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땅으로 간 광기의 6人근원적 공포로의 영화적 탐험고난의 여정 그린 미스터리 무비

[시네마 타운] 임필성 감독 <남극일기>
죽음의 땅으로 간 광기의 6人
근원적 공포로의 영화적 탐험
고난의 여정 그린 미스터리 무비


‘이제 우주에서 찍은 영화만 나오면 된다.’ 남극 탐험을 소재로 한 <남극일기>가 완성되자 충무로에서는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아닌 게 아니라 한국영화에 더 이상 소재 제한은 없어 보인다. 순제작비만 70억 여원이 투입된 <남극일기>는 7년 여의 각고의 노력 끝에 결실을 본 영화다.

설정 상 남극에서 찍어야 마땅하겠으나 최저 기온 영하 80도에 이르는 혹한의 땅에서 영화를 찍을 수는 없는 법. 제작진은 남극 대신 <반지의 제왕>으로 천혜의 영화 촬영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뉴질랜드를 택했다.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탐험가 박영석이 ‘탐험 수퍼바이저’라는 전인미답의 스태프로 참여했을 만큼 탐험 과정 재현에 공을 들인 이 영화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힘을 빌어 끝없이 이어지는 설원의 이미지를 흠 없이 살려낸다.

하지만 컴퓨터그래픽으로 덫칠한 기술적 완성도 보다 중요했던 건 탐험대원들의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공포'를 잡아내는 것. <남극일기>의 유일하고도 치명적인 결점은 이 공포의 표정을 실감나게 표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선에 선 남극탐험대
일년의 반은 낮만 계속되고 나머지 반은 밤만 계속되는 남극은 <남극일기>의 주인공이자 최고로 공포스러운 대상이다.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설원에서의 화이트 아웃, 끝도 없이 펼쳐진 순백의 평원, 눈이 시린 코발트빛 하늘은 처음에는 아름답다가 이내 두려워진다. 영화는 도달불능점을 향해 떠난 여섯 명의 남극 탐험대원들의 여정을 따라간다.

탐험대의 목표인 도달불능점은 1958년 구 소련 탐험대가 유일하게 정복했을 만큼 인간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는 사지다. 탐험 대장 최도형(송강호)과 부대장 이영민(박희순)은 스위스 등반 학교를 수석 졸업한 명철한 청년 김민재(유지태)를 포함한 4명의 대원을 이끌고 죽음을 무릎 쓴 행군을 지휘한다.

행군 도중 탐험대는 80년 전 남극에서 몰살당한 영국 탐험대의 일기를 발견한다. 전쟁터의 전리품 챙기듯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일기장에서 탐험대의 운명을 예시하는 듯한 내용이 발견되면서 대원들은 공포에 휩싸인다. <남극일기>는 자연과 맞서 싸우는 탐험영화도, 사지에 고립된 사내들의 끈적한 우의를 다룬 '남자 영화'도 아니다.

인간의 탐욕과 광기가 '공포'로 바뀌는 과정을 쫓는 공포영화인 동시에 이 같은 공포가 어디서 오는지를 묻는 심리 미스터리 영화, 눈길을 하염없이 걸어가는 고난의 여정을 담은 로드 무비, 유약한 정신 세계를 지닌 한 소년의 성장을 담은 성장영화이기도 하다. 신인감독 임필성은 <반지의 제왕>을 창조한 특수효과 집단인 뉴질랜드 웨타 스튜디오의 힘을 빌어 한국영화의 기술적 도달불능점을 어느 정도 정복해낸다.

역시 끈질긴 인내심과 광기(?)가 아니었다면 얻을 수 없었던 성취이리라. 뉴질랜드에서의 성공적인 촬영과 후반작업에도 불구하고 <남극일기>는 여섯 명의 탐험대원이 거대한 자연과 싸우면서 서로를 믿지 못하는 '괴물'로 변해가는 과정을 이유 있게 보여주는 것에는 실패한다. 여섯 탐험대원들의 캐릭터가 유기적으로 엮이면서 각기 공포에 잠식돼가는 이유가 설명돼야 하거늘 이들의 성격은 흔해 빠진 '전형'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부대장이라는 본분에 맞는 능력을 갖추었으나 남들과 섞이려 들지 않는 걸 보면 뭔가 비밀을 숨기고 있는 듯한 이영민은 그다지 호감을 주지 못하는 인물이고 죽은 이들의 환영에 시달리는 것으로 보아 대단한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대장 최도형 역시 무작정 "전진!"만 외치는 기계적인 인간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김민재가 대장에 대한 맹목적인 동경심을 가지게 된 이유도 뚜렷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살아있는 캐릭터 구축에 실패한 탓에 드라마의 개연성 보다 ‘이미 설정된’ 상황에 따라 이야기를 끌고 가는데 檳僿求募?인상을 지울 수 없다.

공감의 폭이 좁은 미지근한 공포
불굴의 투지를 지닌 탐험대처럼 임필성 감독의 도전은 참신해 보인다.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이국 땅에서 고난의 행군이었을 촬영을 끈기 있게 해낸 흔적이 화면에 옹골차게 묻어있다.

하지만 그 속에 담으려 했던 인간 존재의 근원적 공포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만큼 그럴듯하게 묘사되지 않았다. <남극일기>가 성공적인 탐험 공포영화가 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였다.

천지가 온통 백색 뿐인 이국 땅에서 의식 자체가 하얗게 표백돼 버리는 공포, 거대한 자연에 맞서 미천한 인간이 느끼는 압도적인 공포를 표현하거나, 사지에서 고립된 인간의 내면으로부터 엄습해오는 근원적인 공포의 표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남극일기>는 어느 쪽도 명쾌하게 표현하지 못 한다.

탐험 대원들은 서로를 불신하고 무언지 모를 두려움에 쫓기고 겁에 질려 미쳐가지만 그들의 공포가 어디서 기원한 것인지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마지막 순간, ‘너희들이 나를 막아줬어야지’라고 뇌까리는 탐험대장 도형의 말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탐험대원들이 ‘도달불능점’이라는 불가능한 한계에 도달하려 했듯이 <남극일기>는 인간 존재의 저류에 매복한 근원적 공포라는 ‘도달할 수 없는’ 공포의 표정을 담아내려 한다. ‘도달할 수 없는 곳’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도달하려는 욕망은 실패할 수 밖에 없고 ‘광기’로 변할 수 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남극일기>가 설파하는 공포의 표정은 관객이 도달할 수 없는 지점에 놓여 있다. 신인감독 임필성이 보여줘야 했던 것은 블리자드(예고없이 불어닥치는 거대한 눈바람)와 크레바스(균열로 인해 빙하 속에 생긴 깊은 절벽) 따위의 남극의 비경이 아니라 이 맹목적 공포심의 기원이었다. 실체도 없는 공포를 가지고 두 시간을 끌고 가는 기특한 뚝심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장병원 영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5-05-25 20:00


장병원 영화평론가 jangping@film2.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