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잉태한 숲속의 야생과육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으름
가을을 잉태한 숲속의 야생과육

으름, 늘어진 줄기가 야성적이고 보라빛 꽃이 신비로우리 만치 아름다우며, 잎새는 특이하고 게다가 먹음직스런 열매까지 달린다. 그래서 으름을 보면, 이 보다 좋은 덩굴식물도 어디 흔하랴 싶고 그래서 아무도 보아 주는 이 없는 깊은 산속에 감추어 두기 아깝다는 느낌이 든다.

으름은 으름덩굴과에 속하는 낙엽성 활엽수로 다른 물체를 감고 올라가는 덩굴식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황해도 이남의 어느 산에서나 자주 만날 수 있는 그러한 나무며 일본과 중국에도 분포한다. 이 나무의 학명중 속명 아케비아(Akebia)는 으름의 일본 이름을 그대로 옮겨 정해 졌다. 으름덩굴의 열매가 으름이므로 식물자체를 두고 그냥 으름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생약명이 목통이어서 이 말이 그대로 통하기도 하며, 유름 또는 졸갱이줄, 목통어름이라는 지방이름들도 있다.

깊은 산속이나 마을이 가까운 산자락, 계곡이나 능선 등 으름은 자라는 곳을 크게 가리지 않는다. 깊은 산중에선 줄기가 스스로 휘감기고 그리고 늘어지는 오래 자란 으름덩굴을 볼 수 있어 좋고, 산길로 접어 들어 조금만 걸어들어간 길가에서도 나무들과 어울어진 작은 으름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그러나 탐스럽게 열린 열매 으름을 구경하기란 정말 어렵다. 내 눈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다른 사람들의 차지가 되었을 확률이 높고 스스로 수분이 잘 되지 않기도 하다.

더러 수 십 년을 집에 두고 키운 으름덩굴에서 한번도 열매를 얻지 못하여 섭섭해 하는 사람을 보았다. 이를 두고 으름이 은행나무처럼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으니 이를 구분하여 키워야 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으나 이는 틀린 말이다. 으름은 암수가 모두 한 그루에 있다. 단 암꽃과 수꽃이 한 나무에서 따로 필 뿐이다. 으름의 수꽃과 암꽃은 모두 봄에 피는데 수꽃은 작지만 많이 달리고 6개의 수술이 있으며 암술은 흔적만이 있고, 암꽃은 적게 달리지만 크기가 아주 커서 지름이 3cm 가까이 되며 꽃잎이 없는 대신 자갈색의 꽃받침 잎이 마치 꽃잎처럼 달려 있다.

어렵사리 수분이 이루어져 만들어진 열매는 익어서 벌어 지기 전까지는 휘어진 짧은 소시지 같다. 흔히들 으름을 두고 그 맛과 모양에서 바나나 같다고 말하곤 하는데 만일 으름이 바나나를 닮았다면 열대지방에서 나는 작은 몽키바나나와 비슷하다. 이 열매가 자갈색으로 이어 가고 가을이 무르익어 으름 또한 충분히 성숙되면 열매의 배가 열리면서 과육이 드러난다. 검은 빛과 흰빛을 적절히 섞어 놓은 과육을 입에 넣으면 달콤하고 또한 물컹하며 입에서 부드럽기 때문에 그 맛 또한 바나나의 맛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작아서 입에 거슬리지는 않지만 수많은 종자들이 느껴져 바나나를 먹을 때와는 사뭇 다르다.

사실 으름은 어느 한 구석 나무랄 데 없는, 누구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좋은 점들을 가졌음에도 아직까지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뒷곁에 물러나 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으름의 여러 기관이 성적인 상징들로 연관지어져 점잖지 못하게 생각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으름의 수술모양이 남성의 상징을 닮았다고 하는 말은 누구나 한번쯤 들어 본 이야기이다. 여기에다 한술 더 떠서 제주도에서 오가는 이야기 중에 ‘아은땐 조쟁이되고 어룬 되면 보댕이 되는 것이 ?n고?’하는 수수께끼가 있다. 풀어 이야기 하면 어릴 때는 남성의 상징 같고 어른이 되면 여성의 상징이 되는 것이 무어냐는 것인데 답은 으름이다. 열매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모습과 다 익어서 벌어지는 모습에 비유하여 나온 이야기다.

그러나 이러한 성적 상징물로 터부시 되기에는 아까운 점이 너무 많다. 관상적 가치 말고라도 목통이라는 생약명으로 약으로 이용되었고, 잎을 나물로도 먹는다. 껍질로 바구니를 만들기도 하고 씨앗으로는 기름도 짠다.

이러저러한 으름이 궁금하거든, 봄 숲, 우거진 덩굴을 잘 살펴보자. 재미도 아름다움도 모두 내 몫이 될 수 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입력시간 : 2005-05-12 17:41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