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 상속에 눈 먼 가족의 지상최대 통일 자작극분단에 대한 세대간 인식 차이 그린 한 편의 해프닝

[시네마 타운] 간 큰 가족
유산 상속에 눈 먼 가족의 지상최대 통일 자작극
분단에 대한 세대간 인식 차이 그린 한 편의 해프닝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넘어 간 정주영의 귀향은 통일이 되는 미래의 어느 날쯤에는 한국 현대사에 기념할만한 '사건'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오매불망 고향 땅을 잊지 못하던 재력가는 소판 돈을 훔쳐 가출한 지난 날의 과오를 뉘우치는 보상성 이벤트로 망향의 한을 달래려 했다.

‘간 큰 가족’은 정주영이 소를 몰고 고향을 찾아 실향민의 심금을 울렸던 8년 전에 쓰여진 시나리오를 영화로 옮겼다. 소떼몰이 이벤트로 전 국민의 관심이 통일로 기울고 있을 무렵 탄생한 이 영화는 남북한 간의 문화적 괴리 만큼이나 민족 화합에 걸림돌이 되어 온 통일에 대한 세대 간 인식 차이를 한 편의 해프닝을 통해 담아내려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상황도 생각도 변하기 마련. 무려 8년 전에 쓰여진 쉰 내 나는 시나리오의 시대착오적 설정을 요즘 상황에 맞도록 손을 본 ‘간 큰 가족’은 21세기형 통일 휴먼 드라마로 거듭나려 했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울 뿐이다.

통일을 줄게, 유산을 다오
21세기의 '통일 영화'는 기성 세대가 짊어진 통일에 대한 당위와 부담을 훌훌 털어낸 휴먼 코미디의 모양새를 하고 있다. 거창한 통일의 대의를 내세우기 보다 유산 상속을 위해 온 가족이 통일 연극을 꾸민다는 다분히 '사사로운' 명분을 걸고 통일 문제에 접근한다.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을 보는 게 마지막 소원인 김 노인(신구)은 죽기 전 통일이 되면 유산을 가족에게 물려주고, 통일이 안 되면 통일 사업을 위해 유산을 기탁할 것을 유언으로 남겨 놓은 상태다.

김 노인에게 50억원 대의 유산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큰 아들 명석(감우성)은 영화감독인 동생 명규(김수로), 어머니(김수미) 등과 함께 김 노인이 죽기 전 통일 연극을 꾸미기로 한다. TV 방송을 조작하고, 있지도 않은 사실이 실린 신문을 만들고, 이웃들까지 포섭하는 눈물 겨운 노력 끝에 간 큰 가족의 통일 자작극은 성공 일보직전까지 간다.

죽음을 앞둔 부모를 위해 거짓 통일극을 꾸며낸다는 설정 때문에 통일 전에 코마 상태에 빠졌다가 의식을 회복한 어머니를 위해 통일 전으로 모든 상황을 조작하는 아들의 이야기를 다룬 독일영화 ‘굿바이 레닌’과 비교되기도 한다. 통일 후와 통일 전이라는 설정의 역전이 이뤄진 두 영화는 분단국가인 독일과 한국에서나 가능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드라마의 밀도와 감동의 크기에서 ‘간 큰 가족’은 ‘굿바이 레닌’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순수하게 어머니를 위하려던 가상한 효심에서 비롯된 ‘굿바이 레닌’의 연극은 ‘간 큰 가족’에서 유산을 노린 음험한 자작극으로 변모한다. 이는 ‘굿바이 레닌’이 사회적 문제의식에 입각한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것에 비해, ‘간 큰 가족’이 통일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다분히 우회적인 코미디 전략이기 때문이다.

더욱 애석한 것은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는 이 영화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다. 이 영화는 8년 전 처음 시나리오가 쓰여졌을 당시의 의도와 달리 실향민 문제, 통일에 대한 세대 차 등에 대한 어떤 문제의식도 던지지 못한다. 냉면으로 대표되는 옥류관, 경직된 인민 배우의 목소리, 평양 모란봉기예단의 서커스 공연 등 전형적인 북한 이미지를 통해 희화화한 웃음을 만들어내고 있을 뿐이다. 세월이 흘렀으니 코미디를 위해 진지한 문제의식을 포기했다는 건 변명에 불과하다. 웃음과 감동은 ‘통일’이라는 딱딱한 이슈를 친근하게 다루기 위한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기 때?甄?

코미디를 가장한 감동 자작극
코미디를 가장한 한국의 신파 영화들이 그러하듯 ‘간 큰 가족’은 정확히 전ㆍ후반부가 갈라진다. 웃음과 감동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으려는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별 맥락 없이 갑작스럽게 신파로 기우는 후반부는 초반의 흥청거리는 분위기와는 너무 괴리돼 있다.

마치 두 편의 영화를 본 것처럼 전반부와 후반부가 따로 노는 인상을 주는 이유는 유산 상속을 노린 자식들의 유아기적 통일 자작극이 실향민 아버지의 숙원을 풀어주려는 인간애로 변모하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형상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통일 사기극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순간, 영화는 욕심에 눈 먼 가족들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눈물샘을 자극하는 신파 휴머니즘으로 급격히 표정을 바꾼다.

유산을 위해 연극을 꾸몄던 자식들이 아버지의 진심을 이해하는 효자로 돌변하는 건 생뚱맞기 그지 없다. 심지어 감독은 탄탄한 연출의 힘이 아닌, 김수로를 위시한 배우들의 개인기로 드라마상의 허점을 무마하려 든다. 통일을 매개로 웃음과 감동을 끌어내는 것이 이 영화의 목적이지만 당위와 감상주의에 호소하는 통일지상주의는 볼썽사납기만 하다.

'분단과 통일'이라는 무거운 테마를 가벼운 코미디로 풀어내려는 의도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실향민들의 생래적 결핍의식을 자극하는 이 영화의 영악한 휴머니즘을 힐난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정교하게 조직된 정서의 흐름을 통해 도달했어야 할 휴머니즘은 어설픈 신파로 귀결됐고, '통일 자작극'이라는 모티프는 웃음을 위한 극적 장치 이상이 되지 못했다.

유산에 눈이 멀어 자식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연극을 꾸며냈듯이 웃음과 눈물이라는 목표에 눈이 멀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억지 감동을 강요한 꼴이 돼 버린 셈이다. 천재는 시대를 잘 타고 나야 하듯이, 좋은 영화 역시 시대를 잘 타고 나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8년 전에 쓰여진 시나리오의 해묵은 감성을 세련되게 갈고 다듬지 못한 건 이 영화의 최대 실수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렇게 허술한 드라마를 아무 자책감 없이 내놓을 수 있었던 감독의 간이 크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장병원 영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5-06-15 17:13


장병원 영화평론가 jangping@film2.co.kr