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한결같은 맛, 양도 푸짐

[맛집 멋집] 대학로 <88떡볶이>
30년 한결같은 맛, 양도 푸짐

이름만으로도 고유명사가 되어 버린 음식들이 있다. 왕십리 곱창, 포천이동 갈비, 신림동 순대 등등이 그것이다. 다들 몇 십 년의 전통은 기본이고 나름대로 터득한 비법으로 고객들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한 군데에서 2~3년을 넘기지 못하는 요즘 음식 장사 풍토를 보면, 오랜 시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는 사실만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대학로에 자리한 88떡볶이는 벌써 30년 넘게 똑같은 맛으로 승부를 거는 곳이다. 여기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88떡볶이 하면 자연스레 ‘왕십리 한양대학교 앞’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체인점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많은 사람들이 88떡볶이가 대학로에 있다고 하면 일단 놀라며 반가워 한다.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1970년대 말부터 한양대학교 앞에서 떡볶이 집을 연 것이 88떡볶이의 시작이다. 한 할머니가 포장마차에서 출발해 점포를 얻으면서 간판에 ‘88’을 붙였다. 당시 88올림픽으로 온 나라가 정신 없던 시절이라 88이라는 숫자가 친숙하게 다가왔다. 할머니가 손수 개발한 떡볶이와 후한 인심 덕에 부근 중고등학교를 비롯해 대학생들 사이에서 88떡볶이를 모르면 간첩으로 통할 정도였다. 그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원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몇 차례 주인이 바뀌었지만 떡볶이 맛은 변함이 없다. 떡볶이 떡이나 순대, 만두는 30년 넘게 같은 곳에서 사오는 것은 물론이고 양념장 등 모든 비법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메뉴나 가격도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지금은 이규갑, 여운자씨 부부가 맥을 이어가고 있다. 한양대학교 먹자골목 상권이 시들해지는 바람에 2005년 1월을 끝으로 한양대 시대는 막을 내렸다. 인연 따라 옮겨온 곳이 바로 혜화동. 4월 23일부터 영업을 다시 시작했는데, 이제 막 한달이 지났지만 생각보다 반응이 뜨겁다. 행인 중에 ‘여기도 88떡볶이가 있네’ 라며 들어와 보기도 하고 갑자기 자취를 감춘 88떡볶이를 발견했다며 인터넷 미식 동호회 게시판에는 관련 글들이 쏟아지기도 했다.

88떡볶이는 우선 국물이 특이하다. 숟가락으로 떠서 먹을 수 있는 넉넉한 양과 달짝지근하면서도 심심한 맛이 그만이다. 숙취 해소로 떡볶이 국물이생각난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떡도 다른 집들과는 다르다. 고급 강력분으로 만들어 시간이 지나도 쫄깃해 숟가락으로 뚝뚝 끊어 국물과 함께 떠먹는다.

맛을 내는 데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 없지만 양념장이 가장 궁금하다. 한사코 일반 고추장 만들기랑 별 차이가 없다고 하지만, 비법은 재료 배합 비율에 숨어 있는 것 같다. 단, 떡볶이를 만들 때 신경 쓰는 점이 있다면 파를 듬뿍 넣는다는 것. 그래야 국물이 걸쭉해지고 맛도 담백해진다.

순대볶음 역시 떡볶이와 맞먹는 인기 메뉴다. 양념이라고 해도 양상추, 깻잎, 당근, 당면이 전부지만 지금까지 다녀 본 이름난 곳들과 비교해도 처지지 않는다. 남은 양념에 밥 한 그릇도 문제없을 것 같다. 2명이서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양도 마음에 든다.

가격 역시 요즘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저렴하다. 라면 그릇 한가득 퍼주는 걸 보면 남긴 남는 걸까 하는 미안함이 절로 든다. 30여 년 전, 300원부터 시작한 가격이 100원, 200원 올라 지금은 2,000원이다. 다른 물가들이 오른 것에 비하면 거의 제자리나 다름없어 요즘 같은 때에는 더더욱 반가운 집이다.

* 메뉴 : 떡볶이 2,000원, 떡볶이만두 2,500원, 떡볶이라면 2,500원, 떡볶이순대 2,500원, 순대볶음 4,000원, 순대 2,000원, 만두(3개) 1,000원, 계란(3개) 1,000원.

* 찾아가는 길 : 4호선 혜화역 4번 출구, 성대 방향으로 직진, 왼편 레드망고 바로 옆 골목. 88떡볶이 간판이 크게 보인다.


서태경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5-06-01 18:37


서태경 자유기고가 shiner96@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