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은 촌스러움, 정직한 맛

[맛집 멋집] 퓨전 레스토랑 <바쥬>
기분 좋은 촌스러움, 정직한 맛

‘칼질’할 수 있는 요리는 비싸고 고급스러운 음식으로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 경양식 집은 모처럼 기분 내고 싶을 때 가는 곳 중 하나였다. 자리에 앉으면 나비넥타이를 맨 웨이터가 묻는다. “밥으로 드릴까요, 빵으로 드릴까요?” 자장면이나 짬뽕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고민되던 순간이었다. 여자 친구가 앞에 있을 때는 더욱 그랬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정통 레스토랑이 인기를 끌면서 경양식 집 자체가 모습을 감추었고, 그나마 남아있는 곳도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는 등 생존을 위해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그렇지만 가끔은 옛날 그 맛이, 그 장소가 그냥 그리워질 때가 있다. 대학 신입생 시절 첫 미팅을 했던 어둑어둑한 조명의 경양식 집이며, 생맥주 한잔에 마냥 즐거워했던 학교 앞 호프집이 그런 곳 들이다.

건국대학교 앞 레스토랑 ‘바쥬’는 한번 앉으면 좀체 일어나지지 않는 곳이다. 굳이 분류하자면 레스토랑이 아닌 경양식 집에 속한다. 남들이 한창 퓨전으로 전환할 9년 전 양식 메뉴로 문을 연 이후 줄곧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메뉴, 가격, 인테리어 어느 것 하나 달라진 것이 없다.

이곳에서 데이트를 즐겼고 결혼에 골인한 젊은 부부가 이제는 아이를 안고 바쥬를 찾는다. 강산이 한번 변하는 동안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 찾는 이들에게는 반갑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게다가 정식과 스파게티, 볶음밥 등 음식 메뉴도 예전 그대로다. 언뜻 보면 촌스럽고 시대에 뒤진다고 할지 모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든든한 마니아층이 이를 뒷받침한다.

바쥬의 모든 음식은 정직하다. 수프 하나를 만들더라도 닭 뼈를 고는 과정에서부터 정성을 다한다. 고기 역시 최상급을 사용한다. 충분히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양도 많다. 여기에 제철 과일로 만든 생과일 주스로 마무리하면 그야말로 세상 부러운 게 없다. 해물 볶음밥, 해물 스파게티, 정식 등이 가장 인기가 높다. 간단한 메뉴처럼 보이지만 재료 선별에서부터 조리까지 깐깐한 과정을 거친다.

이는 ‘재료가 기술을 넘지 못한다’는 김용성 주방장의 철학이기도 한데, 김 주방장은 신라호텔 등 국내 유명 호텔 근무 경험이 있는 외식업계의 베테랑이다. 음식 수준은 계속 향상 시키지만, 정식 같이 전통 있는 메뉴는 그 틀을 크게 바꾸지 않을 생각이다. 그가 바쥬에 합류하면서 스파게티의 맛은 전보다 깔끔하고 산뜻해졌다. 재료를 아끼지 않은 해물 스파게티는 호텔 레스토랑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최근에는 특별 주문한 잡곡 빵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정식에는 돈까스와 함박스테이크, 생선까스가 함께 나오는데 그 양이 다른 곳의 2배는 됨직하다. 고기는 생고기를 사용하되 와인에 24시간 재놓고 튀기기 직전 빵 가루를 바르는 것이 부드러운 육질의 비결이다. 돈까스 소스 맛 역시 어딘지 모르게 친근하다. 지금까지 이 방법을 고수하는 곳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게 김 주방장의 설명이다. 닭 뼈와 야채를 24시간 이상 푹 삶아 브라운 루(Brown Roux)와 토마토 페이스트, 향신료 등을 이용해 돈까스와 가장 어울리는 소스를 만든다. 최소 6시간 이상이 걸리는 힘든 과정으로, 비쥬 만의 맛의 비결이 여기에 숨어 있다.

* 메뉴 : 해산물 스파게티 8,000원, 미트소스 스파게티 8,000원, 카보나라 8,000원, 해산물 볶음밥 9,000원, 돈까스 8,000원, 정식 10,000원, 함박스테이크 9,000원.

* 찾아가는 길 : 전철 2호선 건대입구 2번 출구로 나와 약 3분 가량 직진. 2층에 ‘비쥬’ 간판 보인다.

* 영업시간 : 오전 11시부터 새벽 1시 까지. 명절 당일만 휴무. 02-497-3416

서태경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5-04-27 14:38


서태경 자유기고가 shiner96@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