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섦과 감미로움…그 매혹의 어둠서울의 야경과 남도 풍광 담은 프랑스 작가의 한국사랑

[문화가 산책] 마노엘 피아르 展 '서울의 밤'
낮섦과 감미로움…그 매혹의 어둠
서울의 야경과 남도 풍광 담은 프랑스 작가의 한국사랑


‘파씨나시옹(fascinationㆍ매혹).’

1998년 서울 혜화동에서 동대문을 거쳐 종로까지 밤거리를 홀로 거닐던 한 중년 신사는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이 말을 수없이 외쳤다. 낯선 도시의 생경한 거리, 그 거리 구석구석에 어지럽게 들러붙은 휘황찬란한 간판, 골목 구석구석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와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온 몸에 착 달라붙는 한국 음식 냄새와 지독한 소음.

한국인 부인을 따라 생전 처음 서울에 온 프랑스 파리국립고등장식예술대학 마노엘 피아르(59ㆍManoel Pillard) 교수에게 서울의 밤은 그렇게 다가왔다. 대학에서 20여 년 프레스코화와 모자이크 벽화를 가르치고 있던 그는 그 느낌과 충격을 평면에 옮기기로 결심했다. 갈수록 시력이 나빠지고 있어 ‘다시 못 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무수히 서울의 밤을 스케치하고 사진에 담았다. 더구나 서울은 사랑하는 아내의 고향이 아닌가.

그로부터 6년이 지났다. 그는 파리 화실에서 완성한 ‘서울의 밤’을 들고 다시 한국을 찾았다. 서울 종로구 사간동의 갤러리 편도나무에서 지난달 22일부터 시작한 ‘서울의 밤‘(Nuits De Seoul)’ 전시회가 그것이다. 서울의 야경을 담은 유채화 17점과 홍도와 진도 등의 풍광을 옮겨놓은 수채화들이 한옥의 갤러리와 잘 어울린다. 3년 전 파리 한국문화원에서 비슷한 전시회를 열었지만, ‘한국을 그린 것인데 한국인들에게 보이지 않을 수 없다’는 작가의 뜻에 따랐다.

‘곱창’ ‘닭도리탕’ ‘다모아 노래방’ ‘이판사판’ ‘어쭈구리’ ‘비어 밸리’ ‘시사영어학원’ 등등. 한국인에겐 난잡하고 혼란스러운 간판이지만, 한국어를 모르는 그에게는 하나 하나가 이미지 그 자체다. 강렬한 빛을 뿜어내는 울긋불긋한 네온 사인들은 하나의 거대한 텍스트다.

** 5월 8일까지. 02-3210-0016

정민승기자


입력시간 : 2005-05-03 19:57


정민승기자 msj@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