무대다. 실재하지 않는 아프리카 국가 '마토보'에 대해 제작진이 쏟은 정성은 가상하다.

니콜 키드먼의 아프리카 말 연기를 위해 영국에 있는 언어학 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스와힐리어와 쇼나어를 혼합해 가상의 언어 쿠(Ku)를 만들어냈다. 키드먼은 원주민에 가까운 완벽한 발음(그녀의 말을 들어 본 전문가의 평가다)으로 족보도 없는 이 아프리카 토속어를 줄줄 읊어댄다.

하지만 이런 키드먼의 놀라운 언어 능력과 누구에게도 허가된 적이 없는 유엔본부 내에서의 최초 촬영이라는 외적인 자랑거리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허점투성이다. 걸출한 언어 구사 능력을 제외하면 니콜 키드먼의 연기는 별로 인상적이지 않다. 백호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호주 출신의 키드먼을 산전수전 다 겪은 반독재 투사의 연인 실비아로 기용한 것은 무리한 스타 캐스팅이다.

대선배 여배우인 로렌 바콜에게서 "어떤 나이가 되더라도 전설이 되지 못할 초보자"라는 혹평을 들은 키드먼은 갈수록 상승하는 그녀의 주가에 값하지 못하는 평범한 연기로 일관한다. 크리스탈 같이 희어멀건한 키드먼의 얼굴에서 아프리카 민주 투사의 모습을 찾기는 힘들다. 저항군에 가담해 기관총을 들고 걸어가는 키드먼은 전사라기보다는 수퍼 모델의 이미지를 더 풍긴다. 실망스러운 것은 니콜 키드먼 만이 아니다.

반쯤 정신이 나간 사회부적응자의 아우라가 자연스럽게 풍겨져 나오는 숀 펜은 여기서도 상처(喪妻)의 상실감을 이기지 못하는 수사관 역을 맡았다. 하지만 ‘미스틱 리버’ ‘21 그램’에서 배역에 완전 몰입해 경이로운 연기를 보여 주었던 그의 기량은 전형적인 낯?沽?묻혀 그냥 낭비됐다.

메시지에 질식된 스릴러의 쾌감
‘인터프리터’는 익숙한 스릴러의 공식을 차용한다. 음모의 현장을 목격한 증인과 그에게 위협을 가하는 악의 세력, 증인을 보호하려는 수사관이라는 고전적 삼각 구도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분쟁 지역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과 각국의 이해가 충돌하는 유엔에서의 암살을 연결시킨 도입부의 긴장 조성은 탁월하다.

하지만 정교하게 계산되었어야 할 중반부부터 드라마의 리듬은 엇박자다. 긴장을 풀어야 할 때에는 고삐를 죄고, 조여야 장면에서는 객적은 한담으로 일관한다. 시간이 갈수록 해법이 보이기 보다 의문이 증폭되는 되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과연 유엔이 전력도 확인하지 않고 직원을 채용했을까, 막강한 정보력을 자랑하는 CIA가 반체제 지도자(첫 장면에서 암살당했으며 실비아와 한때 연인 관계였다)의 암살에 대해 몰랐을까, 아내를 잃은 토빈과 연인을 잃은 실비아 사이에는 어떤 동류 의식이 있었을까.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이 영화 속에 없다.

‘코드네임 콘돌’ ‘폴 뉴먼의 선택’ ‘야망의 함정’ 등 수준급의 정치 스릴러를 연출한 감독답지 않게 시드니 폴락의 감각은 너무 낡아 보인다. 선악에 대한 판단이 명확했고 선명한 정치적 메세지를 요구했던 과거와 달리 요즘 스릴러에서 정치적 상황은 장르의 쾌감을 위한 장치에 만족해야 한다. 이 영화는 가닥을 잡기 힘든 줄거리와 무르익을 만하면 옆 길로 새는 구성 때문에 장르의 쾌감이라는 핵심에 다가가지 못한다.

특히 한 때 민주 지도자였던 쥬와니가 과거 자신이 주창했던 선언을 줄줄 낭독하는 마지막 장면은 닭살이 돋을 만큼 고답적이다. 부패가 만연한 아프리카의 상황, 민주 투사도 권력을 잡으면 언젠가 기존 체제에 편입되고 만다는 정치적 비관주의, 이념 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 사이의 이해와 교감이라는 순박한 교훈 사이를 오가면서 스릴러는 제 길을 잃는다. 정치적 메시지에 대한 과도한 집착 이 스릴러의 재미를 앗아가 허울 뿐인 정치 영화에 머물고 말았다.

장병원 영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5-04-26 16:02


장병원 영화평론가 jangping@film2.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